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18바퀴를 돌았지만 딸 얼굴 못 본 채 눈 감은 아버지 "수사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김세령 2024. 9.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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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09월 20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임흥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 (이하 이원화) :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말, 흔히 관용구처럼 쓰이곤 합니다만 혜희 양의 아버지 송길용 씨는 말 그대로 눈 감는 순간까지 오직 딸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정말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죠. 송혜희라는 이름. 아마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어딘가에서 보거나 들어보셨을 겁니다. 1999년 그러니까 25년 전에 실종된 당시 17살의 여고생인데요. 생존해 있다면 올해로 나이 43이 됐을 겁니다. 실종자를 찾는 모든 가족들이 그렇겠지만 혜희 양의 아버지인 송길용 씨 역시 혜희 양이 행방불명된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삶이 그야말로 송두리째 흔들렸죠. 하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실종 이후 단 하루도 딸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 최근 혜희 양 아버지의 근황이 보도되며 많은 분들의 눈시울을 적셨는데요. 오늘 사건 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임흥준 변호사 (이하 임흥준) : 안녕하십니까? 로엘 법무법인의 임흥준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실종 사건 중에서도 정말 유명한 사건입니다. 실종자인 송혜희 양 이름은 물론이고 혜희 양을 찾는 현수막 한 번쯤은 다들 보셨을 것 같거든요.

◆ 임흥준 : 맞습니다. 저도 어디서 봤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본 기억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 사건 리서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버님께서 2016년 기준으로 전단만 300만 장을 뿌리고 현수막을 2500장 설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수막이 빛이 바래려고 할 때면 새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도 빠지지 않고 하셨고요. 아버님께서 딸을 찾아 돌아다니신 거리가 무려 72만 km가 넘고 지구 18바퀴를 돈 거리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게 2016년 기준이니까 현 시점 기준으로 대략 환산하면 전단을 450만 장 나눠주고 현수막은 3750장 설치하고 돌아다니신 거리는 약 108만 km 정도 되겠네요.

◇ 이원화 : 저도 여러 군데서 봤었어요. 정말 최근까지도 반포대교 인근에서 봤던 기억이 있고요. 송혜희 양이 실종된 게 25년 전 일이죠.

◆ 임흥준 : 1999년 2월 13일 밤 10시경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마을에서 당시 송탄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송혜희 양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 이원화 : 굉장히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 임흥준 : 맞습니다. 혜희 양이 공부도 굉장히 잘해서 전교 1, 2등을 다퉜고 국회의원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실해서 부모님의 자랑거리였다고 해요. 잠깐 당시 혜희 양의 행적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사건 당일은 반 편성이 있어 오전에 학교에 갔다가 하교를 하고 오후 5시 30분경 남자친구를 만나러 남자친구의 집이 있는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에 갔다고 합니다. 이후 친구들과 놀다 보니 밤 10시가 됐고, 막차 시간에 혜희 양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후 혜희 양이 영영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죠.

◇ 이원화 : 사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딸이 집에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경찰에 바로 신고를 하셨었나요?

◆ 임흥준 : 아버님께서도 당연히 걱정되는 마음에 밤 11시경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립니다. 당연히 친구들은 해인 양이 버스를 타고 돌아갔으니까 버스 타고 집에 갔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요. 결국 아버님은 딸이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 날 새벽 6시경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 이원화 : 신고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긴 하거든요.

◆ 임흥준 : 물론 신고가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이루어져 최대한 빨리 수색에 착수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문제는 경찰이 아버님의 신고를 받고도 혜희 양의 행방을 단순 가출로 처리했다가 사건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다는 점입니다.

◇ 이원화 : 가출 이유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요? 성인도 아니고 미성년자였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긴 합니다.

◆ 임흥준 : 네. 저도 이해가 안 되는데 물론 25년 전 일이라 행정적인 처리가 주먹구구식인 부분이 없잖아 있었고 또 휴대폰 보급도 미비한 시절이라 가출 신고도 지금보다 잦아 경각심이 덜했을 수도 있긴 합니다. 어쨌든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경찰이 일대 탐문 조사 및 우범자 조사 등을 실시했고요. 그렇지만 역시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혜희 양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혜희 양이 마지막으로 탔던 버스의 버스 기사님 정도였습니다.

