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100년 전 여름 떠들썩했던 진주 삭전(索戰)의 허무한 결말
‘경남 진주에서는 거(去) 8일 오후 4시경에 성 내외가 편을 갈라 일신고보 기지(基址)에서 인색전(引索戰)이 개시되었는데 당일 원근에서 회집한 인원수가 수만명에 달하여 초유인 인색전을 성(成)하였더라.’(‘진주에 인색전’, 조선일보 1924년7월12일)
100년 전인 1924년 7월 신문에 한줄짜리 기사가 실렸다. 경남 진주에서 대규모 인색전(引索戰)이 열렸다는 것이다. 인색전은 ‘삭전’(索戰)이라고도 했는데 ‘줄다리기’를 가리킨다.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농경의례의 하나로 대개 정월 대보름에 열렸다. 하지만 진주에선 여름에 ‘삭전’이 열렸다. 이때가 비교적 농한기이자 비가 내리지 않는 시기이고 밤에도 쉽게 잠들수없기 때문에 떠들썩하게 휘저어 놓으면 경기도 생기고 비도 내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주에는 하기일한(夏期日旱)을 기하여 성외 성내의 인민들이 삭전(索戰)을 하는 습관이 있다. 습관의 유래는 알수없으며 또 그 최초의 원인도 알 수없으나 여하간 이 폐습이 수백년 계속하여 온 것같다. 거금 10여년 전에 이 삭전으로써 기명(幾名)의 사상자를 출(出)한 결과 경찰의 금지가 되어오다가 대정(大正) 10년의 대한재(大旱災) 당시에 다시 이 삭전이 시작되었다.’(‘삭전을 폐지하라’, 조선일보 1924년7월16일)
‘삭전’ 시합 도중 패싸움이 벌어져 몇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중단됐다가 1921년 여름 가뭄이 들면서 재개됐다는 설명이다.
◇경찰서장이 성외팀 승리 선언?
두어해 별탈없이 넘어간 줄다리기 시합에 사달이 났다. 경찰은 야간 경기를 불허하면서 낮 12시~오후5시로 시합 시간을 제한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2시가 될 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았다. 14시간 넘게 줄에 달라붙어 안간힘을 썼지만 말그대로 지리한 줄다리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당초 허가한 오후5시가 넘었을 때부터 해산을 명령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성내(城內), 성외(城外)팀은 자존심을 내건 이 시합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열이 먼저 흐트러진 것은 성내팀이었다. 점원이나 머슴, 근인(勤人·관공서·회사 근로자), 주부 등이 주로 참여했는데, 다음날 생업에 복귀하느라 줄다리기에 매달려 있을 수없었다. 반면 성외팀은 상대적으로 성내팀보다 더 멀리서 왔기 때문에 필승의 각오가 더 강해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전세가 기울 무렵, 성외팀에서 누군가 ‘우리가 이겼다’하며 소리를 질렀다. ‘심판자 가타야마 경찰서장이 공평하게 판단해서 성외가 이겼다고 선포했다’ 는 소리도 들렸다.
◇곳곳에서 주민 충돌, ‘살인’얘기까지 돌아
성내 주민 300명은 경찰서장을 찾아가 따졌다.서장은 “나는 그와 같이 말을 한 기억이 전혀없다”며 부인했다. 성내 주민들은 환호하면서 자리를 떴다. 다음날인 8일 시내엔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성내 주민은 성외 주민에게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 했고, 성외 주민은 성내 주민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해했다. 하루종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다툼이 벌어졌다. ‘칼로 찔렀다’거나 ‘살인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경찰은 ‘유학생, 노동공제회 간부, 청년회 유력자’ 등을 불러모아 “제군들 같은 선각자가 진주에서의 구식의 소동을 방임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책임을 다해서 노력해달라”고 설득했다.
◇중경상자 20여명, 농작물 피해
이 사건의 후반은 허무하다. 경찰 설득이 먹힌 건지 싸움의 동력이 소진됐기 때문인지 군중들이 줄다리기 판을 떠나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대로에 덩그러니 방치된 줄이었다.
경찰 종용으로 양 팀 대표자들이 줄을 정리하고 승패를 가리지않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판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난리치던 군중들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중경상자 20여명’과 ‘피해된 농작물’(‘삭전을 폐지하라’, 조선일보 1924년7월17일)그리고 주민간의 헤아릴 수 없는 적대감을 남긴 채 끝나버렸다.
