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문화산책] ‘얼평’ 유감
성·빈곤 등 차별의 종합세트… 타인 비난할땐 거울부터 봐라
“두 볼은 한 자가 넘고, 눈은 퉁방울 같고, 코는 질흙으로 만든 병 같고, 입은 메기 같고, 머리털은 돼지털 같고 (중략) 주둥이를 썰어내면 열 사발은 되겠고, 얼굴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그 생김새는 차마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서 장화 홍련의 아버지 배좌수의 재혼 상대인 장씨는 지독한 못난이로 묘사된다. 시대에 따라 설정은 조금씩 달라도 외모 비하는 한문본, 한글 필사본, 한글 판각본 등 30여 편의 이본이 대동소이하다. 장씨의 추한 외모는 무고한 장화 홍련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용서할 수 없는 악(惡)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외모에 대한 평가와 비교, 차별의 역사는 유구하다. 당나라에서 비롯되어 조선 선비들에게도 강조된 인재상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첫째도 말글과 판단력까지 앞지른 얼굴과 키였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아름다운 외모가 권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인권과 개성을 존중하는 풍토에서는 ‘PC(정치적 올바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부적절하며 무례하다는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생김새와 차림새를 평가하고 흠뜯는 한국의 ‘얼평’은 옳고 그름을 떠나 보편적이지 않다.
‘얼평’은 남녀노소 불문에 신분과 지위도 아랑곳없다.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과 운동선수와 범죄자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얼평’은 단지 겉모습의 생김새와 차림새에 대한 취향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한국아동청소년인권실태조사(2020)에 의하면, 성차별이 심한 사람일수록 외모 차별이 심한 경향을 보인다. 외모 차별은 빈곤 차별이기도 하다. 가정 형편은 청소년기에 영양과 청결 등의 형태로 외모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명품’의 거대 시장이 된 것도 외모를 통해 빈부 격차를 견주는 풍토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또한 외모는 건강과 직결되며 나이와 강력한 연관성을 가진다. 따라서 ‘얼평’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병자와 장애인 등에게 친화적일 가능성이 작고, 에이지즘(Ageism:연령 차별)에 사로잡혔을 가능성이 크다. 성차별, 빈곤 차별, 연령 차별 등 여러 가지 차별 의식의 종합 선물 세트가 ‘얼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는 불행하다. 외모 차별 경험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낮고 주관적 건강 상태가 나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데 차별을 타파하자고 외치던 이들조차 서슴없이 ‘얼평’을 해댄다. 반대 진영 인사를 비판하기 위해 ‘망가진 얼굴’, ‘병든 얼굴’을 들먹이며 짧은 글 안에 ‘얼굴’이라는 단어만 여덟 번 등장시킨 어느 지식인의 칼럼을 읽었을 때는 참담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의로운 원칙은커녕 최소한의 예의조차 내던졌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구도, ‘관상은 과학’이라는 요샛말도 믿기 힘들다. 미용 의학의 발달로 충분한 시간과 돈이 있으면 얼마든지 나이를 뛰어넘은 외모를 소유할 수 있다. 확증 편향을 제거한다면 신상 공개된 흉악 범죄 피의자조차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임에 더욱 소스라친다.
못생긴 것만 흉보는 게 ‘얼평’이 아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소개하면서 외모를 지나치게 칭송하는 것도 실력과 성취에 대한 비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은, “나는 배우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예쁜 소년이라는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수년간 싸워왔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도저히 ‘얼평’의 본능과 끓어오르는 충동을 참지 못하겠다면, 즉시 거울 앞에 서 보기를 권한다. 거울에 비친 경상(鏡像)을 바라보며 조목조목 흠잡아 씹고 뜯고 즐기면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 객관화’이자 ‘자기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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