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설렜는데… 잔인했던 스타우트의 마지막, 남은 에릭의 슬픔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KIA 외국인 에이스로 활약하던 제임스 네일(31)은 지난 8월 24일 창원 NC전에서 타구에 턱을 맞아 곧바로 응급 수술을 받을 정도의 큰 부상을 당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이 나오는 순간 정규시즌은 그대로 끝나 있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아직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하지 못한 KIA는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네일의 재활에 6주 이상이 걸릴 것이 확실했기에 부상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 제도를 활용했다. 다만 미국에서 선수를 데려오기는 모든 게 어려웠다. 매물도 없었고, 시차 적응과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기다리다 시간이 다 갈 판이었다. 그때 이범호 KIA 감독은 시즌 중반 대체 외국인 선수 후보로 눈여겨봤던 에릭 스타우트(31)의 영입이 가능하느냐고 프런트에 문의했다. 그렇게 KIA가 움직인 끝에 스타우트가 손을 잡았다.
올해 대만프로야구 중신 브라더스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스타우트는 KBO리그 여러 구단들의 대체 외국인 후보였다. 다만 시즌 중반에는 소속팀이 풀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 막판이 되자 중신의 태도가 달라졌고, 무엇보다 스타우트가 한국행에 적극적이었다. 더 큰 무대에서의 활약을 꿈꾼 스타우트는 ‘단기 아르바이트’라는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시차 적응도 필요 없었고, 대만에서 선발로 계속 뛰던 터라 빌드업 과정도 필요없었다.
사실 현실에 안주했다면 그냥 대만에 머무는 게 나았다. 올해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재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타우트는 웨스 벤자민(kt), 카일 하트(NC) 등 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과 친분이 있었고, 한국 무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스타우트는 “한국에 일단 와서 그 기회를 한번 받아보고 싶었고 내 커리어에 한 단계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면서 “한국 KBO 팀에서 연락이 오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기회였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쩌면 ‘코리안 드림’이었다.
그 꿈은 현실화되는 듯했다.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77로 나쁘지 않은 투구를 했다. 좌완으로 평균 140㎞대 중반, 최고 시속 150㎞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스위퍼성 슬라이더 등 결정구의 움직임도 있었다. 그렇게 스타우트는 자신이 던진 세 차례 등판에서 팀이 모두 이겼고, 개인적으로도 1승을 챙겼다. 하지만 꿈은 더 오래 가지 못했다. 19일 잠실 두산전에 등판했으나 2회 투구 중 허벅지를 다쳐 강판된 끝에 시즌 아웃이 확정됐다.
당초 이날은 스타우트의 등판일이 아닌, 에릭 라우어의 등판 순번이었다. 하지만 라우어가 손톱 쪽에 작은 문제가 있었다. KIA는 스타우트에게 나흘을 쉬고 등판할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했고, 스타우트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남은 두 차례의 등판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는 후문이다. 8월 15일 이후 입단해 규정상 포스트시즌에 등판하지 못하는 신분이지만, 정규시즌 마지막은 자신의 손으로 책임지며 팀에 공헌하겠다는 의지도 강했다. 입단 당시부터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은 인성과 워크에식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19일 두산전 시작은 좋았다. 1회를 가볍게 요리했다. 그러나 2회 들어 공이 다소 몰리고, 잘 맞지 않은 안타가 나오면서 위기에 몰렸다. 결국 2회 3실점했고 정수빈 타석 때 공을 던지다 왼쪽 허벅지를 다쳤다. 중심이 무너지며 마운드에 쓰러진 스타우트는 곧바로 글러브를 벗고 통증을 호소했다. 경기를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절뚝이며 마운드를 내려간 스타우트는 쥐고 있던 공을 집어 던지며 갑작스러운 불운을 한탄했다. 경기 후 조용히 홀로 걸어 버스에 올라타는 스타우트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불행한 느낌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KIA는 20일 “어제(19일) 잠실 두산전에서 투구 이후 왼쪽 허벅지 통증으로 인해 교체되었던 에릭 스타우트 선수가 오늘 구단지정병원인 선한병원에서 MRI검진을 실시했다. 검진결과 왼쪽 햄스트링 부분손상 진단 소견이다. 스타우트 선수는 내일(21일) 말소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정규시즌이 이제 열흘 남짓 남은 상황에서 스타우트의 시즌 아웃이라는 표현을 돌려 말한 것과 같다. 다른 선수였다면 포스트시즌 출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어났을 테지만, 애당초 올 때부터 포스트시즌과 연관이 없었던 스타우트라 고별전 한 번 못해보고 한국을 떠날 상황이다. 정수빈을 상대로 공을 던지며 넘어지던 그 모습이 올 시즌 스타우트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KIA는 올해 일찌감치 정규시즌 우승은 확정했지만, 외국인 투수 쪽에서는 그 어떤 해보다 험난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투수 농사에 실패했던 KIA는 올해 KBO리그에서 가장 신중하게 외국인 투수를 인선한 팀이었다. 마지막까지 패가 밝혀지지 않아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구위파 투수를 찾았던 KIA는 결국 메이저리그 경력이 제법 화려했던 우완 윌 크로우, 그리고 제임스 네일을 차례로 영입해 만회에 나섰다.
하지만 네일이 성공한 것에 비해 크로우는 시즌 초반 이닝 소화에서 다소간 문제를 드러내더니 몸이 풀릴 때쯤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다. 총액 100만 달러를 꽉 채워 투자한 선수가 8경기에서 40⅓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성적과 별개로 치명타였다. 부상 단기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한 좌완 캠 알드레드는 시즌 마지막까지 보장 계약을 주며 기대를 걸었지만 큰 무대를 보는 KIA의 성에 차지 않았다. 9경기에서 43⅔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53에 그쳤다. 그리고 스타우트마저 부상으로 쓰러졌다. 큰 부상을 당한 네일은 한국시리즈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고 실제 회복세가 좋은 건 사실이지만 아직 장담은 이르다. 마운드 위에서 경기력이 얼마나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결국 로스터에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에릭, 에릭 라우어의 투구에 관심이 몰린다. 라우어와 스타우트는 비슷한 시기에 입단해서 그런지 서로간의 호흡이 괜찮았다. 라우어가 입단 초기 부진했을 당시 스타우트와 이야기를 많이 하며 조언을 주고받고 보완점을 개선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외국인 선수들끼리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 만했다. 어쩌면 두 선수가 내년 네일의 짝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경쟁자 이전에 동료애를 발휘했다. 라우어는 이제 스타우트의 마음까지 담고 남은 경기에 나서야 할 책임감을 안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36승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라우어는 입단 후 6경기에서 2승2패 평균자책점 4.99를 기록 중이다. 초반에는 KBO리그 타자들의 성향에 적응하지 못해 고전했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는 포심과 커브 위주로 레퍼토리를 바꾸고, 활용하는 존의 지점도 다양화하면서 힘을 내고 있다. 9월 5일 한화전에서는 6⅓이닝 3실점, 그리고 9월 12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 1피안타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순조로운 적응을 알렸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IA지만 현시점에서 믿을 수 있는 선발은 토종 에이스 양현종 정도다. 네일의 정상 복귀가 가능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윤영철 황동하 김도현 등 젊은 선발 투수들은 큰 경기 등판 경험이 ‘0’이다. 결국 라우어가 확실하게 반등해 한 경기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라우어의 손톱은 큰 문제는 아니고, 정규시즌 종료 전까지 한 경기는 등판하고 시즌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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