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시달린 英 흑인 줄리엣 "내가 마지막 줄리엣 아닐 것"[통신One]
줄리엣役 배우 "유색인종 배우 지원 인프라 필요…안전 최우선시돼야"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올해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 화제성이 큰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빼놓을 수 없다.
할리우드 배우이자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세계적인 팬층을 거느린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은 것도 있지만 줄리엣 역할에 흑인 여성 배우가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 아메우다 리버스(26)가 공연 제작사에 캐스팅된 이후 온라인에서는 온갖 인종차별적 악플 세례와 협박 공격이 시작됐다.
줄리엣을 연기하기에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거나 여성스럽지 않다는 등의 외모를 비하하는 내용도 잇따랐다.
지난해 디즈니 '인어공주' 실사판 영화에서 흑인 여성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인어공주인 에리얼을 연기한 할리 베일리에게 쏟아진 공격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 나오는 '줄리엣'을 흑인 여성이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일랜드 인명사전(The Irish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에 따르면 아일랜드 흑인 여성인 레이철 바티스트가 1700년대 중반에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런던에서는 흑인 여성 엘리자베스 아데어가 셰익스피어의 희극 '준 대로 받은 대로(Measure for measure)'에서 클라우디오의 연인 줄리엣을 연기했다.
아메우다 리버스는 자신의 데뷔 무대이기도 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막을 내린 지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그동안 감내해야만 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19일(현지시간) 기준 아메우다 리버스는 공연 전문 매체 '더 스테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몰랐던 날들이 많았다"며 "살해 협박을 받았고 극장으로 항의 편지도 날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터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달 3일 공연을 끝으로 줄리엣 역을 마친 아메우다 리버스는 인종차별적 괴롭힘에 대해 업계 전체에서 보다 광범위한 논의와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대 위에서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주연 역할만으로는 부족할뿐더러 유색 인종으로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아메우다 리버스는 "안전이 최우선시돼야 한다"며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거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최선을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메우다 리버스의 '줄리엣' 캐스팅 직후에 시작된 악플 공격이 논란으로 번지자 주로 흑인과 자신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논 바이너리(non-binary)' 배우들 880여명이 이를 비판하고 아메우다 리버스를 지지하는 연대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아메우다 리버스는 "흑인으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며 "인종 차별은 우리가 매일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준비되지 않았던 것은 이 일(인종차별)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점"이라며 "(공연이 진행되는) 4개월 동안 싸워야 했고 지금도 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캐스팅에 대한 반응은 영국의 연극계가 무대 위 인종 다양성 측면에서 여전히 뒤처져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아메우다 리버스는 "나는 최초의 흑인 줄리엣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영국의 유명 흑인 여배우 주디스 제이콥도 자신의 엑스 계정을 통해 "그 누구도 이런 수준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을 이유는 없다"면서 아메우다 리버스를 지지했다.
한편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톰 홀랜드에게는 냉철하면서도 긍정적인 연기 평가가 이뤄진 반면 아메우다 리버스의 경우, 인종차별적 공격을 견딘 그의 인내심만이 거론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경우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만큼 아메우다 리버스의 이번 사례도 줄리엣의 다양한 역사의 일부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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