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소설에 깃든 수학의 파노라마

2024. 9.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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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아름다움이 서사가 된다면
새러 하트 지음
고유경 옮김
미래의창

“수학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수학을 산술과 혼동하며 건조하고 메마른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사실 가장 큰 상상력을 요구하는 건 과학이야. (중략) 영혼의 시인이 되지 않고서는 수학자가 될 수 없어.” 이런 말을 19세기 말 남겼을 때, 소피야 코발레프스카야(1850~1891)는 자신의 삶에서 깊이 우러나온 진실을 말했다. 그는 실로 뛰어난 수학자 겸 괜찮은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천재’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을까?

건실한 수학자이자 열렬한 문학 독자인 지은이 새러 하트는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수학을 알게 모르게 활용하는 갖가지 사례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아름다움을 찾고 감동하는 문학에 배어 있는 수학들을 짚어 주는 셈이다.

마지막 장은 약간 성격이 다르다. 수학자를 “감정 없는 논리학자이거나 비극적 천재”로 묘사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론이다. 그런 클리셰에 따라 셜록 홈즈 소설 속 악당 모리아티는 수학교수라고 명기되고, 『퀸스 갬빗』의 체스 신동 베스 하몬은 고통으로 몰아치는 유년기를 보낸다. 비극적 수학 천재 이야기는 영화로도 친숙하다.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나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튜링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은이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의 소설 ‘너무 많은 행복’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그런 클리셰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코발레프스카야의 마지막 나날들을 꾸며낸 이 단편을 지은이는 선입견을 벗어나 수학자를 가장 인간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상찬한다. 그가 어느 소설가의 말을 빌려 강조하듯이 “고정 관념의 문제는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수학도, 수학자도 고정 관념으로 묶어 가두기에는 너무나 다채롭다.

그런 모습들을 어떻게 펼쳐 보여줄 수 있을까? 문학적으로? 수학적으로? 아니면 문학과 수학을 아우르는 더 높은 가치를 중심으로? 천상 수학자인 지은이가 이야기를 펼치는 순서는 수학사의 흐름을 얼추 따르는 듯하다. 1부는 숫자 세기와 시를 엮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여러 정형시에서 2, 3, 5, 7, 11 등으로 이어지는 소수들이 나타난다는 지적부터 일정한 규칙에 따라 100조 개의 ‘시’를 한 권에 압축해 담은 시인 이야기나 소설의 기하학적 구조 등을 논한다. 2부는 수학 개념을 은유에 끌어들인 소설과 신화들을 보여주고, 3부는 문학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테마에 스며든 수학적 착상을 짚는다. 간단한 숫자 세기에서 출발해 수학적 추론까지 추상화 단계를 밟아가는 셈이기도 한데, 동시에 글자를 나열하고, 문장을 전개하고, 작품 전체를 이끄는 테마와 지향을 이야기하는 순서와 맞닿아 있다.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이 책이 소개하는 문학 작품을 모두 읽어둔 한국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놀이와 구별하기 힘든 서유럽 정형시부터 일본의 하이쿠와 단카, 프랑스의 실험적 현대시, 서구 고전소설, 최신 현대소설, 각종 대중문학까지 소개되는 작품들이 워낙 다양하다. 생소한 작품들을 소개받는 셈으로 읽어도 될 정도이다.

에피소드들이 독자의 마음에 던지는 파문도 진폭이 다르다. 아마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수학들에 따라서도 개인차가 있을 듯하다. 지은이가 군론(group theory) 연구자라서 그런지 순열과 조합이 등장할 때마다 숫자 계산을 길게 보여주곤 하는데, 그보다는 『모비 딕』에 등장하는 해석기하적 은유들이 소설을 관통하는 복귀 또는 회귀 이미지를 어떻게 절묘하게 뒷받침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짜릿하다. 수학도 가없고, 문학도 가없으니 이 책이 전하는 문학과 수학의 이야기도 가없는 이야기의 출발로 여기면 좋을 듯하다.

이관수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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