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중심에서 ‘스웨이드’를 외치다
얼마 전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의 재결성 소식이 전해졌다. 10년 동안 음악 칼럼을 쓰면서 전설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이름들부터 막 데뷔한 케이(K)팝 그룹까지 꽤 많은 아티스트를 다루었는데, 정작 가장 깊이 음악에 빠져 있던 청소년기를 보낸 1990년대에 소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콘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하드코어 장르는 대중성이 떨어지니 논외로 한다고 쳐도, 오아시스와 블러로 대표되는 브릿팝은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대중음악을 지나치게 세분화하는 용어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브릿팝은 오아시스라는 밴드 때문에라도 계속 언급되는 장르이기에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 1980년대를 지배했던 화려하고 자극적인 헤비메탈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1990년대에 들어서 음울하고 날것의 느낌을 강조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음악은 대안이라는 뜻에서 ‘얼터너티브 록’이라고 불렸다. 그중에서 너바나와 펄잼을 위시한 시애틀 출신 밴드들이 먼저 인기를 얻었는데, 이들은 스스로 ‘그런지(지저분하다는 뜻에서 유래) 록밴드’로 자신들을 소개했고 얼마 안 되어 대안이 아닌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러자 영국에서 미국의 그런지 록에 대항할 자국 록밴드들을 묶어 부르면서 만들어진 표현이 브릿팝이다. 시애틀 4인방(너바나, 펄잼, 앨리스 인 체인스, 사운드가든)에 대적하듯 영국에서도 브릿팝 4인방(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이라는 표현이 곧잘 쓰일 정도로 대결 구도가 선명했다. 태생부터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의 장르였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브릿팝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지 록이라는 장르를 숙명처럼 여긴 시애틀 밴드들과 달리 브릿팝 밴드들은 브릿팝이라는 장르 자체를 거부하곤 했다. 그들은 얼마 안 있어 제각각의 방향으로 뻗어 나갔고 전성기도 너무 짧았다. 라디오헤드나 콜드플레이는 아직도 활동한다고? 그들은 브릿팝으로 보기 어렵다. 1990년대 나온 영국 록밴드들을 대충 다 브릿팝이라고 여기고 라디오헤드를 대표적인 브릿팝 밴드로 꼽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지 않다. 설명은 여기까지. 용어나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만 좋으면 그만이지.
대중적인 성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아시스가 브릿팝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다음이 블러. 그러나 내가 최고로 사랑한 브릿팝 밴드는 스웨이드였다.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불안하고 퇴폐적이라고 눈살을 찌푸렸는데, 나는 같은 이유로 그들을 좋아했다. 스웨이드는 1989년에 결성되어 1992년에 데뷔한 뒤 아슬아슬하게 커리어를 이어왔다. 갤러거 형제의 살벌한 갈등 관계로 유명한 오아시스처럼 스웨이드도 멤버들 간의 불화와 잦은 교체를 겪었다. 동성애 양성애 커밍아웃 소동에 마약 문제도 심각했다. 하지만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하면서도 그룹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브렛 앤더슨(보컬)은 지금까지 그룹을 지켜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몇번이나 와서 질펀한 공연을 펼치고 갔다.
스웨이드의 노래는 조울증 환자의 심리 상태와 비슷하다. 밝으면서도 어둡고, 신나면서도 처지고, 아름답다 싶은데 어느새 더럽혀져 있다.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추천곡을 골라본다. ‘뷰티풀 원스’는 가장 밝고 신나고 아름다운 쪽에 속한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기타 리프에 댄서블한 리듬 라인,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코러스를 가진 이 노래를 통해 브렛 앤더슨의 극한 비음에 익숙해져 보자. 그다음은 ‘트래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전형적인 스웨이드표 노랫말을 지녔다.
“당신과 나는 쓰레기예요/ 우리는 거리의 연인이고 산들바람 속 먼지와도 같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죠”
이 노래들이 마음에 든다면 난도를 올려보자. 보컬과 기타가 누가 더 처절한지 경쟁하는 ‘디스 할리우드 라이프’를 추천한다. 볼륨 높여 듣고 나면 좀처럼 취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데, 음악은 합법적인 마약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떠오른다. 사실 스웨이드가 발표한 노래 절반은 음울하기 짝이 없는 노래들인데 차마 추천은 못 하겠다.
오아시스 재결성 소식에 벌써 내한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이왕이면 블러, 스웨이드까지 합동 공연이 성사되면 좋겠다. 나를 비롯해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팬들이 브릿팝 대축제를 거뜬히 매진시키고 ‘떼창’을 들려줄 텐데. 한창 활동하던 시절 밴드들 사이의 전쟁 같은 갈등 관계를 아는 팬들이라면 합동 공연은 불가능하다고 하겠지만, 세월은 사랑도 증오도 흐릿하게 만들어주는 법. 어떻게, 안 될까?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뒤죽박죽 행정에 ‘님비’현상까지…소외된 이웃 품던 ‘밥퍼’ 어디로?
- 태풍 ‘풀라산’ 접근에 전국 폭우…중대본 2단계 격상
- 윤 ‘체코 원전 수주’ 장담했지만…‘지재권’ 걸림돌 못 치운 듯
- 이스라엘, 레바논 남부 공습…헤즈볼라 2인자 등 14명 사망
- 한숨조차 뜨거웠던 ‘최악 폭염’…내년에도 ‘길고 긴 여름’이 올까
- “그럴거면 의대 갔어야…건방진 것들” 막나가는 의협 부회장
- 여권 ‘김건희 겹악재’ 거리두자…친윤 “같이 망하자는 거냐” 발끈
- 엄마 지킬 다섯 쌍둥이…‘팡팡레이저’ 무사 출생 완료!
- 이문세 ‘옛 사랑’·아이유가 왜…이재명 공판에 등장한 이유는
- 이재명 ‘선거법 위반’ 2년 구형에…민주 “공작수사 통한 정치탄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