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그곳이 ‘불평등의 땅’으로
앵거스 디턴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한국경제신문
미국은 흔히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여기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렸다. 영국 출신으로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가 보기에 미국은 ‘불평등의 땅’이기도 하다. 이런 불평등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저자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 지수 비교에서 미국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다른 나라보다 그 격차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기회의 땅’ 미국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미국에는 많은 기회가 있다”면서도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회를 다른 사람들보다 잘 이용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이민을 온 1983년 이후 미국은 더 어두운 사회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의 종류에는 소득이나 자산 같은 경제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교육과 보건의료 등 사회적 불평등도 심각하다. 저자는 4년제 대학 졸업자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사회적 격차에 주목한다.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의 실질임금 중간값은 1970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라며 “학사 학위가 없으면 집에서나 직장,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2등 시민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절망사’(Deaths of Despair)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내이자 동료 학자인 앤 케이스 프린스턴대 교수와 공동 저술한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에서도 다뤘던 내용이다. 절망사의 요인으로는 자살, 마약성 약물, 알코올 중독 세 가지를 꼽았다. 저자는 “미국 내 제조업의 고용 붕괴는 많은 사람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파괴하여 빈곤의 범위를 물질적 빈곤을 넘어 더욱 확대하고 있다”며 “팬데믹(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성인의 기대 수명은 10년 동안 감소해왔다”고 분석한다.
케인즈 학파의 영향 아래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시장 만능주의자도, 좌파 경제학자도 아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고향의 대선배로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애덤 스미스를 여러 번 인용한다. 스미스가 제시한 개념 중 저자가 가장 중요시하는 건 ‘사회적 행복’(Social Wellbeing)이다. 현대 경제학은 효율성만 추구하면서 사회적 행복과 멀어졌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그는 “현대 주류 경제학의 핵심 문제 중 하나는 그 범위와 주제의 한계성”이라며 “경제학은 인류 복지 연구라는 기반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통적인 우파나 좌파 경제학자의 주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최저임금이 좋은 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고용시장에서 일자리 공급이 줄어든다고 주류 경제학은 설명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연구가 1990년대 미국에서 나왔다. 그러자 주류 경제학자들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저자는 최저임금 인상 폭이 과도하지 않다면 고용주가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 그는 “물조차 뒤에서 충분한 압력을 받는 파이프 안에서라면 위로 흐르고 사과도 물통 안에서는 위로 떠오르지만, 누구도 중력의 법칙이 폐기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는 1959년 “경제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면 정치적으로 보수주의가 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저자가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오타가 틀림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케임브리지대에선 보수주의가 아니라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정당화하는 견해가 경제학의 주류였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 책은 저자가 25년 간 영국 왕립경제학회에 정기적으로 기고한 글을 주제별로 다시 정리하고 새로운 내용을 일부 보탠 것이다. 미국에선 지난해 10월 출간했다. 원제 Economics in America.
주정완 논설위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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