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장국영, 현재진행형 민주화 운동…'굿모닝 홍콩'[이예슬의 쇼믈리에]
영웅본색2·천녀유혼·아비정전 명장면 곳곳
과거 홍콩영화, 현재 민주화운동 한 무대에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어떤 사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아비정전), 1분 1초라도 모자라면 그건 평생이 아니야(패왕별희), 네가 남자든 여자든 난 널 사랑해(금지옥엽), 슬픈 일도 괜찮아. 세상 끝에 묻어버리고 올게(해피투게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배우 장국영을 추억할 수 있는 명작옥수수밭의 연극 '굿모닝 홍콩'이 서울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 중이다. 장국영의 팬클럽인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2019년 홍콩에서 장국영의 흔적을 따라가다 우연히 홍콩 시위대에 휩쓸리는 내용을 담은 연극이다.
연극은 장사모 회원들이 '영웅본색2'의 공중전화부스씬을 재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조지폐단을 검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총에 맞은 아걸(장국영)이 갓 태어난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소마(주윤발)에게 안겨 사망하는 그 유명한 장면이다.
극 곳곳에 장국영 출연작의 명장면이 배치돼 영화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천녀유혼'에서 퇴마사 연적하가 흑산대마왕에 맞서는 하이라이트 장면,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러닝셔츠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는 장면도 나온다.
장국영이 부른 노래들을 듣는 재미도 있다. 장국영을 배우로만 알고 있는 이들도 많지만 사실 그는 가수로 데뷔했다. 연극 시작 전부터 빈 무대에 종횡사해 OST로도 쓰인 '풍계속취'가 흐르고, 막이 전환될 때마다 메가히트곡 '모니카'가 등장한다.
연극은 현재의 홍콩 모습을 그림으로써 장국영에 대한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장사모 회원들은 장국영을 추모하기 위한 재연 영상을 촬영하려 하지만 홍콩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해지는 와중에 회원들은 가는 곳마다 시위대를 만나고, 시위대에 합류한 것으로 간주돼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회원들은 초반 시위대와 엮이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린다. 하지만 장국영을 추억하기 위해 홍콩에 왔다는 회원들에게 시위대가 BTS의 '불타오르네'를 부르며 환영하고, 시위대 학생이 장국영의 콘서트 멘트로 운을 띄우며 '월량대표아적심'을 함께 부르는 과정에서 국적과 세대는 다르지만 양측의 마음의 벽은 허물어진다.
중년의 회원들은 '프리 홍콩'을 위해 경찰과 맞서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홍콩 영화의 전성기였던, 장국영이 생존하던 그 당시엔 대한민국이 민주화 운동에 한창이었음을 떠올린다. 부상을 입고 신발도 잃어버린 시위대에게 '주윤발 에디션' 운동화를 벗어주는 장면에서 1980년대의 한국과 2019년 홍콩의 세계관이 만난다.
연극은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확성기에서는 보통화가 쩌렁 쩌렁 울리고, 시위대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광둥어로 외친다. 관객들의 연령대는 다른 공연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젊은 시절 홍콩 영화를, 장국영을 사랑했던 이들이리라.
공연은 27일까지.
★공연 페어링 : 보졸레 가메
선이 고운 얼굴과 서글픈 눈빛의 장국영은 이방인을 연기할 때 특히 빛났다. 평생 딱 한 번 죽을 때만 땅에 내려오는 '발 없는 새'처럼 떠도는 '아비정전'의 아비, 동성 연인을 향한 사랑과 질투에 아파했던 '패왕별희'의 두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해피투게더'의 보영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20세기 말 홍콩의 시대 상황도 비슷했다. 영국의 통치는 받았지만 영국은 아닌, 언젠가는 중국으로 반환돼야 하는 불안한 홍콩의 모습을 반영하는 영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극 '굿모닝 홍콩'을 보고는 주류에 포함되지는 못하는, 경계선에 위치한 듯한 느낌의 보졸레 와인을 마시고 싶어졌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로 유명한 그 지역이다.
보졸레에서는 '가메'라는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과실향이 주도적이고 복합미는 뛰어나지 않아 흔히 고급 와인으로 취급받지는 않는다. 부르고뉴에 속해 있긴 하지만 잘 나가는 큰형님 부르고뉴는 겸상을 안 해주는, 배 다른 동생 느낌의 포지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추럴 와인이 인기를 얻으며 보졸레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모르공, 물레아방 등에서 생산하는 보졸레 그랑크뤼 와인들은 꽤나 파워풀하다. 마냥 가벼울 것이란 선입견을 부술 만큼 구조감이 탄탄하고 타닌 함량도 높은 편이다.
잠재력이 약한 와인으로 무시당해 왔지만, 잘 만든 보졸레는 부르고뉴 피노누아에 뒤지지 않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ashley8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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