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방 하나는 ‘한옥 감성’ 어때요

서정민 2024. 9. 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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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 가운데 평상, 레진 병풍, 협탁, 갓을 쓴 조명, 한국식 좌식 의자 등으로 꾸며진 방. [사진 재단법인 아름지기, 그루비주얼]
9월 초 열리는 프리즈 서울, 키아프 등 국제아트페어 일정 덕분에 예술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내한이 잦아진 가을. 우리 문화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공예 전시들 또한 화려한 막을 올렸다.

11월 15일까지 통의동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리는 ‘방, 스스로 그러한’ 전시는 전통 건축의 구조·형태·소재 세 가지 요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한국적 미를 담은 인테리어를 제안한다. 한옥이 좋다고 해서 누구나 한옥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만난 온지음 집공방 수장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는 이런 방법을 제안했다. “한옥을 가질 수 없다면 한옥의 한 부분, 즉 한옥 인테리어를 갖춘 방 하나를 가져보세요. 소극적으로는 한국적 미감으로 디자인 된 의자·책꽂이·조명기구 같은 소품을 소유하는 방법도 있죠. 결국 한옥의 진정한 가치는 집안에서 누리는 ‘인간적이고 품격 있는 삶’이에요.”

최윤성 아름지기 아트디렉터는 “현대인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 내 ‘알파룸’의 개념이 한옥의 사랑방과 일맥상통한다”고 봤다. 알파룸이란 아파트 평면 설계 상 남는 내부 자투리 공간을 말한다. 최근 들어 획일적인 아파트 주거 디자인의 틀을 깨는 공간으로 알파룸에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각자의 취향과 요구가 반영된 이 개성 넘치는 공간을 한국적 미감으로 꾸민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은 “한국의 고유한 정서와 미감을 담은 다양한 방들을 통해 관객 여러분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대장장 정형구씨와 젊은 유리공예가 박지민씨의 합작품. [사진 예올x샤넬 프로젝트, 호림박물관]
전시에는 중앙화동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 집공방, 공간 디자이너, 가구 작가 등 9명(팀)이 꾸민 7개의 공간과 70여 개 작품이 소개된다. 관람료는 8000원.

10월 19일까지 서울 북촌에 있는 예올가에서 열리는 ‘온도와 소리가 깃든 손: 사계절로의 인도’는 재단법인 예올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 전시다. 공예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예올과 장인정신을 기업철학으로 하는 샤넬은 2022년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의 장인’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대장장 정형구씨와 젊은 유리공예가 박지민씨가 선정됐고 이번 전시에선 두 사람이 각각 또는 협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대장장이 만든 작은 화로. [사진 예올x샤넬 프로젝트, 호림박물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시 총괄 디렉팅을 맡은 양태오 디자이너는 “철과 유리는 아주 대조적인 물성을 가졌지만 두 사람의 공방을 방문했을 때 공통으로 느낀 것은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높은 온도와 열기였다”며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유리가 뜨거운 온도를 견디면서 형체를 갖추고, 단단하고 강했던 쇠는 뜨거운 불을 만나 물처럼 녹아내려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과정이 너무나 다르면서도 닮았고 그래서 아름다웠다”고 했다. 그는 또 “결국 열과 불은 소멸이 아닌, 재탄생의 의미인 것을 깨달았다”면서 “두 분의 손을 통해 자연의 생과 소멸이 끝없이 반복되는 사계절 안에서 일상의 공예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 후 대장간을 운영하는 장인의 뒤를 이어 대장장이 된 정형구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디자인 작업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며 “공방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 속옷 바람으로 작업실로 뛰어간 적도 여러 번”이라며 웃었다. 두 장의 유리 사이에 신문·낙엽 등을 끼운 채 열을 가해 그 재와 그을음으로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드는 박지민씨 역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기뻤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시 관람은 무료다.

호림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16세기 백자향로와 향합. [사진 예올x샤넬 프로젝트, 호림박물관]
아름지기 기획전과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가 현대 공예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라면,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향香, 푸른 연기靑煙 피어오르니’에선 국보 1건, 보물 11건을 비롯해 향과 향로, 그리고 이와 관련된 170여 점의 그림·도자·금속 등 각종 전통예술품과 공예품을 만날 수 있다.

좋은 냄새를 뜻하는 향(香)자는 중국 고대 갑골문과 금석문에 따르면 그릇에 곡식이 담겨 있는 형상에서 비롯된 글자다. 즉 수확한 곡식에서 풍기는 좋은 향기를 뜻한다. 또는 곡식으로 빚은 술의 형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로 향은 고대부터 제사와 종교의식에서 중요한 요소로 활용됐고, 향을 피울 때 쓰는 여러 도구 중 향로는 조형성이 뛰어나 우리나라 공예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현대인들에게도 향은 힐링과 명상의 도구로 애용되고 있으니 오래 전 공예품들을 둘러보며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발견하는 것도 좋겠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관람료 1만원.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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