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익의 모서리] 이 정도까지 행복한건 못참아?

이용익 기자(yongik@mk.co.kr) 2024. 9. 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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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농담 삼아 직업은 누리꾼이고 부업으로 신문기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방대한 넷의 세계를 떠돌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분야에서 이슈가 생기고 잦아든다.

이 와중에 중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곽씨에 대한 따돌림이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그가 친구 게임기를 훔치기도 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곽씨 외에도 수많은 유튜버가, 인플루언서가 불필요했던 논란 한 번에 인기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이제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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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농담 삼아 직업은 누리꾼이고 부업으로 신문기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방대한 넷의 세계를 떠돌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분야에서 이슈가 생기고 잦아든다. 지난 추석 때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는 단연코 여행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의 논란이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집단따돌림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한 뒤 아제르바이잔 주재 대사관 직원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여행 유튜버로 전업한 곽튜브는 특유의 인간미로 20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인기인이 됐다.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유튜버' 2위에 올랐고, 한국방송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잇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나 역시 2022 카타르월드컵 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에 열중하던 곽튜브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으며 잘 보고 있다는 인사를 건넨 기억이 있다. 그랬던 곽씨가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그룹 내 집단따돌림 논란이 있었던 걸그룹 출신 여배우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영상을 올렸는데, 그 자신이 따돌림 피해자라면서 어떻게 가해자를 '세탁'해 주려는 시도를 하느냐며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중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곽씨에 대한 따돌림이 사실이 아니고, 오히려 그가 친구 게임기를 훔치기도 했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곽씨의 구독자는 수만 명이 줄어들었고 예정된 방송 출연과 프로야구 시구도 취소됐다. 인기를 끈 비결 중 하나가 따돌림의 극복이었던 만큼 논란이 있는 이와 방송한 데 실망감을 느낄 수는 있겠다. 좋아요와 구독 누르기가 쉬운 만큼 취소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한 유튜버의 구독자 증감과 방송 출연 여부는 이렇게까지 중요한 얘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곽씨 외에도 수많은 유튜버가, 인플루언서가 불필요했던 논란 한 번에 인기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이제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

다만 인기의 속성이, 온라인 구독자가 원래 그렇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다. 분명히 폭력과 따돌림은 잘못된 것이지만 함께 방송에 출연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가 온라인 게임에 접속했다는 사실마저 기사가 되는 상황이 정상적일까. 사법제도에는 범죄와 형벌이 비례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데 온라인 조리돌림에는 그런 것도 없어 보인다.

다시 한번 누리꾼으로 돌아가 곽씨의 사과문과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본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일종의 템플릿처럼 특정 상황에서 밈이나 유행어를 활용한 말투를 쓰는 것이 관례처럼 정해질 때가 있다. 즐거운 가정을 보여주는 국제결혼 유튜버에게는 "전생에 거북선 노를 저었을 것"이라며 축하해주고, 분수에 맞지 않게 구는 이에게는 "너 뭐 돼?"라며 일침을 날리는 식이다.

그런 밈 중에는 행복함을 누리는 이에게 "이 정도까지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다"는 말도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웃었지만 이제는 그런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튜브가 학창 시절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성공한 사람이 되는 모습에 뿌듯함보다 열등감과 질투를 느낀 이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행복하기보다, 남들이 덜 행복한 모습을 볼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용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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