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로비스트’ 박동선
1950년대 말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 학생회장으로 동양인이 처음 뽑혔다. 한국 유학생 박동선이었다. 미국 학생들은 전쟁 폐허인 한국은 잘 몰랐지만 친화력 좋은 박동선은 좋아했다. 주유소 회사(미륭상사) 막내아들인 박씨는 1960년대 워싱턴에 사교 클럽인 ‘조지타운 클럽’을 열었다. 존슨 전 대통령과 포드 부통령, 상원의원 등이 드나들었다. 박씨는 미국 잉여 식량을 미 정부가 사들여 한국에 원조하는 프로그램을 중개해 돈을 벌었다. 농업 지역 미 의원들과 가까워졌다.
▶1970년 한국은 안보·경제가 모두 위기였다.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했고 미국 원조도 대폭 줄었다. 미군이 완전히 빠지면 경제 개발에 써야 할 돈을 군사 분야로 돌려야 했다. 당시 한국과 처지가 비슷했던 대만은 효과적 로비로 미국 지원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일권 총리가 친분이 있던 박동선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는 ‘한국식’으로 워싱턴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는 “박동선과 중앙정보부가 미 의회에 최대 100만달러의 현금 등 불법 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코리아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한미는 2년간 이 문제로 갈등했다. 한국에 있던 박씨는 신변 보장을 받고 미 의회에서 증언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여유도 보였다. 그는 한국 정부 연루를 부인하며 “애국심으로 정치 자금을 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평생 이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 불법 로비를 받았다는 미 정치인은 90여 명에 달했지만 실제 유죄 판결은 하원의원 1명뿐이었다. ‘게이트’가 마무리된 후 박씨는 인터뷰에서 “끝까지 혼자 모든 걸 뒤집어썼더니 사건 후 오히려 로비 일거리가 늘더라”고 했다. 일본·중동·중남미 등에서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박씨는 “국가 간 로비 방법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했다. 영국 고위층에 줄을 대려면 승마협회로 접근하면 쉽다고 했다. 영국 상류층 대부분이 경마팬이기 때문이다. 중미에선 난(蘭)이 국화인 나라가 있는데 박씨가 한국난협회장을 역임한 덕분에 최고위급을 만날 수 있었다. 박씨는 한국차(茶)인연합회 이사장도 지냈는데 차는 중국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19일 박동선씨가 별세했다. 어떤 사람은 ‘독재 정권 하수인’ ‘뇌물 브로커’라고 평가한다. 반면 ‘코리아 게이트’를 조사한 미 의회 보고서는 ‘박씨 활동이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 미 의회는 한국에 대한 15억달러 군수 원조를 승인했고 주한미군 철수 여론도 수그러들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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