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마지막', 얼마나 고민해 보셨나요? "우리의 시간은 같은 속도가 아니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9. 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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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삐뽀삐뽀] 반려동물의 노화와 죽음에 대하여 (글 : 홍수지 수의사)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2006년 2년 차 수의사였던 나는 연신 하악질을 하던 노란 줄무늬의 새끼 고양이를 만났다. '앙꼬'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같이 보낸 시간만큼 같이 나이를 먹었다. 2024년 나는 40대 중반이 되었고, 앙꼬는 18살이 되었다. 2년 전부터 앙꼬의 노화 속도가 나를 앞서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변화들은 내게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다.

2년 전만 해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현관문을 열기 전에 미리 나와서 울고 있었다. 지금은 현관문과 중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면서 "앙꼬야" 하고 불러야,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다급하게 야옹 소리를 내며 나온다. 다가오는 순간도 경쾌한 발걸음이 아니다. 뒷다리가 약간 벌어진 채로 어기적거리며 제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해 빠르게 오려고 애쓰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다.

언젠가부터는 식탁에서 바닥으로 한 번에 뛰어내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질 때 "쿵" 하던 둔탁한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식탁으로 뛰어오르는 것도 힘든지 의자를 거쳐서 식탁으로 올라간다. 고양이가 높이 올라가지도,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하는 모습은 꽤 서글픈 일이다.

사료는 거의 대부분 삼키고, 어쩌다 잘못 걸린 사료를 어금니로 한번 씹는다. 사료를 먹을 때 나던 '까드득' 소리는 진작에 사라졌다. 눈앞에서 깃털을 세차게 흔들어도 눈으로만 쫓거나 무관심이다. 내게 뭘 바라는 게 없는 느낌이다. 그게 많이 슬프다. 그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쯤 와서 엎드려 자는 게 다다.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걸고 만지면 슬며시 일어나서 베란다로 나간다. 내가 사는 집에는 개 두 마리도 있는데, 앙꼬 혼자 베란다에 있을 때면 개들이 내 주위를 차지해서 밖으로 나간 건 아닐까 싶어 더 미안해진다.


진료실에서 만난 동물들의 노화는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보호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왜 그런 거냐고 물으면 나이 들면 그럴 수 있다고 당연하게 얘기했다. 어떤 때는 당연한 걸 못 받아들이는 그들의 간절함을 욕심이 과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연했던 노화가 앙꼬에게는 당연한 일이 되지 않았다. 노화라는 한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간 뱉은 말빚에 큰 이자가 붙은 모양이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부모님의 노화를 처음 직면하면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 가득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 빨리, 당연하게 익숙해진다. 저항감이 크지 않은 것이다. 반려동물의 노화는 왜 다를까? 우리에게 반려동물은 나보다 늙어가는 게 당연한 존재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어리고 젊어서 나보다 오래 살아야 할 것 같은 내 자식, 동생의 느낌이기 때문에, 반려동물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나보다 어렸던 존재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노화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사람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우리와 한 공간에 있지만, 그들이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반려동물은 명실공히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소중한 우리 가족을 위해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거르지 않고, 질 좋은 음식과 산책과 놀이 시간을 제공한다. 질병에 걸려도 최선의 치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에 반해 우리는 그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겨우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은가? 반려동물이 아플 때 얼마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지, 비용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돌봄 노동을 함께 할 이가 있는지, 연명 치료는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안락사는 언제 선택해야 하는지 등등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우리는 꽤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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