'10살 똘이'의 장례식…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반려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상실의 과정에 대하여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5단계…"애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 '우다다다' 뛰어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적막할 때, 유리문 너머로 한껏 젖힌 귀와 세차게 흔들리는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 반려견 똘이의 부재가 서늘하게 들이닥쳤다.
겪어보지 못한 슬픔의 무게에 압도돼 현관을 채 지나기도 전에 울음을 쏟았다. 앞이 일렁이는 채로 힘겹게 걸음을 옮겨 거실로 향했다. 거실장 한편에 놓인 자그마한 나무상자. 뚜껑 안쪽에 사진으로 담긴 똘이의 환한 웃음. 그 안에 놓인 열여덟 개의 동그란 돌. 이를 하나씩 어루만지며 말을 건넸다.
"똘이야, 형아 왔다."
만져지는 게 익숙한 온기가 아녀서, 한껏 핥아주며 온몸으로 환대하던 존재가 없어서, 도무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밀물처럼 가슴에서 성대로, 입가에서 콧잔등으로, 코와 눈에 난 구멍으로. 휴지 쓸 새도 없이 손바닥으로 속절없이 훔쳐내었다.
2023년 9월 19일. 도대체 이리 슬플 수 있나 싶고 온 세상이 돌연 무너져버렸던 날. 다정했던 10살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의 기억이 그랬다.
2024년 9월 19일. 1년이 흐른 뒤에야 기록을 남기기 위해 똘이 사진을 하나씩 마주해봤다. 보냈다고 하면 정말 영영 보낼 것만 같아 두려웠었다. 벌써 1주기라고 아내와 얘기하고 함께 또 울었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적어본다.
빈자리가 너무 커 슬픈 걸로만 기억됐던 똘이와의 시절을, 슬프지만 행복했던 추억으로 바꿔보려고.
첫 반려견인 '아롱이'가 생각나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함께한 가족이었다. 아롱이의 시간은 나보다 빠르게 흘렀다. 언젠가부터 걸음이 느려졌고 웅크리고 잠자는 날들이 많아졌다. 17살이 된 어느 날. 아롱이는 밤잠을 못 이루고 낑낑대며 빙글빙글 제자릴 돌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번갈아 안으며 졸며 달래며 애써 재워야 했다. 품 안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아롱이가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 하필 언론사 합숙 면접 날이었다. 받은 면접비로 꽃을 샀다.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미친듯이 계속 울었다. 가끔 동네 산책을 귀찮아했던 것, 어릴 때 철없이 굴었던 것, 그랬던 날들이 한없이 후회되고 싫었다. 미안함이 한처럼 남았다.
돌아온 집안에선 배변할 때 신문지가 부스럭거리던 헛소리를 듣고. 우리 가족은 아롱이 때문에 거의 못 갔었던 여행을 다니며 어떻게든 시간이 흐르길 기도했다. 상실의 힘듦은 상상 이상으로 너무 컸고, 오래 갔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눈물이 터져 나오게 했다. 굳게 다짐했었다. 다신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지 않겠다고.
그런데 똘이가 내 다리에 올라와 연(緣)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좋으면서도 큰일났다고 생각했고, 이 또한 어쩔 수 없단 걸 받아들였다.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작고 하얀 강아지가 편안해했다.
"지금 이 장면 있잖아. 이게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 같아. 눈 감을 때도 생각날 것 같은."
애정하는 문지안 작가 에세이 '무탈한 오늘(21세기 북스)'의 문장도 떠올랐다.
지난해 9월 19일 오전이었다. 취재한 걸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평범히 누려왔던 행복이 산산조각이 났다.
"오빠, 큰일났어. 여기 병원인데 똘이가 죽을 수도 있대. 빨리 와, 빨리."
어,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이지. 뭘 들은 거지. 꿈인가. 현실감 없이 모래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그러나 다급하게 회사 밖을 뛰쳐나갔다. 노트북이고 가방이고 다 자리에 내던진 채.
