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에 빠지길 권함…18세기 의사의 철학

2024. 9. 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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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관하여
요한 G 치머만 지음
이민정 옮김
중앙북스

우리말에서 ‘고독(孤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사는 아마도 ‘씹다’가 아닐까 싶다. ‘즐긴다’는 왠지 고독과는 잘 맞지 않는 단어처럼 여겨진다. 그만큼 고독은 우리에게 외롭고 쓸쓸함을 나타내는 추상명사로 각인돼 있다. 독일어로도 고독은 ‘하나인 상태’를 뜻하는 Einsamkeit(아인잠카이트)다.

그런데 이런 고독을 단지 즐기는 수준을 넘어 빠져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강력하게 예찬한 사상가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에 존재했었다. 18세기 명의이자 철학가인 요한 게오르크 치머만이다. 고독 담론을 세상에 대중적으로 소개한 염세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보다 60년이나 앞서 치머만은 『고독에 관하여』(원제 Ueber die Einsamkeit)라는 책을 썼다.

그동안 치머만과 그의 책 『고독에 관하여』는 국내에서 출간된 각종 도서에 간접적으로 인용되는 형식으로 소개돼 왔다. 이 책은 원래 1784년과 1786년 두 번에 걸쳐 총 네 권으로 나왔는데 이번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중앙북스에서 번역본을 발간했다. 여전히 유럽 철학자의 고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이 반가운 이유다.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개인 의사,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자문 의사로 명성을 떨친 치머만은 스위스 베른대, 독일 괴팅겐대 시절 쌓은 폭넓은 인문지식 덕분에 사상가로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고독을 ‘우리의 정신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지적인 상태’라고 봤다. “무엇보다 명백한 고독의 이점은 그로 말미암아 정신이 생각하도록 길들어 간다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그는 고독을 단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물리적인 상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떠들썩한 도시에서 생활하든 평화롭기 그지없는 전원에서 은둔하든 혼자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종종 고독의 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반가사유상의 고독한 사색이나 ‘철학자의 길’을 매일 걸으며 깊은 통찰력을 배양한 칸트의 고독을 통해 고독이 주는 위대한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상태인 고독에 빠져듦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장점을 꼼꼼하게 소개하는 ‘고독사용법’이기도 하다. 하루종일 디지털 세계에 파묻혀 도저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도 조선 정조대왕 때 출간된 이 책은 큰 위안과 힐링을 줄 수 있다. 이 가을에 씁쓸한 고독이 아니라 인생을 성숙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드는 고독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에 한번 푹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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