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과 ‘복권형 주식’, 안 터지니 문제일 뿐 [자본시장 이야기]

이관휘 2024. 9. 2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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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 따르면 복권 선호와 복권주식 선호의 배경엔 비슷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존재한다. 복권을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투자자들은 복권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주가 폭락으로 서킷브레이크가 발동된 8월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의 모습.ⓒ시사IN 이명익

‘대박 나세요‘라는 인사가 ’부자 되세요’를 대체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대박 코인으로 조기 은퇴한 사람들, 부동산 가격 상승 분위기에 맞물려 사놓은 주택으로 대박 낸 연예인 등은 거의 일상적 뉴스거리가 되었다. 대박은 복권 용어지만 그 꿈은 주식시장에서도 무르익는다. 주식 투자는 복권 투자와 어떻게 다를까? 다르기는 한 걸까?

■ 주식이나 복권이나

복권 타입의 주식(복권주식)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 알려면 먼저 복권의 특성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대체로 복권 매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없거나 형편없이 낮다. 그러나 아주 예외적인 경우, 즉 당첨되면 극단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는다. 그래서 아래 〈그림〉처럼 왼쪽은 불룩하고 오른쪽은 납작한 실선(오른쪽으로 길게 누운)이 나타난다. 풍선의 오른쪽을 누르면 풍선 안의 공기 대부분이 왼쪽으로 몰려 왼쪽이 부풀고 오른쪽이 납작해지는 것처럼 대다수는 굉장히 낮은 수익률을 얻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높은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한때 유행어였던 ‘부자 되세요’. 지금은 ‘대박 나세요’가 대체했다.

〈그림〉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정규분포(좌우대칭인 종 모양)에서는 수익의 빈도가 ‘평균’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수익이 적어지거나 많아질수록 빈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복권 매입의 수익을 실선으로 그린 ‘오른쪽으로 길게 누운’ 수익 분포에서는, 낮은 수익 쪽의 빈도는 상당히 크지만 높은 수익 쪽으로 갈수록 그 빈도가 극히 낮아진다.

미국 마이애미 대학 경영대학원의 알록 쿠마 교수는 복권주식을 맨 처음 엄밀하게 정의한 경제학자다. 그는 복권의 특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복권주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첫째, (복권처럼) 가격이 싸다. 둘째, 기대수익률(expected return)이 낮거나 음수다. 대다수 복권이 복권 값만 날린 채 휴지통에 버려지는 것과 비슷하다. 셋째, 기대수익률의 분산(variance)이 크다. 복권 수익도 손해부터 대박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다. 넷째, 수익률 분포가 '오른쪽으로 길게 누웠다’. 복권 당첨 가능성이 아주 낮은 것처럼.

요약하자면 작은 확률로 큰 보상을 주지만, 높은 확률로 작은 손실이 일어나는 값싼 주식이 복권주식이다. ‘터지면 대박’과 ‘대부분 손해’를 더한 정의다.

쿠마 교수는 미국의 유력 증권사(major discount brokerage) 중 한 곳(어디인지 밝히지는 않았다)의 월별 계좌 데이터를 이용했다. 각 계좌의 주인이 자신의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복권주식에 투자한 비율(weight)이 어느 정도인지를 월별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개인투자자가 기관투자자보다 복권주식을 더 좋아한다는 경향을 찾아냈다. 기관투자자들은 오히려 복권주식을 회피하는 성향마저 있었다.

개인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것이 거의 확실한데도 복권주식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가 제시한 대답은 이렇다. 복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당첨될 확률을 실제 확률보다 더 큰 것으로 착각한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당첨 확률은 1만 분의 1이나 100만 분의 1이나 다르지 않다. 직관적으로 이 두 확률 간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실제 당첨 확률이 100만 분의 1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1만 분의 1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당첨 확률보다 ‘주관적’ 당첨 확률이 훨씬 높은 편향은 투자자들이 ‘오른쪽으로 길게 누운’ 증권, 즉 복권주식을 선호하는 이유가 된다.