택시를 타려 했다. 앱이 업데이트 한다고 시간을 썼다. 아, 제발 좀, 미치겠네. 육성으로 안 좋은 말들이 튀어나왔다. 빨리 가야 해. 겨우 잡아탔는데 어쩐 일인지 차가 한참 막혔다. 마음은 시속 1000킬로로 내달리는데, 택시는 기어갔다. 죽을 것 같았다. 기사님, 죄송한데 빨리 좀 가주세요. 제발요. 제발.
죽지마 똘이야, 죽으면 안 돼. 괜찮을 거야. 괜찮아. 넘어갈 거야. 지나갈 거야. 그러면 정말 잘해줄 거야. 진짜 더 잘해줄테니까. 내 수명을 나눠줘도 좋아. 제발 살아만 줘. 그렇게만 해달라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기도했다. 평소 소원했던 신에게 애걸하며 빌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아내였다. 똘이 괜찮아졌대, 아, 다행이다, 그런 대화를 기대했으나. 아내의 울음소리가 수화기를 가득 메웠다. 다음 말을 듣기도 전에 내 온전했던 세상이 노랗게 무너졌다.
"똘이 죽었대. 똘이 갔대. 어떡해, 불쌍해서 어떡해…."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피부병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단다. 고생했다고 간식을 줬는데, 똘이가 구석으로 가져가 허겁지겁 급히 먹다 목에 걸려 질식했다고.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한 뒤 다급히 동네 병원에 왔지만 이미 늦었다고 했다.
장모님이 "더 빨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다"고 오열하며 자책했다. 아내도 눈물이 더 나오지 않을 만큼 울었다.
그러게, 급하게 먹지 말라고, 천천히 좀 먹으라고 그리 말했었잖아. 똘이에게 하고픈 말은 꾸역꾸역 다 삼키고, 무릎을 꿇고, 산짐승처럼 길고도 길게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황망하고 애달프고 아파서. 함께하려 했던 날들을 다 누리지 못한 게 속상하고 분하고 억울해서.
아내는 내가 그런 울음 소릴 내는 건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조경란 작가 소설 '식빵 굽는 시간(문학동네)'의 문장이 떠올라 슬펐단다. 주인공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아버지의 방에 불이 꺼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는 한 컵 가득 활명수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으면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나는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어둠을 툭툭 털어내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어디선가 거북이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있었다.'
집을 떠날 시간이었다. 아내가 똘이를 품에 안았다. 알아본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모님과 아내와 똘이를 차 뒷자리에 태우고 내가 운전했다. 눈가에 폭우가 멈추질 않아 소매로 계속 훔쳤다.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장례식장 직원이 똘이와 마지막으로 함께할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작은 방 모니터 화면에 해맑은 똘이 사진이 번갈아 가며 떴다. 너무 천진난만해 슬펐다. 잠시 뒤 똘이가 나무로 짠 관에 담겨 왔다. 하얀 수의를 입고 그 위에 꽃잎 몇 개가 뿌려졌다. 화장하기 전, 똘이와 끝인사를 나눴다.
우리 가족으로 와줘서 정말 행복했어. 행운이었어. 아무런 바람 없이 부지런히 사랑해줘서 고마워. 함께했던 시간을 영영 잊지 못할 거야. 좋은 곳에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금방 갈게. 그땐 헤어지지 말고 딸랑이 던지며 평범히 같이 놀자. 넌 언제나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어. 자주 말해 지겹겠지만 또 말할게. 사랑해, 똘이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똘이가 한 줌 가루가 되어 나왔다. 유골을 어떡할 거냐 묻기에, 스톤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사랑해 마지않던 똘이는 그리 열여덟 개의 작고 동그란 돌이 되었다.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시간이 흘러도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고, 또 다른 밀물이 몰려왔다.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해구에 끝모르게 잠기듯, 심연에서 심연으로. 지독한 우울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실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게 더 편했다.