◇왜 부자들의 유희에 농민, 노동자가 동원되나
조선일보 진주 지국 기자는 이틀에 걸쳐 삭전의 폐해를 상세히 거론했다. ‘첫째 쓸데없는 감정에 흘러서 영원한 적대행동이 되고 만다. 삭전이라 하면 진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오, 남도지방에는 도처에 있는 것같다. 혹 농한(農旱)시를 이용하여 농민의 일(一) 유희적 운동이 되지 아니하는 것도 아니지만 당지의 삭전은 예(例)를 초월한 특별이다. 양편은 수백년을 오면서 이 삭전으로써 전통적 감정이 포장되어 있다. 그리하여 삭전이외까지 이 감정이 파급하여 농업에 상업에 심지어 세탁장에까지 교통을 끊고 야료를 한다. 이와 같이 반목질시로 결국 단도(短刀)로, 투석으로 중경상을 내는데 이른다. 또 삭전이 변하여 격투로 권투로 일종의 백병전이 되는 것이 통례라 한다.’ (‘삭전을 폐지하라’, 조선일보 1924년7월16일)
적대감을 대물림하면서 지역민을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또 ‘무산농민의 유린’을 들었다. ‘단결이 노동자의 생명이라고 전 인류가 부르짖는 이 때에 있어 배가 불러서 지질머리가 나는 양반들의 빙수잔이나 먹고 앉아 소일거리가 되는 삭전에 많은 희생을 하고도 오히려 네편 내편하고 영원한 자기계급끼리 우애를 상(傷)하고 또 반목을 하는 노동형제들이여 자람(自覽)하라고 절규하여 마지 아니한다.’
왜 양반과 부자들의 한가한 유희에 가난한 농민, 노동자들이 나서야하는가 하는 주장이다.
◇줄다리기하면 비가 온다?
삭전의 폐해로 든 마지막 이유는 ‘미신이 잠재’한다는 것이다. 가뭄에 줄다리기를 하면 비가 온다는 미신은 믿을 수도, 말할 가치도 없다고 잘랐다. 이 기자는 경찰 당국을 향해서도 ‘근래 노동문제이니 사회문제이니 하여 떠드는 이때이니까 삭전같은 것이나 하고 가만 있거라 함이나 아닌가?’라고 따졌다.
최근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 을 낸 기유정은 삭전을 ‘법질서에 대한 대중의 양가적 욕망을 보여주는 사례’로 본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가의 법과 권력에의 복종을 선택하지만, 그럼에도 그 복종의 틀에서 벗어나 그로부터 이탈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들이 언제나 들끓고 있다는 것 말이다.’(193쪽~194쪽) 항일 민족운동 또는 계급운동 시각에서 일면적, 도식적으로만 접근하던 식민지 대중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줄다리기는 조선의 國技?
1920년대~1930년대 신문에는 삭전이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줄다리기 끝에 ‘석전’(石戰, 돌던지기)로 격화된 사례도 많았다. 군중들은 언제든지 싸울 각오가 돼있는 ‘전사’(戰士)처럼 보였다. ‘야구는 미국인의 국기(國技)요, 축구는 영국인의 국기요, 각력(角力, 스모)은 일본인의 국기이니 그것이 그 나라 사람들의 심신을 단련하는 이익이 다대함이 있는 것은 일반’이라면서 ‘조선 전반적은 아닐지언정 일부분에 있어써 중요한 운동을 성(成)한 것이 있으니 즉 삭전이 이것이다’라며 ‘삭전’을 조선의 국기 (國技), 즉 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에 비견하는 사설까지 나올 정도였다.( ‘각지 삭전의 보(報)를 듣고’, 조선일보 1926년2월28일)
◇2015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삭전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전시체제로 들어가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춘 듯하다. 민속학자 송석하는 ‘근년 당국의 불허가 방침과 현실에 얽매인 현대인의 심리로 좀처럼 구경조차 못한다’(동아일보 1939년 1월4일)고 했고, 이듬해에도 ‘구정 놀이로서 줄다리기 등의 자체가 사라진지 오래’(동아일보 1940년2월17일)라는 글이 나온다. 민속 전통에 뿌리를 둔 대중 오락이 전쟁에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줄다리기는 광복 후 운동회 단골 메뉴로 부활했다. 만국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반(班) 대항 줄다리기 시합을 벌이던 추억을 대부분 갖고 있을 것이다. 1969년부터 여러 지역의 줄다리기가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오르기도 했다.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과 함께다. 한 때 미신으로 폄하된 줄다리기는 인류가 함께 보호, 전승해야 할 문화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참고문헌
기유정,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 산처럼, 2024
김영미, 식민지기 오락문제와 전통오락 통제에 관한 일고찰-줄다리기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연구 32, 이화여대한국문화연구원, 2017,6
공제욱, 일제의 민속통제와 집단놀이의 쇠퇴: 줄다리기를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 95, 한국사회사학회,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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