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중 폭력의 새로운 조명
신준봉 2024. 9. 21. 00:04
기유정 지음
산처럼
1920년 10월 경성의 일본인 실업가 119명이 모임을 가졌다. 3·1 운동 이후 “조선인의 사상이 매우 격변”하여 “밤에도 피스톨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게 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었다. 조선인들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손톱만 한” 시비만 붙으면 수백의 군중으로 돌변해 일본인을 구타하거나 파출소에 돌을 던졌다. 그러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자에 따르면 3·1 운동에는 무력 투쟁의 성격이 있었다. 그 결과 과격한 민족의식이 각성된 걸까.
물론 조선 대중의 폭력은 식민 권력에 대한 반란이자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만 주목할 때 조선인이 조선인 백정을 탄압한 반형평사(反衡平社) 소요나 중국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배화(排華) 폭동은 성격 규명이 어려워진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상이한 세 부류의 폭력에 공통적인 형식 논리에 주목했다. 사전 모의 없이도 군중이 형성됐고 단순한 피아 대치 상황에서 무분별한 폭력이 행사됐다는 것이다. 이를 마주침·모방·적대·열광·애도·폭력, 6개의 테마로 분류해 숱한 조선 대중의 폭력 사례들을 살폈다. 그것들을 민족사관 등으로 과잉담론화하지 말고 위태로웠던 조선 대중의 힘을 직시하자는 게 책의 취지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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