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열전]⑥ 소 vs 돼지… ‘고기파’ 직장인 회식 메뉴 양대산맥
재래돼지 품질에 듀록의 생산성 조합한 ‘우리흑돈’
풍미 더하는 ‘숙성’ 기술 연구도 한창
먹거리를 정할 때 좀처럼 선택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짜장면과 짬뽕’,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그리고 ‘소고기와 돼지고기’처럼 말이다. 특히 회사 회식 날이면 많은 직장인이 소고기와 돼지고기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소고기는 특별하다. 비싸지만 그만큼 또 맛이 뛰어나다. 안심에서 등심, 살치살, 갈빗살까지 다양한 부위에서 다채로운 육향을 즐길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동기의 빈정거림을 들으며 기분 나빴을 고반장(류승룡)이 ‘쇠고기야, 따라와’라는 말을 듣고 괜히 경쾌한 발걸음으로 따라간 게 아니다.
돼지고기는 친근하다. 특히 삼겹살은 최고의 회식 메뉴로 손꼽힌다.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과 함께하는 소주의 궁합은 환상적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지갑 부담도 덜어준다. 한 유명 돼지고기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조심하라.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라고 글귀가 있을 정도다.
회식 메뉴의 라이벌인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고기는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 한우 개량의 핵심은 ‘맛’… 최근엔 사료비 경감에 ‘초점’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 소를 통칭하는 한우는 고유의 브랜드이다. 재래품종으로 따로 품종을 나누지 않는 것도 한우의 특징 중 하나다. 한우는 외국산 소고기보다 단맛과 감칠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이유는 고기 풍미에 영향을 주는 올레산(oleic acid) 함량이 외국산 소고기보다 높기 때문이다. 우수한 근내지방도(마블링)는 살살 녹는 느낌을 안겨준다.
농경사회 ‘일소’ 역할을 하던 한우가 우수한 축산 자원이 된 것은 오랜 연구가 바탕이 됐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우리 소고기 ‘한우(韓牛)’의 품질 향상을 위해 1956년부터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국립축산과학원 한우연구소에서는 현재 유전·육종, 번식, 영양·사양 3개 분야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30여 명의 연구소 직원들이 축사 16동에서 한우 1000여마리를 사육 중이다.
우수한 한우 품종을 확보하고, 이를 개량해 ‘보증씨수소’를 선발하는 것은 한우연구소의 핵심 업무다. 계획교배로 송아지를 생산해 우수한 씨수소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료효율이 우수한 개체를 확보하는 것도 개발 역점 포인트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선 농가의 사육비 부담 경감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우 가격 폭락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 과제다. 핵심은 사료비 감축이다. 농진청에 따르면 농가의 사료 비용은 한우 생산비의 약 40%를 차지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한우 경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사료비용”이라고 말했다.
사료비용 경감을 위해 농진청이 내놓은 카드는 자가배합사료(TMR) 급여 기술이다. 자가배합사료는 생미강, 맥주박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농식품 부산물을 한우의 영양소 요구량에 맞춰 배합한 사료를 말한다. 농식품 부산물로 만들어 사료비는 절감할 수 있지만, 배합기 등 초기 투자 비용과 자가 노동비가 추가로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농진청은 농가가 직접 부산물의 배합 비율을 짜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농가 맞춤형 사료 배합비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 중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도입한 충남 금산군의 한 한우 농가는 사료비를 약 17% 절감하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권재한 농진청장은 “한우 가격 하락과 사료비 절감에 자가배합사료(TMR) 제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교육과 시범 사업을 통해 기술이 널리 보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소비자를 겨냥해선 한우의 지방 분포와 풍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우수한 육질로 개량해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미국·호주·일본산 소고기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한우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한우는 지난해 홍콩, 마카오, 캄보디아 등에 44톤(t) 넘게 수출됐다. 작년 6월부터는 말레이시아에도 한우가 수출되고 있다”며 “맛과 품질이 뛰어난 만큼 세계 시장에서 한우의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우리흑돈’ ‘난축맛돈’… 흑돼지 개량한 우수 품종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고기는 단연 돼지고기다. 2022년 우리 국민 1인이 1년 동안 먹은 돼지고기는 30.1㎏에 달한다. 2013년 20.9㎏에 불과했던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10년간 연평균 5%씩 늘었다.
소고기에 한우가 있다면, 돼지고기는 한돈이 있다. 한우는 별도 품종을 구분하지 않지만, 한돈은 개량한 품종마다 따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2008년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는 한국형 흑돼지 ‘우리흑돈’을 개발했다. 한국 전통 재래돼지와 듀록을 교배한 뒤, 세대를 거쳐 개량 및 품종 특성 고정 작업을 반복했다. 이를 통해 재래돼지의 육질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산자수)을 향상하고 사육 기간을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2015년 상표등록을 마친 우리흑돈은 작년까지 60여 개 돼지농장에 보급됐다. 농진청 관계자는 “우리흑돈은 일반 돼지보다 근내지방 비율이 높아 고품질로 평가를 받는다”면서 “등심 내 근내지방 비율은 우리흑돈이 4.3%로, 재래돼지 4.5%에 근접하고 일반 돼지의 3%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흑돈은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 수입을 연간 약 176억원 대체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환경 사육 방식과 뛰어난 육질을 앞세운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내면서, 국산 흑돼지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진청은 지난 2013년에는 ‘난축맛돈’ 품종을 개발했다. 난축맛돈은 육질이 좋은 ‘제주 재래 흑돼지’와 번식 능력과 성장이 빠른 ‘랜드레이스’ 품종을 교배한 종이다. 근내지방 함량이 10% 정도로 높아 육질이 상당히 연하다. 구이로 많이 먹는 부위인 삼겹살과 목심 외에 저지방 부위로 알려진 등심, 뒷다리 등 비선호 부위도 구워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우리흑돈’과 ‘난축맛돈’ 모두 흑돼지 품종이다. 농진청이 백돼지보다 흑돼지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신 농진청 축산자원개발부 양돈과 농업연구사는 “백돼지는 일반 기업들이 직접 수입하거나 개량하고 있어 차별화를 위해 흑돈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 맛을 위한 연구… ‘라디오파’로 고기 숙성
농진청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맛을 한 차원 끌어올려 줄 숙성 기술 연구도 진행 중이다. 농진청은 최근 48시간 만에 3주간의 건식 숙성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라디오파 소고기 단기 숙성기술’을 개발해 산업체에 기술 이전을 하고 있다.
‘라디오파 소고기 단기 숙성기술’은 라디오파로 고기를 가열하면서 동시에 냉풍을 쏘아 고기 표면의 미생물 증식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기존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와는 달리 파장이 긴 라디오파를 사용하여 고기 내부를 균일하게 가열할 수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라디오파 숙성을 하면 48시간 만에 소고기 육질이 25% 부드러워지고, 풍미를 결정하는 성분이 1.5배 증가하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소고기 건식 숙성은 고기의 풍미와 식감을 향상시키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숙성 후 고기 손실이 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라디오파 숙성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한다.
농진청 관계자는 “라디오파 기술을 적용하면 건조에 의한 무게 감소 외에는 고기 손실이 거의 없다. 수율은 약 85%”라며 “기존 건식 숙성 방식의 수율이 60~70%에 불과하다는 점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숙성 과정에서 특정 유산균이나 효모를 첨가해 다양한 풍미를 지닌 맞춤형 숙성육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승돈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원장은 “축산물에 공학 기술을 접목해 산업화에 접근한 성과”라며 “라디오파 기술로 소고기는 숙성 효과, 돼지고기는 풍미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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