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 그것은 ‘초월적 전달’의 미학 [말록 홈즈]

2024. 9. 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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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1994년 1월, 어느 일요일 아침. 난 대학 입학을 두 달 앞두고 시골에서 서울로 막 올라온 촌보이(boy)였습니다. 할 일이 없었습니다. 친구도 없었습니다. 입시 해방감을 즐기던 시절이라, 책이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신촌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신촌역에 내렸습니다. 날씨가 포근했습니다. 눈 녹는 내음이 상쾌하게 가슴을 적셨습니다. 신기한 표정으로 여기 저기 둘러보고 다녔습니다. 전자오락실도 몇 곳 들러, 신기한 ‘서울 오락’을 했습니다.

어느덧 오후 두 시,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밥을 사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시절 내게 밥이란 건, 집에서만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사먹는 밥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오락이 열댓 판인데~

밥 때가 지나면 허기를 잊곤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장벽이 들러붙는 듯 따끔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꼬깃해진 퇴계 선생님 네 분과 빛 바랜 충무공 다섯 분이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라면 한 그릇 정도는 사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식점을 찾아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데, 레코드샵에서 들려오는 어떤 노래가 계속해서 귓가에 닿았습니다. 굉장히 힘차고 묵직한 목소리가, 경쾌한 선율을 타고 흘러 가슴에 울렸습니다. 나도 모르게 음반점에 들어갔습니다. ‘미트 로프(Meat Loaf)’란 가수의 ‘I’d do anything for love(But I won‘t do that)’라는 노래였습니다.

제육덮밥이 2000원이던 시절, 4000원짜리 테이프를 사들고 전철에 올랐습니다. 신촌역에서 신천역까지 돌아오는 내내, 뱃속에서 꼬로록 소리가 함성처럼 울려퍼졌습니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예쁘장한 갈래머리 소녀가 나를 보며 자꾸 싱긋 웃음을 보냈습니다. 촌보이의 자격지심이었는지, 그 웃음이 비웃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옆칸으로 옮겨갔습니다. 인생 참 고단하게 살았었군요.

50분이 두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빨리 노래를 듣고 싶어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몇 주일 동안, 미트 로프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열망 어린 설렘이 가라앉으면, 차분함이 더 편안한가 봅니다. 힘차고 경쾌한 타이틀곡보다 앨범의 다른 수록 곡에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Objects in the rear-view mirror may appear closer than they are’

‘뒷거울에 비친 물체는, 실제보다 가깝게 보일 수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가며 가사를 해석하는데, 노랫말이 대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때로부터 4년이 지난 1998년, 군대생활을 마치고 복학했습니다. 영시개론이라는 전공수업을 들었는데, metaphor(은유)가 잘 들어간 시를 분석하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대충 뒤적거린 시로 의미 꿰맞추기를 하다가, 갑자기 오래 전 그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사전을 뒤져 가사를 다시 분석하며, 스무 살 땐 헤아리지 못했던 의미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드럽지만 왠지 씁쓸했던 멜로디가, 가사와 한 몸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험생에서 몇 년을 더 겪어 청년에 이르며, 뭔가 부쩍 자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시 대신 팝음악 노랫말을 분석해서 리포트를 제출했는데,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아래 구절들을 리포트에 메타포의 사례로 설명했습니다.

And if life is just a highway, then the soul is just a car (인생이 고속도로라면, 영혼은 차입니다.)

And objects in the rear view mirror may appear closer than they are (그리고 뒷거울에 비친 물체는, 실제보다 가깝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순간에서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인 줄 알았는데, 난 초보 청년에서 프로 중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대학, 군대, 졸업, 입사, 이직의 순간들이 불과 몇해 전 이야기로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지나간 날들은 실제보다 가깝게 느껴지나 봅니다, 백미러에 비친 차 뒤 풍경처럼요.

메타포(metaphor)는 ‘뜻을 숨긴 비유’란 의미에서, ‘은유’라고 부릅니다. 메타(meta)는 ‘넘어섬’을, pherein에서 온 포(phor)는 ‘나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뜻을 숨긴 비유’보다는, ‘초월적 전달’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삶은 계란 같다.”: 직유(直喩/simile. 직접 비교)

- “삶은 계란이야.”: 은유(隱喩/metaphor. 우회적 비교)

- “삶은 계란 한 개 천원!”: 비싸유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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