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어가는 작가의 인생·세계… 진짜 일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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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그리 쓸모없는 것이라 해도 무언가를 보긴 한다. 중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주변은 흐릿하게 보인다거나, 반대로 단춧구멍을 통해 보는 것처럼 세상이 보인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밝은 바늘이 쏟아지는 것처럼 빛을 감지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가족 내 역할, 직업, 인종 등 여러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시각장애인이란 하나의 정체성으로 취급받아도 되는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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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앤드루 릴런드/ 송섬별 옮김/ 어크로스/ 2만2000원
“대부분의 시각장애인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그리 쓸모없는 것이라 해도 무언가를 보긴 한다. 중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주변은 흐릿하게 보인다거나, 반대로 단춧구멍을 통해 보는 것처럼 세상이 보인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밝은 바늘이 쏟아지는 것처럼 빛을 감지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책에서 가족 내 역할, 직업, 인종 등 여러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시각장애인이란 하나의 정체성으로 취급받아도 되는지 질문한다.
그는 자신의 실명을 실제 시력 상실 속도보다 몇 발짝 늦게 받아들였고 아내는 더 늦게 따라왔다. 아내의 짜증과 그의 설명, 이해와 사과가 반복됐다. 동네 이웃 남자가 아내에게 “눈이 멀어가는 남편을 둔 건 정말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물었을 때는 작살에 몸이 관통당한 기분이었다. 그는 이미 남자다움이 손상됐다고 느끼던 터였다. 상대의 질문은 자신이 남성으로서 부족하고 모자란 남편이란 말처럼 들렸다. 시력상실은 그가 되고 싶은 ‘야구 배트와 사슬톱으로 무장한 아포칼립스물의 보안관’ 같은 남성상에서 멀어지게 했다.
저자는 여성의 외모를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 응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시력을 잃는다고 해서 남성 응시가 종식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눈먼 사람도 타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하며, 그 이유 중에는 성적 대상화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각장애인은 외모에 신경 써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열정적인 삶을 산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는 저자가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 생명윤리학자 에이드리언 애쉬는 “내가 정치적이 되지 않으면 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일터에서의 차별금지법 통과를 이끌었다. 책을 읽고 쓰려 한 시각장애인들의 열정 덕에 점자가 탄생했다.
저자는 시력을 상실하면 하나의 세계 전체를 잃지만 “그럼에도 눈멂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 속에, 상상력 속에, 그리고 시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깊은 감정 속에 잃어버린 것을 넉넉히 뛰어넘는 수많은 세계가 지속된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눈먼 이들의 세계와 시각 세계는 하나이므로 “서로에게 영역을 양보하고, 내어주고,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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