매일 저녁이면 바깥에 나갔다. 아내와 대화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똘이가 형아 화장실 가면 앞에서 기다렸잖아, 빨리 나오라고. 변도 맘 편히 못 봤지. 기다릴 땐 꼭 내 옷 위에 앉아 있었어. 안 자려고 딸랑이 던지며 시위하던 거 생각나. 그땐 자라고 타박했는데 그리 좋은 거였어. 똘이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치.
걷다가 울고, 울며 또 걸었다.그럼에도 매일 더 슬퍼져서, 대체 이 슬픔이 끝나긴 하는 걸까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수긍하다가, 왜 똘이를 이리 빨리 데려갔느냐고 신을 원망하다가. 억울하고 분해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펫로스'와 관련된 책 몇 권을 읽다가, 어떤 문장도 위로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 무렵 유일하게 심경을 대변해준 글은, 고 박완서 작가 에세이 '한 말씀만 하소서(세계사)'였다(이윤주 작가 에세이,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위즈덤하우스)' 책에서 이를 처음 알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을 잃고 피를 토하듯 남긴 글이었다. 어둠이 그를 집어삼킬 무렵, 88올림픽이 열려 대한민국이 환호하자 이런 문장을 썼다.
'아아,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 미친X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만약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 그러나 곧 아들의 기억이 지워진 내 존재의 무의미성에 진저리를 친다.'
독자들에게 똘이를 잃었음을 말하지 못했다. 얘기하는 순간 정말 보낼 것 같아 두려워서였다.
그러느라 더 힘든 일도 있었다. 똘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단 걸 몰랐던 독자가, 똘이 선물이라며 귀여운 장난감을 보냈을 때. 살아 있었다면 좋아했을 똘이 표정이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워 꺽꺽대며 울었다. 그런 사정은 삼키고 고맙다며 화답하고, 주인 없는 장난감을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다.
그러는 사이 1년이 훌쩍 흘렀다. 똘이 없는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을 돌아 다시 가을이 왔단 게 믿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며 수도 없이 우느라 자주 문장이 멈춘단 걸 봤을 때, 오랜만에 본 사진과 영상을 마주하며 극도로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 때. 여전히 괜찮지 않음을 깨달았다. 애도는 진행 중이다. 문지안 작가 에세이 '무탈한 오늘(21세기북스)'의 문장을 빌려 마음을 표현해본다.
'비어져 나오는 감정을 홀로 안고 잠드는 밤. 떠나간 존재의 빈자리를 손으로 쓸어보는 새벽. 존재를 보내었으나 보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겨울. 삶이 몇 도쯤 서늘해졌음을 깨닫는 봄. 긴 시간을 관통하는 개인의 통증들. 괜찮지 않다거나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저 서늘함을 내포한 평정 상태에 천천히, 아프게 적응해 갈 뿐이다.'
공감 능력이 거친 누군가 혹여나 "사람도 아닌데 뭘 슬퍼하느냐"고 함부로 이야기할까 싶기도 해서. 그런 시선에 슬픈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거나, 빠르게 극복하려 애쓸까 봐. 그러다 외려 더 힘들까 걱정이 되었다.
논픽션 작가인 E.B.바텔스는 저서 '아는 동물의 죽음(위즈덤하우스)'에서 이리 남겼다.
'(반려동물 주인들에겐 공통적으로) 엄청난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저 고양이 한 마리", "그냥 개 한 마리"라고 일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속상했던 기억이 있었다. 별것 아니니 '어서 극복하라'는 뜻의 말. 심지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조차 타인이 동물을 잃고 크게 슬퍼하면 그것이 도를 넘었다고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앞서 나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권리를 박탈당한 슬픔"이라고 했다.'
반려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이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단 분석도 있었다. 조지훈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원장은 저서 '어서오세요, 펫로스 상담실입니다(라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 관계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중에서도, 엄밀하게 말하자면 '부모-영유아'의 관계와 유사하죠. 반려동물들은 성체가 되어서도 우리의 보살핌을 요구하니까요. (중략) 이렇게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여 년을 자녀처럼, 그것도 어린아이를 돌보듯 애지중지 키워오다 사별을 경험했을 때, 그 사별이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던 대상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안겨준 그리움이고 안타까움입니다. 심한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심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떠난 그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그만큼 지극하고, 진실 되었다는 반증입니다. 우리는 같이 보내지 못한 시간과 좀 더 잘해주지 못한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안타까움은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 생기는 후회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던 지극한 사랑의 투영입니다.'