쿠마 교수의 다음 질문은 ‘복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복권주식도 다른 주식들보다 선호하는지’ 여부였다. 과연 그랬다. 복권을 좋아하는 개인투자자들은 복권주식에도 더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 중엔 가난하고 젊으며 교육 접근성이 낮은 도시 거주 비혼 남성으로, 특정 인종 그룹이나 종교에 소속된 사람이 많았다. 이는 쿠마가 계좌 데이터 추적 및 관련 문헌들을 깊이 살펴 인용한 결과로, 정치적 편견에 바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의 여러 주를 비교해보니, 복권 거래가 쉽고 인기 있는 지역의 투자자일수록 복권주식 투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한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10가구 중 하나(10%)가 로또나 경마 등 복권을 구매했다. 2020년 이후 1분기 기준 최고치라고 한다. 사는 것이 팍팍할 때 복권을 산다는 통설을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쿠마 교수는 복권주식도 복권과 마찬가지임을 보였다. 시계열 분석을 해보니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복권주식 수요도 늘어났다.

쿠마 교수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복권 선호와 복권주식 선호 모두에 비슷한 사회경제적 동인(socioeconomic clientele)이 작동하며 두 투자 대상은 서로 보완재로 기능한다. 복권을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투자자들은 복권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논문은 저소득층 투자자일수록 복권주식 투자를 더 많이 하며, 그 결과로 더 많은 손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복권주식 투자는 결국 부의 분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 ‘터지고 나서 꺼질’ 때를 주시하라

복권주식 투자가 복권 투자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복권은 터져야만 수익을 내지만 복권주식 투자는 정반대의 경우에도 수익을 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느 주식이 지난달 딱 하루 동안만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고 치자. 나머지 날들의 수익률은 무시하자. 단 하루라도 수익률이 엄청났으니 단숨에 많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한 달 내내 주가가 조금씩 계속 오르는 것보다 그만큼의 주가 상승이 단 하루에 달성된다면 훨씬 더 눈에 띄게 될 것이다. 그런데 투자자들은 과연 이런 주식에 열광할까?

길을 걷다 보면 ‘로또 당첨된 곳’이라고 써 붙인 가게들이 있다. 당첨된 복권을 판매했던 가게에서 복권을 산다고 당첨 확률이 높아질 리는 만무하다. 복권의 당첨 여부는 그야말로 랜덤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권주식은 ‘또다시 터질’지도 모른다. 그 주식의 가격이 비록 하루 동안일지언정 크게 올랐던 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체계적(우연의 반대 의미) 요인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어서다. 투자자들이 이런 주식에 열광하는 이유다.

알록 쿠마 미국 마이애미 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Google 갈무리

조지타운 대학의 발리(T. Bali) 교수 연구팀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 복권주식을 정의할 새로운 변수를 발견했다. 이들은 여러 주식들을 ‘샘플’로 고른 뒤 매월 단위로 이 ‘샘플 주식’들의 최대 하루 수익률을 뽑아 그 값을 ‘맥스(MAX)’로 이름 붙인 변수에 기록했다. 월별-주식별 변수다. 그리고 매달 맥스를 기준으로 주식들의 순위를 매겨 상대적으로 맥스가 높았던 주식들을 포트폴리오로 묶었다. 맥스가 높은 주식들은 다른 주식들에 비해 기대수익률이 낮고, 변동성이 크며, ‘오른쪽으로 길게 누운’ 정도가 유의하게 컸다(복권의 특징). 이는 ‘맥스가 높은 주식’이 복권주식이라는 의미다.

연구팀은 맥스가 높은 포트폴리오들의 수익률이 바로 다음 달에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열광한 투자자들 탓에 과대평가되었던 높은 맥스 주식들의 가격이 다음 달에 제자리로 회귀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를 이용한 투자 전략을 세우는 일은 간단했다. 매월, 이전 달의 맥스가 가장 컸던 주식들을 공매도하면 된다. 공매도는 가격이 떨어질 때 수익을 낸다. 이와 함께 맥스가 이전 달에 낮았던 주식들을 매수하면 롱숏(long-short) 포지션을 동시에 가진 포트폴리오도 만들 수 있었다. 연구팀은 이 전략으로 ‘주어진 위험 수준에서 요구되는’ 월간 필수 수익률보다 1% 정도 높은 추가 수익을 냈다. 이는 연간 12% 정도의 수익을 ‘위험 수준 이상’으로 올린다는 의미다. 또한 이 수익률의 대부분은 이전 달 ‘맥스’가 높은 주식의 공매도에서 발생했다(숏 포지션). 이전 달 ‘맥스’가 낮은 주식의 가격이 올라 발생한 수익은 미미했다(롱 포지션).

