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만원도 없었는데"...이제는 '전설'이 된 '대타' [권마허의 헬멧]
F1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가 현역 시절 세운 기록들입니다. 물론 은퇴를 한 차례 번복하긴 했지만,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죠.
독일 태생 슈마허의 등장은 말 그대로 '센세이셔널' 했습니다. 그는 1991년 조던-포드 소속으로 F1에 데뷔하고 그해 예선 7위를 달성했는데, 이 기록은 당시 조던 팀이 기록한 가장 높은 예선 성적입니다. F1보다 2단계나 낮은 F3 선수였던 데다 사실상 기존 드라이버의 '대타'로 들어갔던 상황이라 큰 기대가 없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슈마허의 나이는 주변 드라이버들에 한참 못 미치는 22살이었습니다. 당시 잘 나가던 레이서들은 대부분 27~28살이었죠. 하지만 그의 레이싱을 본 사람들은 "얼굴에 수염도 하나 없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마초 같은 어른들에 맞서는 소년의 모습이다"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1년 뒤인 1992년 8월, 그는 결국 벨기에 스파 그랑프리에서 첫 우승을 하게 됩니다. 당시 최연소 우승이었죠. 슈마허는 "(지금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독일 팬들에게 승리의 영광을 돌린다. 부모님께 그냥 '안녕' 이라고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기뻐했습니다.
슈마허는 어릴 적부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내향적이고 수줍음이 많았지만 완벽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이런 성격은 F1 경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1983년 슈마허가 14살이었을 당시 독일 카르펜-만하임에서 월드 주니어 카트 챔피언십을 했는데, 어찌나 연습을 많이 했던지 경로를 다 외울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경기를 함께 하고 훗날(1998~1999년) 월드 챔피언이 된 미카 하키넨은 "(슈마허의) 운전 스타일은 정말 환상적이었다"며 "다른 드라이버들과 다르게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롤프 슈마허는 이후 슈마허가 6살 되던 해 클럽용 고카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슈마허는 그 옆에서 작업이 잘 진행되는지, 결과물은 어떤지 평가하곤 했습니다.
슈마허가 어릴 적부터 카트를 타긴 했지만 가족들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가족들은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언제나 식당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죠.
다른 드라이버 집안처럼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비도 저렴한 걸 구해서 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슈마허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쓰다 버린 폐타이어를 사용했지만 우승은 늘 그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장비보다 열악한 장비로 우승하는 게 좋았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동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1983년 당시 국적을 바꿔 대회에 참가한 것도 돈 때문입니다. F1 업계에 따르면 선수 한 명을 키워내는데 필요한 돈은 약 100억원 전후입니다. 슈마허는 "독일 태생으로 신청하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탈락하면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할 수 없어서 룩셈부르크 대표로 신청했다. 룩셈부르크 대표는 저 말고 없어서 비용 없이 본선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슈마허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워낙 형편이 어려워서 F1까지 못 올라갈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8년 F1 매니저 윌리 웨버를 만난 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웨버 매니저는 "우리 팀 선수로 영입하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한 시즌을 뛰기 위해서는 당시 최소 60만마르크(약 4억5475만원)가 필요한데, 슈마허는 500마르크(약 38만원)도 없었죠. 하지만 슈마허가 마음에 들었던 웨버 매니저는 슈마허 아버지에게 직접 가서 "월급 2000마르크(약 151만6000원)에 차도 지급하겠다"며 "5년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슈마허와 아버지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슈마허가 있기까지 1등 공신은 웨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슈마허 이야기는 앞으로 1~2화 정도 더 다룰 생각입니다. 다음화에는 경쟁자의 죽음과 슈마허가 거쳐간 팀 등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혹시 궁금한 팀, 선수가 있으면 메일이나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적극 참고하겠습니다. 물론 피드백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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