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삐삐’ 폭발에 ‘사물폭탄’ 공포↑…“일상 기기가 수류탄”

김동용 기자 2024. 9.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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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통신수단으로 사용한 무선호출기(삐삐) 수백 대가 연쇄적으로 폭발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통신기기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각) 영국 BBC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 수백 대가 17~18일 이틀에 걸쳐 연쇄적으로 폭발하자 레바논 시민들은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다른 전자기기도 터질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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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일상 속 기기가 수류탄으로 바뀌는 시대”
사물 인터넷 이용해 가전제품도 폭발물로
공포에 휩싸인 레바논, 시민들 전자제품 사용 자제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동부 발벡의 한 주택에서 폭발한 무선 기기의 잔해. AFP연합뉴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통신수단으로 사용한 무선호출기(삐삐) 수백 대가 연쇄적으로 폭발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통신기기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일상 속 통신기기가 폭발물로 돌변해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전자용품을 무기로 이용하는 새로운 차원의 파괴공작(사보타주)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19일(현지시각) 영국 BBC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 수백 대가 17~18일 이틀에 걸쳐 연쇄적으로 폭발하자 레바논 시민들은 휴대전화나 노트북 등 다른 전자기기도 터질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BBC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파견된 자사 기자들이 거리에서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를 시민들로부터 여러 번 받았으며, 일부 시민들은 다른 사람 옆에 가까이 가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폭발 사건은 전선이 아닌 민간 지역에서 벌어져 민간인들도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통신기기를 이용한 파괴공작 자체는 새롭지 않다면서도 한꺼번에 많은 기기를 조작해 터뜨린 점을 언급하며 “전자 파괴공작의 어두운 기술을 새롭고 무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일상 도구 무기화’의 시작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는 물론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제어하는 ‘사물 인터넷’을 이용해 ‘사물 폭발물’로 만들 수 있다는 시각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법무 자문위원을 지낸 글렌 거스텔은 NYT에 “(이번 폭발 사건은) 휴대전화부터 온도조절기까지 어떤 전자기기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고편”이라며 “다른 개인·가정용 기기가 다음 목표물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번 폭발 사건은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적 목적보다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든 일상의 도구가 폭발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어서다.

대규모 전자 파괴 공작은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히 개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헤즈볼라를 비롯한 친(親)이란 세력과 이스라엘간 역량 차이가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사이버보안 전문가 하디 엘 코우리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공급망을 조작하고 해킹하는 기술과 역량이 뛰어난 누군가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자체 공급망이 없다면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기기는 해킹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19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폭발물 전문가가 의심스러운 전자기기를 조사하는 동안 경찰이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지난 17일(현지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교외, 이스라엘 접경지인 남부, 동부 베카벨리 등 헤즈볼라의 주요 거점에서 무선호출기 수천 대가 연쇄 폭발했다. 이 폭발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3000명이 크게 다쳤다.

이튿날인 18일(현지시각)에도 베이루트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가 연쇄 폭발했다. 이 사고로 20명이 사망하고 4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올해 2월부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군의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사용 자제를 권고하고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를 도입해왔다. 

일부 외신은 미국과 레바논의 당국자 또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사건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헤즈볼라가 구입한 무선호출기와 휴대용 무전기 내부에 이스라엘이 미리 폭발장치를 부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이다. 실제 레바논의 한 고위 안보 소식통은 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수개월 전 헤즈볼라가 구입한 무선호출기 5000대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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