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는 되고 대리인은 곤란?"…고려아연 사태로 보는 '지배구조' 허점 [투자360]
문제의 이그니오 투자, 이사회 100% 찬성
주주권·경영권 의미 정립, 이사회 감독 기능 회복 요구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2.2% 지분을 가진 주주가 스스로 오너라고 생각하고 회사 재산을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맞지 않다.”
김광일 MBK파트너스(이하 MBK) 부회장(파트너)이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말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에 불과한 주식 소유 비율로 경영 전반을 좌지우지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MBK와 영풍의 계획대로 과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도 고려아연은 여전히 다양한 주주 구성을 갖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경영진은 회사 주식 소유 비율이 얼마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분쟁은 주주권과 경영권을 혼동하는 지배구조 허점이 드러난 사례로 평가 받는다.
지난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김 부회장은 최 회장의 2%대 지분율을 거듭 강조했다. 같은 날 최 회장이 공시한 고려아연 주식 보유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 지분은 1.8%, 직계 가족의 합산 지분은 0.4%로 파악된다. 친인척을 모두 합산하면 15.7%다.
만약 최 회장 측이 1대주주, 즉 '오너' 지위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일부 의사결정은 합리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MBK에서 지적하는 고려아연 문제는 크게 네 가지다. 최 회장이 경영 주도권을 잡은 2019년 이후 ▷재무건전성 악화 ▷38개 투자 기업 중 30곳 순손실 ▷원아시아파트너스 5560억원 대규모 투자와 손실 ▷이그니오홀딩스 깜깜이 투자 등이다.
고려아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신생 PE인 원아시아파트너스 출자와 관련해 이사회를 개최한 이력은 구체적으로 공시되지 않았다. 이그니오 투자 건은 2022년 이사회에서 100% 찬성을 받아 통과됐다. 그해 4월 고려아연은 미국 전자폐기물 업체 이그니오 지분 100%를 5820억원에 인수할 계획을 세웠다. 최대주주인 영풍은 해당 투자와 관련해 1장의 보고서를 제출 받았다.
당시 영풍과 고려아연은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 경영 체제가 유지되던 시기다. 영풍 역시 이그니오의 정보가 빈약하다고 여겼지만 ‘믿음’을 바탕으로 동의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고려아연의 최초 보고와 달리 최종 투자금을 납입했던 2022년 11월 이그니오의 실적이 과대 계상된 점이 드러났다. 영풍과 MBK 측은 최 회장이 사전에 이를 인지했음에도 이사회에 상세히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MBK는 해당 사안을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로 정의한다. 2.2% 지분을 가진 최 회장 입장에서는 전체 투자금액 5560억원 가운데 2.2%의 손실만 보는 만큼 나머지 주주 98%의 손해에 무심했다는 지적이다. 주주와 이해관계가 합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MBK는 지분율이 높은 지배주주가 모든 주주에 대한 선관주의 의무를 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상황이다. 다만 주주로서의 권리와 경영자로서의 의무를 혼재하고 있어 주장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이 같은 경영 체제가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정의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지배구조가 제대로 가동하려면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이사회가 경영 활동을 감독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현재 고려아연의 1대주주인 영풍 측의 지분율은 33.1%다. MBK는 영풍과 의결권 공동 행사 계약을 맺고 고려아연 지분 매집에 나섰다. 최소 7% 지분을 추가로 취득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지분율을 약 40%로 끌어올리면 이사 선임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 주도권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MBK와 영풍은 고려아연 주주로부터 지지를 받을지가 관전포인트다.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 지분을 높이면 전문경영인 체제와 이사회를 강화하는 등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20일 고려아연은 73만500원에 장을 마감했으며 이는 MBK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 대비 11% 높은 수치다.
ar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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