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면 더 묵직한 맛, 프랑스 향토 과자의 변주

2024. 9. 2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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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의 핫 플레이스
사진 1
서울 연희동의 한적한 골목 안쪽에 디저트 좀 안다는 사람들이 찾는 작은 제과점이 있다. 프랑스 향토 과자를 테마로 한 ‘온고 파티스리’(사진1)다. 이곳의 대표이자 제과사인 권형준씨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그의 아버지는 국내 제과제빵 업계를 대표하는 ‘리치몬드 제과’의 권상범 명장, 그의 스승은 일본 제과 업계 1인자로 꼽히는 ‘오봉뷰탕’의 가와타 가쓰히코 셰프다.

두 거장의 가르침 아래 20년 넘게 제과를 수련해 온 그가 갑자기 새로운 장소에 낯선 이름의 가게를 연 이유는 뭘까. “계급장 떼고 오픈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특별한 사명감으로 가득 찼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과자의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고요.”

가게 이름인 온고는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뜻의 고사성어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 따왔다. 가와타 셰프는 평소 제자들에게 ‘자기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과자를 만들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저마다의 표현이 담겨야 한다는 것. 말하자면 온고는 제과점이면서 권 제과사가 ‘지신’의 과정으로 가기 위해 지금껏 배운 것을 복습하고 연구하는 공간이다.

온고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과자나 빵 외에도 팡 드 젠느, 모엘루, 콜롱비에, 갸토 낭테 등 생소한 메뉴들이 많다. “프랑스 향토 과자는 쉽게 얘기하면 강릉 유과, 천안 호두과자 같은 거예요. 그 지역의 풍토, 시대, 사람들 성향에 맞춰 만들어진 과자죠. 현대 프랑스 제과의 뿌리이자 원류 같은 과자이기도 합니다.”

사진 2
권 제과사는 온고의 대표 메뉴로 ‘팡 드 젠느(6500원)’와 ‘바바 오 럼(8500원)’을 들었다.(사진2) “팡 드 젠느는 이탈리아 도시 제노바가 적군에게 포위당했을 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아 있던 재료인 쌀과 아몬드만으로 만든 과자예요.” 온고식 팡 드 젠느는 밀가루 없이 전분과 아몬드가루로 만드는 고전 레시피에 견과류의 비릿함을 잡아줄 상큼한 오렌지 풍미를 더했다. 바바 오 럼은 이름 그대로 럼을 듬뿍 넣은 시럽에 빵을 푹 담가 만든다. 그 위에 오렌지 마멀레이드, 커스터드, 바닐라 크림을 순서대로 올린 다음 건포도와 오렌지 제스트로 마무리한다.

전통적인 레시피를 충실하게 구현하되 조금씩 변주를 주는 것이 온고만의 특징이다. “맛과 풍미가 묵직한 편이니 한 번에 드시지 말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 드신다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글 이나리 출판기획자·사진 김태훈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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