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의 기본소득 꿈…월드코인과 함께 무너지다

송영찬 2024. 9. 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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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INSIGHT
'챗GPT 아버지 야심작' 월드코인의 몰락
'거대 경제공동체' 꿈꾼 올트먼
홍채를 '세계 신분증'으로 보고
코인을 '기본소득 화폐'로 여겨
"코인 미끼로 무차별 정보수집"
각국 정부, 홍채수집 제동 걸고
"기본소득은 신기루" 인식 확산

‘인류 모두를 위해.’

암호화폐 월드코인의 캐치프레이즈다. 탈(脫)중앙화, 쉬운 모바일 결제, 빠른 국제 결제를 내세운 비트코인 등 여타 암호화폐와는 다르다. 대신 “인공지능(AI) 시대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場)을 목표로 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운다. 지급받기 위해선 홍채를 인식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도 설립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의 비전에 투자자들은 몰려들었다.

가격이 폭등하던 월드코인은 출시 1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닥뜨렸다. 위기의 표면적인 원인은 세계 각국의 전방위적 규제다. 월드코인이 수집하는 개인의 홍채 데이터가 어디에 쓰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 신분증’을 만든다는 민간 기업의 절차적·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에서 온다. 월드코인이 주창하는 기본소득의 효용성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인류를 위한다”는 목표 내세워


20일 월드코인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계 160여 개국에서 약 650만 명이 월드코인을 지급받았다.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1년여 만이다. 월드코인을 받기 위해서는 ‘오브’라는 기기를 통해 홍채를 인식한 뒤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홍채는 사람마다 무늬·형태·색 등이 달라 신원 확인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1조분의 1 수준으로 극히 낮다. 오류 가능성은 지문(1만분의 1)이나 얼굴 인식(1000분의 1)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올트먼 CEO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가 오면 사람이 수행한 작업과 AI가 수행한 작업을 구별하기 어려워진다”고 홍채 인식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오브를 통해 AI가 아닌 인간이라는 게 인증되면 ‘월드 ID’가 발급된다. 월드코인 세계에서 신분증 역할을 하는 월드 ID를 암호화폐 지갑 ‘월드 앱’에 등록하면 매달 월드코인이 지급된다. 한국에서는 인증 완료와 함께 24시간 내 월드코인 25개를 받을 수 있고, 매달 월드코인이 지급된다. 매달 양은 다르지만 한도 내에서 소득처럼 꾸준히 지급된다.

올트먼이 막스플랑크연구소 출신 물리학자인 알렉스 블라니아와 손잡고 내놓은 월드코인은 단순 암호화폐가 아니다. 월드코인을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디지털 신분증이자 AI 시대 기본소득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이들의 꿈이다. 신원 인증만 마치면 매달 주기적으로 코인을 지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트먼 CEO는 “AI 시대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면서도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적 지원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올트먼 이름값에 수요 몰려

월드코인 가격은 ‘오픈AI 테마주’ 같은 흐름을 보여왔다. 2.4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월드코인은 지난해 11월 오픈AI 이사회의 전격적인 올트먼 CEO 해임에 20% 넘게 떨어졌다. 지난 2월 오픈AI가 텍스트를 영상으로 변환해주는 생성형 AI ‘소라’를 공개하자 2.3달러 수준이던 월드코인은 한 달 만에 10.84달러까지 5배 가까이 올랐다.

월드코인 투자자의 또 다른 한 축은 ‘무상 지급’에 열광한 사람들이 차지했다. 특히 경제가 불안정한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수요가 더욱 컸다. 자국 화폐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을 수만 있다면 홍채 데이터 정도야 기꺼이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서다.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270%까지 치솟은 아르헨티나에서는 월드코인 가입자가 이달 들어서만 하루 새 9500명씩 늘어났다. 9초에 한 명꼴이다. 월드코인은 암호화폐 중 유독 개발도상국 이용자 비중이 높다.

 ○생체 인증이 촉발한 정당성 문제

지난 3월 최고가를 찍은 월드코인 가격은 불과 여섯 달 새 86.2% 떨어졌다. 지난해 8월에는 1주일에 약 26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끌어들였지만 현재는 신규 가입자 수도 10만 명대로 반토막났다.

월드코인의 몰락은 세계 각국이 규제에 나서면서 본격화됐다. 각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월드코인이 광범위하게 수집한 홍채 데이터를 인증 이외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7월 케냐가 자국 내에서 홍채 데이터 수집을 금지한 게 시작이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3월 월드코인 조사에 착수했고, 홍콩은 5월 월드코인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특히 월드코인은 정부 감시가 약한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기만적으로 홍채 데이터를 수집해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202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월드코인은 2021년 말 인도네시아와 케냐에서 현금이나 에어팟 등 경품을 준다며 사람들의 홍채 데이터와 이메일·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 약관은 영어로만 제공했다. 게다가 월드코인이 생체 데이터 수집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미국에선 월드코인을 정식 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비판을 키웠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자국민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주권국 정부를 초월해 세계 범용 신분증을 만든다는 구상은 민주적 정당성 문제를 야기했다. 사용자들의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월드코인과 월드 ID가 전 세계 정부와 시민을 통합할 수 있다는 구상인데, 이는 탈중앙화를 핵심으로 하는 암호화폐의 이념과도 배치된다.

여기에 올트먼 CEO가 월드코인과 별개로 3년에 걸쳐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는 월드코인의 당위성까지 약화했다. 올트먼은 2019년 11월부터 3년간 1000여 명의 피실험자에게 매달 1000달러(약 133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2000명에게는 매달 50달러를 줘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올트먼 CEO의 예상과는 달랐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은 50달러를 받은 사람들과 비교해 근로시간은 주당 1.3시간 줄었지만 늘어난 시간을 자기계발이나 건강 관리에 쓰지 않았다. 빚을 더 많이 냈다는 결과도 나왔다.

미국의 한 암호화폐 업체 대표는 “월드코인은 많은 투자를 유치했고 이미 시가총액이 커서 당장 상장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미 각국의 규제가 심해진 데다가 올트먼 CEO를 바라보고 투자한 사람들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어 지속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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