복권은 ‘터져야’ 돈이 된다. 그러나 복권주식은 ‘터지고 나서 꺼질’ 때 수익을 올리는 새로운 투자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공매도가 가능할 때만 쓸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다. 이 ‘맥스 투자 전략’은 다른 투자자들이 복권주식에 열광할수록 (그 가격이 크게 올랐다가 크게 떨어질 것이므로)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 ‘자기 과신’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

국가별 문화적 차이는 이 전략의 수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회학에서는 국가별 ‘개인주의 성향 지수’를 만들어 연구에 활용해왔다. 경제학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지수다. 이 지수는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보다 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이며 중국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부모, 친족, 친구들과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개인주의 성향이 약한 나라에서 크게 나타난다. 만약 내가 복권 투자를 하다가 돈을 날려도 ‘부모님이 모른 체할 리 없다’고 믿는다면, 그런 믿음이 없을 때보다 복권에 더욱 겁없이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쿠션 효과). 복권주식에 적용해보면 이는 ‘맥스 투자 전략’이 강한 집단주의 성향의 나라에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복권 판매점에서 복권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시민들.ⓒ연합뉴스

바로 위의 문장은, 내가 몇 년 전 발리 교수의 논문을 읽고 나서 생각했던 가설이다. ‘맥스 투자 전략’을 활용해, 경제학에서 홀대받고 있는 ‘문화’라는 변수를 실증 연구에 도입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서울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있던 전용호 학생(현재 인천대 교수)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많은 나라들에서 발리 교수의 연구 결과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초의 가설과 달리 ‘맥스 투자 전략’의 수익은 개인주의 성향이 약한 나라들이 아니라 강한 나라들에서 더욱 크게 나타났다. 심리학과 사회학, 행태경제학 부문의 관련 논문들을 여러 편 읽고 나서야 이 같은 결과가 ‘자기 과신(overconfidence·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 특히 뚜렷이 관찰됨)’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 과신은, 내가 가진 정보가 다른 어떤 정보보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편향을 말한다. 투자자들의 자기 과신은 복권처럼 랜덤하게 결과가 결정되는 사건들보다 주식 투자처럼 어느 정도 본인의 분석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더욱 활발하게 작동한다. 즉 복권주식의 복권적 성격(랜덤)에서는 ‘쿠션 효과’가 클 수 있으나, ‘주식 투자’ 측면에서는 ‘자기 과신’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이로 인해 강한 개인주의 성향의 국가들에서 높은 ‘맥스’의 주식들에 대한 과대평가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이 연구는 학계 최고 권위지인 〈매니지먼트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게재 확정 후 전용호 박사와 함께 역시 ‘우리가 최고’라는 ‘자기 과신’의 건배를 한 기억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로 수차례 홈런왕을 차지한 적이 있는 랠프 카이너는 “홈런타자는 캐딜락을 몰고, 단타왕은 포드를 몬다”라고 말한 바 있다(카이너가 활약하던 1940~1950년대 초엔 캐딜락이 부의 상징이었으니 지금 당신의 차량 선호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단타를 아무리 많이 쳐도 사람들은 거포의 홈런 한 방에 더 열광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이승엽이라도 이번 타석에 홈런을 칠 확률은 어지간한 타자들이 1루타를 칠 확률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그렇다.

주가가 오르는 시기에 분산투자는 확실히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복권주식 투자자들은 분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실증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다. 이는 이른바 ‘주도주(해당 시기뿐 아니라 이후에도 강력한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이 자주 큰 인기를 끌게 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분산투자를 할지 아니면 복권주식 등 다른 특정 섹터에 집중 투자할지 여부는 결국 투자자가 선택할 문제다. 어느 유명 배우가 40억원 정도에 사들인 아파트가 135억원이 되었단다. 부럽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나는 부럽고 배 아픈 것으로 그친다. 다른 누군가는 이후 그런 식으로 ‘터질 만한’ 아파트를 찾고자 열심히 노력할 테지만 말이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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