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보상했는데 헌혈 인구는 왜 줄었을까

곽아람 기자 2024. 9. 2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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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연구자인 美 대학교수 ‘인센티브’로 인간의 행동 변화 탐구

인센티브 이코노미

유리 그니지 지음|안기순 옮김|김영사|488쪽|2만4000원

헌혈을 할 때마다 금전적 대가라는 인센티브를 주면 사람들이 헌혈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UC샌디에이고 행동경제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인센티브를 사용하려면 ‘자기 신호’와 ‘사회적 신호’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한 상황에서 두 가지 신호가 어떻게 인식되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인센티브를 설계할 때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신호(social signaling)’란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뜻하며, ‘자기 신호(self-signaling)’는 스스로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헌혈에 관한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표적 집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생계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 집단은 ‘나는 이타적이다’라는 자기 신호와 ‘타인이 나를 이타적으로 본다’는 사회적 신호에 의해 헌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헌혈의 대가로 돈을 받게 되면 동기를 의심받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헌혈을 중단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그간 사는 게 바빠 헌혈할 여유가 없었던 저소득층은 금전적 대가가 주어지면 헌혈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한 예로 1970년 미국에서는 혈액기증자에게 돈을 지불했는데, 그 결과 돈이 필요한 마약중독자들이 헌혈을 많이 해 대가 없이 헌혈하도록 한 영국에 비해 혈액의 질이 낮고, B형 간염에 감염돼 있을 가능성이 더 컸다.

기업이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려면 역설적으로 ‘퇴사 장려금’이라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근무 의욕이 없는 직원은 보너스를 챙기고 회사를 떠나 자기 길을 갈 수 있고, 유혹을 거절하고 잔류한 직원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회사에 불만을 품은 직원이 그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사표를 내면 2000달러를 주는 전략을 도입한 미국 쇼핑몰 자포스는 2003년 7000만달러였던 예상 매출액이 2008년에 10억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열정 넘치는’ 고객 서비스’가 자포스의 성공 이유로 꼽혔는데, 붙임성 좋은 콜센터 직원들을 골라내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퇴사 장려금 제도였다.

인센티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전략은 ‘스토리텔링’이다. 마사이족 소년들에게 사자를 죽이는 건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자가 멸종위기종이 되면서 케냐 정부는 마사이족의 이 전통을 바꿀 전략을 고민하게 됐다. 저자가 케냐의 사자를 살리기 위한 ‘심바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건 이런 연유였다. 저자는 마사이족 전사를 ‘사자 포획자’에서 ‘사자 구조자’로 변모시키는 스토리텔링을 고안했다. 전사들이 사자를 죽이는 대신 보호함으로써 자긍심을 느끼도록 교육한 것이다. 부족의 장로들에게는 사자가 소를 죽였을 때 전사를 부르지 않고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보고하면 금전적 보상이라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이 비용은 소를 보험에 들도록 해 충당했다.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인센티브’라는 키워드로 탐구하는 책이다. 인간이란 금전적 보상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헬스장에 꾸준히 가려면 친구와 함께 등록하는 등의 친사회적 인센티브가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식사비를 자율적으로 내게 한 식당에서 손님들은 익명으로 지불할 때 더 많은 돈을 냈는데,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만족을 얻고 싶어서다. 케냐의 오래된 악습인 여성 할례 근절을 위해, 딸에게 할례를 시키지 않은 부모에게 교육비를 지원하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설계한 저자의 시도에도 박수를 보내게 된다. 원제 Mixed Sig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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