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노릇한 보름달 부침, 새하얀 꽃밥… 할머니는 다 잊어도 사랑은 기억한대요
달꽃 밥상
지영우 글·그림 | 사계절 | 52쪽 | 1만6800원
같은 음식도 할머니 손맛이 들면 어찌 그리 맛있던지. 애호박 또각또각 썰어 동글동글 부친 호박전, 정성스레 다듬고 씻어 무친 갖은 나물, 아삭아삭 갓 내온 포기김치…. 먹고 싶단 말만 하면 할머니는 뭐든 뚝딱 만들어 주시곤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그만, 언제부턴가 음식 만드는 법을 까맣게 잊어 버리셨다. 아빠가 차린 밥상은 오늘도 계란 프라이에 컵라면 뿐. “안 먹을 거야!” 아이는 밥투정을 하다 설핏 잠이 든다. 그런데 방문 밖이 시끌시끌하다. “오빠, 우리 할머니네 밥 먹으러 갈 거다. 오빠도 같이 가자!” 곰, 토끼, 새 인형과 함께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우유갑 기차에 어서 올라 타라며 손짓한다. 이 여자아이, 웬지 모르지만 어릴 적 할머니같다.
분홍 꽃들이 넘실대는 산과 들판으로 칙칙폭폭, 반딧불이가 밝혀주고 마중나온 개미들이 안내하는 길로 한참을 달리자, 고봉밥처럼 하얀 지붕의 시골 초가집이 나온다. “우리 아가들 왔구나!” 예전 그대로의 할머니가 달려나와 반겨주신다.
평생 자식 손주를 돌봐오신 할머니께도, 언젠가 거꾸로 자식들이 돌봐드려야 할 날이 찾아올지 모른다. 현실에선 다시 아이가 돼버렸다지만, 할머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라면 어떨까. 찰랑찰랑 보름달을 따다 치르르 전 부치고, 소복소복 새하얀 꽃밥으로 한 상 가득 차려 여전히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고 계시지 않을까.
배고픈 만큼 정도 고팠을 아이, 허기진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냈을 인형들, 아이일 적 모습으로 나타난 할머니까지, 모두 함께 예전 그대로의 할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즐겁게 먹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할머니가 싸주신 음식을 한 보따리 들고 칙칙폭폭 우유갑 기차를 타고 돌아온 아침, 삭막하던 식탁 위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달은 하늘에만 뜨고, 꽃은 산에만 피라는 법 있나. 아끼고 돌보는 마음이 이어질 때, 온 가족의 마음 속에 달이 뜨고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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