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시대극으로 쓴 이유, 멀리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장편소설 |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388쪽 | 1만8000원
일본 소설가 나가이 사야코(永井紗耶子·47)가 택시에서 내려 조선일보 편집동 건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눈을 반짝이며 해맑게 웃었지만, 비범함이 번뜩였다. 숨겨진 끼가 엿보였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이색적인 사진 촬영 요구를 해봤다. “작가님이 쓴 미스터리 소설을 몸짓으로 표현해주세요.” “에에…?” 놀라는 것도 잠시. 소설가는 스트레칭을 하더니 연기를 시작했다. 두 손을 엇갈리게 앞으로 내밀며 긴장감을 표현했다. 다음 포즈.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면서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하늘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다 신나게 웃었다.
게이오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일간지 신문기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 그는 2010년 소설 ‘계획적인 정사(情死)’로 데뷔했다. 이후 휴머니즘이 짙은 시대 소설을 주로 썼다. 아홉 번째 소설 단행본인 ‘고비키초의 복수’는 에도시대(1603~1868)의 한 극장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자 복수극. 기쿠노스케라는 청년이 아버지를 죽인 이의 머리를 베어 복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을 목격한 여러 화자가 독자에게 쾌활하게 말을 건넨다. 미스터리 복수극치고는 발랄하고 따듯한 점이 매력.
그는 지난해 이 소설로 권위 있는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과 야마모토슈고로상을 동시 수상했다. 한 작품으로 두 상을 동시 수상한 작가는 2004년 구마가이 다쓰야와 2021년 사토 기와무 두 명뿐. 그가 세 번째 주인공이다. 지난 5월 한국 출간 이후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한 달간 일본 추리·미스터리 소설 분야 1위를 지키며 인기를 끌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한국 독자에게 ‘고비키초의 복수’를 소개한다면?
“다른 나라, 다른 시대로 타임슬립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어떤 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옛 일본의 극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각 등장인물이 연극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상상하면서, 미스터리한 느낌까지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쓴 소설이 모두 시대극입니다. 시대극을 선호하는 이유는?
“거리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조금 떨어져서, 멀리서 현재를 볼 수 있지요. 저는 스스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좀 더 재밌게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역사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녹였습니다.”
-복수극이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요. 그런데 복수는 사실 공허합니다. 심정적으로는 복수가 필요할 수 있겠지만, 복수에 성공했을 때 정말로 응어리가 풀릴까, 묻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수다스럽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녹아들었나요?
“네 저는 굉장한 수다쟁이입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인터뷰하고, 사람들에게 묻고, 이야기를 들었던 과정이 소설에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일하다가 작가로 데뷔했는데요.
“일본의 신문사는 1년 차에 무조건 경찰서를 돌면서 사건을 취재합니다. ‘마와리’라고 해요. (기자: 한국도 같습니다.) 문학과 관련된 취재를 하고 싶었는데 계속 사건 기자만 하게 됐어요. 그러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쓰러졌습니다. 그때 대학 선배가 잡지사 프리랜서 기자직을 제안했어요. 회사를 나와 10년간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여유를 갖고 일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꿈꿨던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호기심이 큰 원동력입니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보면서,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역사 자료를 들춰보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최근 관심은 무엇인가요?
“에도 시대 유일한 무역항이었던 나가사키를 무대로 차기작을 쓰고 있습니다. ‘일본인의 국제 감각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때문에 비즈니스 기회를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다들 많이 주저하는 분위기거든요. 해외 관광객이나 외국인 유입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고요. 이런 태도가 어디서 기인했을까, 과거로 차분히 거슬러 올라가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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