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의 ‘두 국가론’···현실적 방안일까, 헌법 부정일까
“남북 관계, 한·일 관계와 다를 바 없어져” 비판
통일 담론 사라진 상황에서 “토론 계기”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의 이른바 ‘두 개의 국가론’ 발언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은 남북 대치가 가파른 상황에서 국가 대 국가라는 외교 관계를 통해 평화 공존을 먼저 하자는 현실론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대 정부가 고수해온 통일 방안과 헌법에 배치되고,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는 비판이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서 나온다.
임 전 실장의 지난 19일 ‘두 국가론’ 발언 취지는 ‘일반적인 외교 관계를 통해서라도 평화를 꾀하는 게 현실적이다’는 말로 요약된다.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는 발언 등에서 이같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두 개의 국가 상태를 유지”하자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은 사실상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공식명칭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부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은 1991년 9월 유엔(UN)에 동시 가입으로 국제법상 두 개의 국가가 되자, 그해 12월 남북관계를 ‘통일지향 특수관계’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4년 김영삼 정부가 ‘남북 화해·협력 → 남북연합 →통일(1민족 1국가)’라는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발표했고, 이를 역대 정부가 계승했다. “두 개의 국가”라는 발언은 ‘통일지향 특수관계’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임 전 실장의 주장대로 통일을 전제로 한 ‘화해·협력’ 대신 ‘평화’만 강조하면, 남북 관계는 한·일 관계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며 “그 상태로 30년 뒤 통일을 논의하면 통일이 아닌 ‘점령 또는 강탈’이 되버린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의 ‘현실론’에는 북한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후속 조치를 밟고 있다. 다음 달 7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남한의 국회 격)에서는 북한 헌법에서 ‘통일’을 삭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임 전 실장의 ‘두 국가론’은 시기상 북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도 경제적으로 얻을 이익이 없다고 판단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 한 것”이라며 “남북 관계를 개선할수록 평화에 대한 이익을 얻는 우리까지 통일이 도움이 안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이 ‘평화 정착’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두 개의 국가’를 언급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임 전 비서실장의 ‘두 개의 한국’ 발언을 언급하며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지키자는 발언은 햇볕정책과 비슷”하다면서도 “이것을 오해해 통일하지 말자 등 시니컬, 냉소적 접근은 안된다. 학자는 주장 가능하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은 성급하다”고 밝혔다. 홍성규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현실적으로 ‘평화’와 ‘통일’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며 “통일을 추구해오던 그 과정이 바로 평화를 안착시키는 길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여권은 ‘북한 주장 동조’ ‘헌법 부정’을 언급하며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일포기 2국가론’은 김정은의 ‘반통일 2국가론’에 화답하는 것인데, 무슨 지령이라도 받았나”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의 개헌 주장을 두고는 여권을 중심으로 비판이 나왔다. 임 전 실장은 ‘헌법 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의 삭제나 개정을 주장했다. ‘헌법 전문’(평화적 통일 사명)이나 ‘헌법 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의 개정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김관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헌법을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명령이고 의무”라며 “그런 의지가 없다면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통일에 대한 공론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담론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간 젊은 세대가 ‘통일보다는 남남으로 살고 싶다’는 등으로 답변한 여론조사 결과는 있었지만, 통일 담론이 정치권 주요 의제로 다뤄진 경우는 드물었다. 지난달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여론의 반향도 크지 않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통일을 삭제한 헌법을 내세우고 영토 분쟁을 일삼을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사회적인 합의는 무엇인지를 논의한 적이 없다”며 “이번 일을 기화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토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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