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허들 높아진 가계대출 … "실수요자는 구제해드려요"
정부가 가계대출 억제에 나서면서 은행마다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규제책을 쏟아내고 있다. 저마다 다른 규정에 소비자들의 혼선이 지속되고 있어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들이 '집단 지성'을 통해 '친절한 가이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자들도 기사를 쓰면서 '집단 멘붕'이 찾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규정을 이렇게 해석하면 맞나요?"란 질문에 은행 담당자들의 답변마저 제각각이었다.
일단 지난 19일 기준 주요 5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규제를 소비자들의 사례별로 분류해 '된다' '안 된다'와 더불어 은행들이 내건 부대 조건까지 담아 총정리해봤다. 은행별로 규제정책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신중한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가장 관심이 많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무주택자는 은행 규제 '청정 지역'이다. 그냥 대출 한도와 금리만 고민하면 된다.
유주택자부터는 셈법이 복잡해진다. 유주택자의 정의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유주택자는 나와 주민등록지를 같이하는 가구원 중 1명이라도 주택을 보유할 경우 유주택자로 간주된다. 부부나 부모·자식 등 같은 가구원이라면 유주택자다. '내 명의'의 주택이 없다고 봐주는 것이 없다.
먼저 1주택자의 경우부터 따져 보자. 1주택자가 2주택자가 되기 위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주택을 사는 경우 하나·농협 2곳 은행에서만 대출이 가능하고, 국민·신한·우리 등 은행에서는 주담대를 받을 수 없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 주택을 추가 구입하려는 경우에는 신한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에서 모두 주담대가 가능하다.
다주택자가 목적이 아니라 집 갈아타기에 나선 1주택자의 사정은 어떨까. 수도권 주택 갈아타기의 경우 애초부터 주담대를 내주는 하나·농협은행은 물론 국민·신한·우리은행도 가능하다. 단, 이들 3곳 은행에는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이 걸려 있다. 비수도권 주택 갈아타기의 경우에는 신한은행만 기존 주택 처분 조건이 걸려 있을 뿐 다른 은행들은 자유롭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본인이 무주택이지만 상속을 받아 집이 갑작스럽게 생기는 경우도 있다. 또 현재 집을 가진 부모님과 같이 살지만, 결혼 이후 분가해 나갈 계획이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에는 국민·우리은행 2곳에서는 예외적으로 수도권 주택 주담대를 허용한다. 이 밖에 다른 사연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행별로 '실수요 조사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으니 '억울한' 사연을 잘 설명한다면 예외 적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이 정도면 눈치를 챘겠지만 2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선택지가 더 적다.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을 노린다면 공략 포인트는 하나·농협은행 2곳이다. 하나은행은 일단 가능하다. 농협은행은 가능은 한데 조건이 달려 있다. 이주비·중도금·잔금 취급 등 집단대출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은행은 '원천봉쇄'다. 비수도권 주택의 경우라면 하나·우리·농협은행 3곳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다주택자 주담대는 이론상으론 가능하지만 한도는 그리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규제 지역과 비규제 지역별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별도 적용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최근 규제가 까다로워진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상황이 더 복잡하다. 주요 시중은행이 전세대출을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갭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신규 분양 주택과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집주인이 바뀌는 전세대출)까지 규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1만2000가구의 입주를 앞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 잔금일이 다가오면서 어디서 대출을 받아야 할지 시장은 혼돈에 빠졌다.
우선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인 올림픽파크포레온과 같은 신규 분양 주택의 경우 미등기 상태이기 때문에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는 차주는 하나은행 혹은 농협은행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다. 단 농협은행은 대출 실행 전일까지 임대인의 분양대금 완납 확인 서류를 제출한 경우에 한해서만 대출을 허용해주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모두 소유권을 이전하기 전에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집을 매매한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갭투자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다만 신한은행은 직장 이전·자녀 교육·질병 치료·부모 봉양·학교 폭력·이혼·분양권 취득 등 실수요자 요건을 충족시켰을 때 예외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내준다.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 '절대 조건'이 또 달려 있다. 본인 또는 배우자의 보유 주택이 투기·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을 넘는 경우엔 예외 요건에 부합해도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에 집을 갖고 있으면 전세대출 안 해준다는 뜻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가 아닌 일반 매매로 집주인이 바뀌는 경우에는 하나은행에서만 전세대출을 내준다. 다른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굳이 받고 싶다면 집주인 간 소유권 이전이 끝난 뒤에나 가능하다. 국민은행은 이 같은 조치를 10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11월부터는 다시 전세대출을 내줄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전세대출을 받는 게 특히 어려운 은행이다. 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대출을 강하게 규제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주택을 단 1채라도 소유한 경우 수도권 주택에 대한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실수요 예외가 달려 있다. 직장 이전·자녀 교육·질병 치료·부모 봉양·학교 폭력·이혼·분양권 취득 등 실수요자 요건을 충족했다면 유주택자에게도 전세대출을 내준다.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대출받는 '주담대 생활안정자금' 한도 제한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1주택자와 다주택자 상관없이 차주당 연 1억원의 한도 제한이 있다. 여기서 또 나오는 예외. 실수요자를 위한 전세반환자금 용도는 한도 제한에서 제외한다. 하나은행은 다주택자에 한해서만 1억원의 한도 제한이 있고, 농협은행은 다주택자가 수도권 주택에 한해 생활안정자금을 받을 때 1억원의 한도 제한을 둔다. 생활안정자금이 필요한 다주택자라면 주택 소유 여부와 관계 없이 주택별로 1억원의 한도를 두는 국민은행을 선택하면 좋다. 이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허용 범위 내에서 대출이 나오지만,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 자금은 제한이 없다.
[박나은 기자 / 양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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