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①] 화재 때 인명피해 못 막은 에어매트…규격도 매뉴얼도 '제각각'

이태권 기자 2024. 9. 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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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발생한 경기 부천 원미구 호텔 화재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사망자 7명과 부상자 12명 등 총 19명의 사상자를 낳은 이번 참사는 사망자 가운데 2명이었던 807호 투숙객 30대 남성 A 씨와 40대 여성 B 씨가 소방대원이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려 대피를 시도했다가 매트가 뒤집히면서 바닥에 추락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이 때문에 에어매트를 이용한 구호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위험 상황에서 사람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믿고 뛰어내린 에어매트가 오히려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관련 조치를 두고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진 겁니다. 안전성 문제까지 제기된 상황, 우리가 짚어봐야 할 이번 참사로 불거진 에어매트를 둘러싼 의문점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에어매트 규격, '5층용'까지만 규정…'고층용' 마련 안 돼있어


이번 호텔 화재에서 소방이 사용한 에어매트는 이른바 '고층용' 매트였습니다. 10층 높이에서 뛰어내려도 살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이란 뜻입니다. 가로 7.5m, 세로 4.5m, 높이 3m 크기로, 공기를 주입하지 않았을 때의 무게는 126㎏에 이릅니다. 부천소방서 관내에는 총 12개의 에어매트가 보관, 운용되고 있었는데 이 중 11개가 5층용이고 나머지 1개가 10층용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런데 소방청 고시인 '공기안전매트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에 따르면 매트의 규격(제4조)은 사용 높이가 15 m 이하인 경우 가로세로 3.5m, 높이 1.7m 이상으로, 사용 시 필요한 부품을 포함한 중량은 100 ㎏ 이하여야 한다고 규정돼있습니다. 통상 1층 당 높이가 3m인 점을 감안하면 5층용 에어매트에 대한 규격만 규정돼있는 겁니다. '소방장비 기본규격'에도 마찬가지로 '16m 이하 높이에서의 요구조자의 구조 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에어매트'에 대해서만 적용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에서도 5층용 매트 외에는 별도의 안전성 인증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고층용 에어매트에 대해서는 안전성이 인증되는 통일된 규격이 따로 없는 셈입니다.

다만 에어매트의 안전성을 맹신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KFI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건 5층까지 뿐'이라는 국내외 연구결과에 따라 5층용까지만 인증을 내준 것"이라며 "고층용의 경우 안정성이 무조건 담보되진 않는 만큼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층에서 뛰어내릴수록 정확한 낙하 지점에 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성 담보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사용 매뉴얼도 제각각…일선 소방서 실무 위한 자체 매뉴얼 그쳐


에어매트를 이용한 구호 조치 시 사용 매뉴얼이 통일돼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현재는 일선 소방서별로 실무상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해 제조사 설명서 등을 참고한 자체 매뉴얼만 있을 뿐, 현장에서 어떻게 전개하고 설치, 운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소방청 차원의 표준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에어매트 제품마다 공기를 넣는 주입구의 크기나 개수도 다르고, 특히 일정한 규격이 규정돼있지 않은 고층용은 제원도 각각 다른 만큼, 제조사가 제공한 사용 설명서에 의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특히 이번 화재의 경우 소방대원들이 에어매트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게 맞는지, 아닌지에 대한 현장의 혼선도 드러났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재 이튿날인 지난달 23일 현장을 찾아 "(에어매트를) 잡아주는 사람은 없었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당시 인원이 부족해 에어매트를 잡아주진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소방대원이 에어매트를 붙잡고 있을 경우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왕열 우송대 재난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소방대원이 잡고 있다가 그 지점으로 뛰어내린 사람이 떨어지게 되면 밑에 있는 소방대원도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에어매트 사용 훈련도 일선에서 제각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된 훈련 지침이 없다 보니 생긴 혼선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되면서 소방청은 뒤늦게 에어매트 설치·훈련 등에 대한 통합 매뉴얼을 조만간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사용연한 '7년' 훌쩍 넘었는데…18년 전 구매한 에어매트 아직도 사용?


일선 소방서에서 사용하는 에어매트의 관리 실태 또한 점검이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옵니다. 부천소방서에서 이번 화재 당시 사용한 고층용 에어매트는 지난 2006년 9월 27일 구매한 제품으로 확인됐습니다. 에어매트의 사용연한인 7년을 훌쩍 넘긴 건데, 구매 후 18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사용해왔던 겁니다. 소방당국은 매년 불용 심의를 통해 제품에 이상이 없으면 1년 단위로 사용 기한을 연장해 쓸 수 있는 만큼, 해당 에어매트의 경우도 올해까지 심의를 통과해 연장 사용해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불용 심의를 통과했다곤 하지만 에어매트가 노후화 될수록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만큼 선제적인 교체가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됩니다.

실제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소방서에서 사용 중인 에어매트 1천582개 가운데 약 28.5%에 해당하는 452개는 사용 연한 7년을 넘긴 상태로 파악됐습니다. 구매 후 10년을 넘긴 에어매트도 292개로 약 18.4%에 이릅니다. 이론적으론 불용 심의만 통과하면 제한 없이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는 점도 규정 정비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입니다.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결국 허성곤 소방청장은 지난 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에어매트에 대한 전국 일제 점검을 했다”며 사용연한이 지난 에어매트들에 대해 시도 등과 협의해 전량 교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번 화재로 에어매트를 활용한 구호 과정의 미비점이 드러난 만큼 지속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 보험 회사 관리자였던 허버트 W. 하인리히가 밝힌 '하인리히 법칙'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 번의 큰 재해 앞엔 수십 번의 작은 재해와 운 좋게 지나간 수백 번의 징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이라도 노후화된 에어매트들을 점검하고 미비한 훈련 매뉴얼, 관련 법령들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더 큰 에어매트 관련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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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권 기자 right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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