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소외 넘쳐나지만 때로는 따뜻한 ‘눈먼 자들의 나라’로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앤드루 릴런드 지음 | 송섬별 옮김 | 어크로스 | 432쪽 | 2만2000원
저자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20년 넘게 눈이 멀어가는 중이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던 가구에 부딪히기도 하고, 방금 놓아둔 컵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는 저자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을 포착한다.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걸을 때면 저 멀리서부터 아예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버리는 사람도 보이고, 반 블록 전부터 아이를 홱 잡아당겨 비켜서게 하는 부모도 있다.
저자가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은 회고록이자,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시각장애인을 만나고 자신의 미래를 엿보는 탐험기다. 저자는 스스로를 ‘눈먼 자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여행객에 빗댄다. 여느 나라가 그렇듯 이 나라엔 슬픔과 기쁨, 일상과 재난, 혐오와 사랑이 혼재한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를 새롭게 감각한다.
시각장애의 역사에 관한 탐구도 흥미롭다. 세계 최초의 타자기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됐다. 1808년 이탈리아 발명가 펠레그리노 투리는 시각장애인 친구를 위해 실제로 작동하는 타자기를 최초로 개발했다. 20세기 초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을 만들려 했던 로버트 어윈은 레코드 재생 시간을 늘릴 신기술을 연구했고 이는 LP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때론 차별과 소외를 느끼지만, 때론 사랑을 느낀다. 붐비는 곳에선 아들의 손을 잡거나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걷고, 아내는 그가 넘어지지 않게 늘 신발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치워둔다. 저자는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이란 결국 사랑의 행위라고 말하며, 비시각장애인의 좁은 시야를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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