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선수 곁에서 자기보다 선수를 더 돌본 김장열 트레이너를 보내며
김장열 트레이너(58)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어느 날이었다. 기자가 야구를 담당하다가 축구로 바꾼 첫 해. 당시 담당하는 팀이 부천 SK였다. 30대 중반인 김 트레이너는 적극적이었고 열심이었다. 그와 알고 지내오는 동안 자주는 아니었지만, 종종 통화했고 많은 걸 배우고 공유했다. 불과 두 달 전에도 그를 잠시 만났다. 그는 “평소 존경해온 의사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며 기대에 차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 그는 좋을 때나 슬플 때나, 편할 때나 힘들 때나 늘 웃었다. 지금도 기자 기억에는 웃는 얼굴만 떠오른다.
항상 선수 편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선수들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 김장열 트레이너가 18일 별세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빈소는 화성시함백산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오전 8시30분이다.
기자는 19일 빈소를 찾았다. 자주 조문을 다니지만 상가 분위기가 여느 상가보다도 침통했다. 김 트레이너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넋을 잃고 망연자실했다. 가족보다 더 많이 우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너무 좋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성고를 거쳐 1993년 용인대학교를 졸업했다. 전공은 특수체육이었다. 고인은 1990년 19세 이하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트레이너로 일했다. 1992년 유공 축구단(현 제주 유나이티드)에 들어갔고 2019년까지 근무했다. 2021년부터 세종스포츠정형외과에서 센터장으로 일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제5대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RKATA) 회장을 역임했다.
고인은 2011년 5월8일 경기 도중 쓰러진 신영록의 생명을 신속한 응급처치(심폐소생술)로 구했다. 쓰러진 뒤 병원으로 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9분이었다. 고인은 그해 전국 응급의료 전진대회 보건복지부 장관상, K리그 대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이후 기자에게 “내가 딱히 잘한 건 없다.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면서 “생명은 살렸지만 영록이가 복귀하지 못한 건 너무 괴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 전문 트레이너 1세대다. 연구도 엄청나게 많이 했고 실전 경험도 많았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만났고 언제나 선수 편, 후배 편이었다. 고인은 “트레이너는 선수들의 그림자”라며 “모든 걸 선수들에 맞춰서 그늘에서 조용히 일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고인은 이어 “모든 영광은 선수들이 받는 것”이라며 “남을 위해 기꺼이 살아야한다는 게 트레이너로서 가장 먼저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했다. 고인은 마음이 따뜻했지만 교육에서는 철두철미했다. 그만큼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기자는 지금까지 고인을 욕하거나 험담하는 사람을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빈소를 지킨 이정필 RKATA 사무총장은 “남이 아픈 것을 대신 아파한 분”이라며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마음 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트레이너 전문 서적이 없을 때 의사들로부터 책을 얻어 닥치는 대로 읽었다”며 “해외 전지훈련을 가면 외국 트레이너로부터 장비, 치료법 등도 열심히 배웠다”고 회고했다. 이 총장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잘 해줬는데 정작 본인이 아픈 건 못챙긴 모양”이라며 “한국 축구가 그에게 큰 빚을 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 전후 SK 축구단에는 국가대표들이 즐비했다. 이임생, 강철, 윤정춘, 윤정환, 이성재, 박철, 조성환, 김기동, 곽경근 모두 고인의 손길을 받는 선수들이다. 빈소에서 만난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며칠 전에도 내 고향으로 날 찾아와 본인도 힘들 텐데 나만 위로하고 올라갔다”며 “나는 지금까지 고인에게는 받은 것밖에 없다”며 울었다. 부천 SK에서 코치로 일한 이충호 현재 성균관대 코치는 “주전이든, 후보든 가리지 않고 밤낮없이 선수들을 돌봤다”며 “아픈 선수들을 가장 가까기에서 자기 몸보다 더 챙긴 분”이라고 말했다.
김용일 RKATA 회장은 동갑내기 절친이다. 김용일 트레이너는 1989년부터 트레이너 일을 시작했고 지금도 LG 트윈스에서 트레이닝 코치로 일하고 있다. 김 회장은 “야구에서 오래 일한 트레이너인 나에게 훌륭한 축구 트레이너이며 따뜻한 친구가 있어 기뻤다”며 “자기 몸보다 남을 더 챙기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많이 배웠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좋지 않은 소문에 시달리면서 제주구단에서 나올 때, 1년 사이 부모님을 여읠 때 너무 괴로워했다”고 회고했다.
부천 SK부터 고인과 함께 한 제주축구단 이동남 실장은 “김 트레이너의 주도적인 노력으로 트레이너협회를 탄생시키며 선수트레이너(AT) 직위를 정착시켰다”며 “고용 안정은 물론 AT분야에서 수준을 높였다. 현재는 모든 팀에 AT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실장은 “빠른 판단력,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보여주는 침착함, 대처하는 솜씨도 모두 매우 정확했다”며 “AT들과 컨퍼런스도 주기적으로 하고 외부 의사분들과의 자문, 교육 등 분단하게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이 실장은 “조윤환, 최윤겸, 김기동, 윤정환, 이임생, 구자철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없다”며 “어디에 있든 동종업계 사람을 늘 도우는 등 현장에서 그의 모습이 선하다.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빈소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 김기동 FC서울 감독, 윤정환 강원 FC 감독, 김학범 제주 감독, 박경훈 수원 단장, 조성환 부산 감독, 강철 전 화성 FC 감독, 이근호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장 등 축구계 인사들이 보낸 수많은 조화가 그와 유가족을 위로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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