그러면서 심 수의사는 같은 저서에서, 죽음을 맞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5단계로 진행된다고 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한 게 이렇단다. 1단계는 부정과 고립, 2단계는 분노, 3단계는 협상, 4단계는 우울, 5단계는 수용으로 나아간다고.
죽은 게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스스로나 누군가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편안하게라도 보내달라며 협상하다가,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거란다.
조지훈 원장은 저서 '어서오세요, 펫로스 상담실입니다(라곰)'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편지나 수필, 시 등 어떤 형식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나의 OOO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 OOO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 힘들겠지만 첫 문장을 적었다면, 이제 사별에 대한 내용과 나의 생각 그리고 감정을 정리해 덧붙여 써봅니다.'
심용희 수의사는 저서 '펫로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에서, 감정을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했다.
'감정을 가슴속에만 담아 두지는 마세요. 감정 표현은 약점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하고, 존재와 상실을 겪어 내기 위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세요. 당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세요. 위로와 이해, 추억의 공감을 거치며 당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 가지 방법을 동원해봐도 똘이를 잃을 게 너무 슬퍼서.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애정을 나눌 일도 없었다면, 그리 원초적인 부정의 단계까지 이르렀을 때 늪에서 끌어 올려준 문장 또한 심용희 수의사의 책에 있었다.
'다만, 당신이 슬픔의 바다 깊숙이 침잠할 때 만남과 그 모든 교감, 사랑의 순간이 지금 슬퍼하기 위해서만 지나온 시간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주세요.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추억들을 감정의 파도로 쓸어 다듬어 주세요. 다듬고 다듬다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슬픔의 바닥에서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빛나게 될 것입니다.'
E.B.바텔스 작가의 책 '아는 동물의 죽음'에 적힌 문장 또한 큰 힘이 되었다.
'사랑하고 잃는 것이 아예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영국 시인, 엘프리드 테니슨 경)
에필로그(epilogue).
언젠가 똘이를 다시 만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약속하듯 편지를 남겨본다.
똘이야, 너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었어.
가끔은 너도 귀찮을 수도 있잖아. 오늘따라 유독 몸이 무겁다거나, 가족들 인기척에 잠을 못 잤다거나, 아님 날이 흐려서 기분이 별로라거나.
그래서 초인종이 울려도 자는 척하거나, 이유 없이 괜스레 짜증을 내거나, 혼자 있고 싶어 집에 웅크리거나, 그럴 수 있잖아.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 왜 넌 한결같이 이리도 다정했을까. 따순 온기를 한가득 머금고, 귀를 젖혀 웃으며 반겨줬을까. 맨날 보는 얼굴인데, 왜 그리 늘 빤히 바라봤을까. 마치 처음 만난 날처럼 말이야.
그런 게 참 궁금하고, 고맙고 또 미안했어. 시간을 붙잡아 몇 번이고 되돌아가도 네가 부지런히 담는 내 모습이, 나보단 여전히 더 많을 것 같아서.
널 다시 만나면 꼭 너보다 더 많이 바라볼 거야. 네가 날 한 번 보면, 두 번 볼 거고, 두 번 보면 세 번 볼 거야. 지겹다고 할 때까지 부지런히 보고 또 안아주고 놀아주려고 해. 밀린 시간만큼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부디 잘 지내야 해.
안녕,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지만 만사 제치고 반가워하는 너의 걸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달려오고 밥을 먹다가도 달려오는 너의 걸음은 일관성 있는 호의의 몸짓. 13년 동안 나를 줄곧 따라다니던 걸음은 몸을 일으키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멈추었다.'(문지안 작가, 무탈한 오늘 中)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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