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경고등] 근대 조선업 발상지 부산 영도, 이젠 쓸쓸한 섬

박성제 2024. 9. 2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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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불황에 주민 이탈로 40년간 인구 절반 이상 감소
커피 산업 활성화로 새로운 기회 찾아…외국인 관광객만 22만명
부산 영도대교 [남해해경청 제공]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점점 잊혀가는 섬, 부산 영도.

부산에서 섬으로 된 유일한 지자체인 이곳은 한때 수리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관련 산업이 쇠퇴하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수식어가 당연시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영도가 바다와 커피를 한 번에 품으면서 '커피 도시'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수리조선소 몰린 부산 대평동 깡깡이마을 (부산=연합뉴스) 근대 조선업 발상지이자 수리조선 산업의 출발지인 부산 영도구 대평동 깡깡이 마을 전경. 2017.10.17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제공=연합뉴스] wink@yna.co.kr

조선업 쇠퇴와 맞물려 인구 절벽으로 내몰려

영도는 개항 이후 사람이 붐비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식 다리인 영도대교를 건설했을 때부터 1970년대 수리 조선업의 메카로 성장하기까지.

부산 남단에 있는 영도는 사면이 해안과 접해 있어 근대 조선업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제 이 명성도 과거의 영광에 불과하다.

2000년대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으로 수리 조선소가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동네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대교 [촬영 조정호]

다리 건너편에 있는 북항의 항만 기능이 신항으로 서서히 분산했고 이어 부산시청까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영도의 인구 유출도 급격하게 이뤄졌다.

1984년 22만1천여명이던 인구는 지난달 기준 10만4천여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여전히 전입보다 전출이 많은 추세라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도구 관계자는 "봉래산을 중심으로 고지대 주거지가 노후화함에 따라 상주인구가 줄어드는 공동화 현상이 극심해졌다"며 "조선업 이후 새로운 산업이 자리 잡지 못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졌고 결국 새로운 일터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나는 주민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영도구 바다 조망 카페 [부산관광공사 제공]

주민 떠난 자리에 커피 애호가 몰려

'늙어가는 섬'으로 전락하던 영도는 최근 새로운 산업으로 도약을 꿈꾼다.

바로 커피 산업이다.

언뜻 떠올리면 영도와 커피의 조합이 어색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영도는 이미 많은 커피 애호가와 관련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곳이다.

시작은 2016년쯤 카페들이 영도구에 하나둘씩 들어서면서부터다.

바다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페들이 영도구 산복도로에 자리 잡자 방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커피와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영도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바닷가에도 녹슨 채 방치된 선박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기는 이색적인 풍경도 볼 수 있다.

영도구에 있는 로스터리 커피바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슷한 시기에 커피 로스팅 업체들도 영도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애초 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새어 나오는 냄새는 퍼지기 전까지 그리 좋지 않아 어디를 가든 민원의 표적이 됐다.

그런데 영도는 바닷바람이 강하게 불어 로스팅한 향이 향긋하게 퍼져나갈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생커피콩의 80%가 부산신항을 통해 들어오는데, 영도에 폐쇄한 공장이나 버려진 부지가 많아 이를 보관하기도 적절했다.

이호상 한국커피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의 커피 산업이 전반적으로 발전하면서 대형 로스터기와 생커피콩을 들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며 "영도는 도심과 가까운 데다가 여러 지리적 여건이 맞아떨어져 커피 산업을 육성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커피 산업은 영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부산관광공사가 집계한 빅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영도구 방문자는 매년 10∼20%가량씩 꾸준히 늘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은 2020년 8천720여명에서 지난해 22만4천여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영도구 관계자는 "커피를 즐기는 방문객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며 "영도의 특색이 외부에 알려지자 최근 워케이션 등에 참여하는 생활 인구가 증가했으며, 아르떼 뮤지엄 등 문화 시설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도 크게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커피 업체나 관련 업계 사람들이 서서히 영도에 정착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상주인구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영도구에서 열린 글로벌 커피 페스티벌 [부산 영도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커피 산업 키워…매년 10만명 이상 찾는 축제도

커피 업계에서 주목받으면서 영도구도 커피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2017년 110개였던 카페 수는 지난해 247개로 집계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태다.

영도구는 지방소멸 대응 기금 2억원을 들여 커피산업 전문인력 양성, 지역 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커피문화 확산 등을 추진했다.

커피 복합 문화 공간인 '블루보틀 2021'을 조성해 커피 추출, 로스팅 등 전문 교육을 진행하고 커피 산업계가 교류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커피 전문점 경영자나 종사자, 예비 창업자 등을 모집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이 이뤄진다.

영도구에서 열린 글로벌 커피 페스티벌 [부산 영도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매년 11월께에는 6개국, 40여명의 커피 업계 관계자가 참가하는 글로벌 영도 커피 페스티벌을 열어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이외에도 영도에 있는 지역 커피 전문점에 대한 정보와 지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관광 지도를 제작하고, 커피 문화와 관련한 평생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앞으로는 20억원을 들여 '부산 커피산업 생태계 R&D 산업단지 구축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에 공모를 신청한 상태다.

영도구 관계자는 "지역의 수준 높은 커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커피 도시로 거듭나 더욱더 많은 사람이 영도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psj1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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