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여라…화석에너지에 뺏긴 생명력 회복을 위해

한겨레 2024. 9. 21.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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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남창훈의 생명의 창으로 바라본 사회
문명과 생명의 상반 관계

문명화는 인체 에너지 대체 과정
움직임 없애는 ‘반생명 속성’ 역설
운동은 몸·환경·지구 친화적 행위
걷고 오르고 텃밭 가꾸는 삶 소중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무심천 체육공원에서 시민들이 조깅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생명은 움직이면서 자신을 유지한다. 이는 움직임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도 적용된다.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생체물질이 다른 물질로 바뀌면서 에너지가 흐른다. 세포 속 수많은 물질들이 때론 홀로 때론 무리 지어 이동하면서 다른 물질들과 반응한다. 이러한 반응은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물질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다시 분해된다. 이 과정에 쉼 없이 에너지가 쓰인다. 이 때문에 생명활동을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순환은 미세한 분자의 운동부터, 세포 소기관의 형성과 분해, 세포의 소멸과 재생, 기관의 손상과 회복, 개체의 질병과 치료, 군집의 변천과 지구 규모의 물질 흐름에 이르기까지 쉼 없는 부침을 겪으며 이뤄진다.

인체의 대사와 호흡은 마치 회로처럼 연결된 세포내 물질들의 분주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내분비 기관에서 나온 호르몬들은 뇌와 소장, 간 같은 여러 기관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전령 노릇을 한다. 더 큰 규모에서 볼 때 인체는 미생물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나 환경 속 여러 인자들에 둘러싸인 네트워크 속 한 점과 같다. 움직임은 이처럼 분자, 세포 소기관, 세포, 기관, 개체, 군집이라는 여러 위계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각 위계에서의 움직임은 다른 위계의 움직임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이뤄진다. 이 가운데 인간 개체 수준에서의 움직임을 우리는 관용적으로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규칙적 운동은 뇌기능도 향상

앞서 소개한 모든 위계에서의 적절한 움직임은 건강의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분자와 세포의 움직임을 통해 병원체나 외부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고, 결함이 있는 분자나 세포의 재활용이 이뤄져 제 기능을 갖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각 구성요소들의 쉼 없는 움직임 속에서 모든 위계의 상호작용 회로가 적절하게 구성되며, 그 작용들에 주기성과 항상성이 깃들 수 있다. 아주 낮은 위계, 즉 분자나 세포들의 움직임은 더 높은 위계, 즉 개체의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 인해 개체의 움직임이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상태가 만성화되면 생리 기능에 문제가 생기고 질병에 걸리게 된다. 이러한 인과관계를 다소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는 이론이 호메시스(hormesis)이다.

호메시스는 인체에 저용량의 독소가 주어졌을 때 몸에서 보호 반응이 유도되어 더 많은 양의 동일한 독소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기는 과정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례가 백신 접종이다. 소량의 처리된 병원체가 주입되면 언젠가 병원체가 침입했을 때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몸에 생긴다.

운동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운동하기 위해선 에너지가 필요하다. 필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은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 안에서 벌어지는 전자전달계의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전자전달 과정에서 호흡을 통해 들이마신 숨 속 산소에 전자가 추가되면서 활성산소종이 만들어진다. 이 물질은 아주 높은 반응성을 띠고 있어서 자칫 해로울 수 있지만 통제된 방식으로 적정량이 만들어지면 유익한 역할을 한다. 적절한 운동 가운데 만들어진 활성산소종은 신호물질로 작용하여 이들의 과도한 작용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이 시스템은 활성산소종 중화, 항산화 효과 발휘, 미토콘드리아 생성 조절을 통해 세포의 항상성을 유지시킨다. 즉 규칙적인 간격으로 적정량의 활성산소종을 발생시키는 것은 일종의 호메시스로 작용하여 우리의 건강을 유지시킨다.

운동은 육체적인 항상성뿐 아니라 정신적 기능의 유지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속적이고 규칙적으로 수행되는 운동은 뇌 속 해마의 시냅스 가소성을 촉진하여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키고, 노화와 관련된 여러 신경 퇴행성 질환의 발병을 지연시키며, 인지 과정에 중요한 뇌 영역의 위축을 방지한다. 또한 다양한 임상시험 결과 젊은층과 노년층 모두에서 유산소 운동 또는 근력 운동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처럼 운동은 심신을 아울러 생명의 항상성에 기여한다.

움직임, 즉 운동을 인체 유지의 기본 속성이라 할 때 흥미롭게도 현대 문명화는 이러한 속성을 교란하는 경향을 지닌다. 문명화를 아주 간략하게 축약하여 묘사하면 에너지의 대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명화는 인간과 가축의 에너지를 화석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이며, 그 결과 인간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소멸시키는 과정이다. 즉 화석에너지의 폭발적 사용은 인체 에너지 사용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현대 의학의 발전에 따라 수명이 늘어난 주된 이유는 적절한 의료 처치를 통한 영아사망률 감소, 상하수도를 비롯한 보건위생 수준의 발전, 백신과 항생제 등과 같은 감염병 통제 능력 발달, 영양 상태의 전반적 개선 등이다.

사회적 ‘운동’ 인프라 만들어야

반면 현대에 들어 과도하거나 잘못된 섭식이나 운동 부족으로 인해 심혈관계 질환의 비중과 심각성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국제 보건 측정 및 평가 연구소(IHME)가 ‘조기사망과 장애로 인한 수명 감소 연수를 모두 합한 질병의 총 부담 정도’(2019년)를 조사 분석한 결과 압도적 1위의 부담 질병이 심혈관계 질환이었다. 2위인 암에 비해 조기사망과 장애를 통해 미치는 부담 정도가 1.7배에 달한다.

문명화는 인간 생명활동의 입장에서 지극히 모순적이다. 폭발적인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운영되는 문명은 운동 부족의 형태로 삶에 고착화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성찰이 가능하다. 당연한 듯 쓰던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우리 몸을 움직이는 것은 환경 친화적이고 지구 친화적일뿐더러 더 중요하게는 우리 몸 친화적이라는 사실이다. 가능한 한 거리에선 차를 타는 대신 걷고, 계단을 오르고, 직접 집을 청소하거나 관리하고, 주변 텃밭의 자연을 가꾸거나 기르는 일은 우리 몸과 환경 모두에 친화적인 일이다.

운동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모두가 운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도 중요할 것이다. 접근성 높은 녹지와 보행자 친화적인 길들로 도시를 바꾸고, 학교와 직장에 운동장을 비롯한 운동 공간을 설치하고 충분히 운동할 시간을 보장하며, 지역 공동체는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들이 고루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운동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지향점 가운데 일부일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 자신과 문명이 모두 지속 가능해질 수 있기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서울대와 프랑스 퀴리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생화학·면역학 등을 공부했다.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수용체 개발, 노화와 면역 사이의 연관 등을 연구하면서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부단히 모색 중이다. ‘탐구한다는 것’, ‘이타주의자’, ‘소년소녀, 과학하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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