◇ 이원화 : 그러게요. 이 사실 혜희 양이 마지막으로 탔던 버스의 기사님이 결정적일 수 있는 증언을 했다 알려졌는데 어떤 증언을 했던 건가요?

◆ 임흥준 : 버스 기사님은 혜희 양이 사건 당일 밤 10시 15분경 도일동 하리 입구 도일주유소 앞에서 내리는 것을 기억했고요. 혜희 양과 함께 버스에 있던 남성도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버스 기사님은 경찰에서 이 남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첫 번째, 30대 정도 되는 남성이다. 두 번째,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으며 등산화를 신고 있었다. 세 번째,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네 번째,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마을이라고 대답했다. 다섯 번째,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여섯 번째, 버스에서 내린 후 혜희 양은 도로를 건너 마을로 향했고, 그 남성은 지하도로 향했다라고 했습니다.

◇ 이원화 : 그 남성을 찾았나요?

◆ 임흥준 : 경찰이 이 의문의 남성을 찾기 위해 주변 마을까지 찾고 야간 기술학교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싹 다 뒤졌습니다. 근데 경찰은 끝내 해당 남성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못 찾은 이유야 버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이야 이 CCTV라는 게 대중화돼 있고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지만 사실 1999년에 CCTV 설치가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변호사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저 시대의 건물도 아닌 교통수단의 CCTV가 설치된다는 거 그거 참 상상하기 어려웠어요.

◇ 이원화 : 맞습니다. 물론 뒤따라 내린 남성이 범인이다.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가는 방향도 달랐다고 하고요. 근데 그 당시 사건을 풀 유일한 실마리가 바로 버스기사님의 증언이었잖아요. 그러면 이 사람의 몽타주라든지 이런 게 왜 없었나 싶더라고요. 뭐라도 더 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 임흥준 : 네 맞습니다. 그 부분이 저도 제일 안타까운 포인트인데요. 결정적으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해당 남성이 버스를 탈 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어요. 즉 버스 기사님은 용의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또 아마 버스 기사님이 백미러로 유심히 용의자의 얼굴을 관찰한 것 같지도 않고요. 사실상 수사기관에서도 용의자를 특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시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 이원화 : 그럼 그 이후에 전혀 성과는 없었던 건가요?

◆ 임흥준 : 사건 발생 5년 후인 2004년 경찰은 수사에 진전이 없자 혜희 양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근데 가족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경찰은 반대로 잠적에 희망을 걸었죠. 근데 같은 해 2월 부산에서 혜희 양 명의로 인터넷에 접속한 기록이 포착됩니다.

◇ 이원화 : 부산이요? 경찰 당연히 바로 출동했겠죠?

◆ 임흥준 : 경찰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 잠복 수사를 했고요. 다시 접속 흔적이 나타나자 해당 PC방을 급습해서 확인합니다. 그런데 접속자는 엉뚱하게도 어느 젊은 남녀 커플이었습니다.

◇ 이원화 :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했죠? 이 사람들은 누군가요?

◆ 임흥준 : 정말 들으시면 화가 나실 수도 있는데 해당 커플이 전단지 속에 주민등록번호 등의 신상 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해서 접속했답니다.

◇ 이원화 : 진짜 짜증 나네요.

◆ 임흥준 : 그런데 이런 일이 꽤나 빈번했다고 하고요. 아버님이 연락을 받고 가실 때마다 대부분 비슷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장난 전화 또는 허위 제보였다고 하네요.

◇ 이원화 : 사실 실종자들의 가족이라고 하면요. 우리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전화벨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혹시 이 전화가 내 딸, 내 아들의 전화는 아닐까 이런 기대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정말 제보 전화 한 통 실종된 가족들의 작은 흔적 이것만 기다리면서 사는 분들인데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인간이 맞나 싶은데요. 안타깝게도 이 사건 공소시효가 지났죠.

◆ 임흥준 : 네. 수사에 계속 진전이 없던 경찰은 수사를 잠정 중단했고요. 결국 2014년 2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됐습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점은 경찰이 장기 미제 사건으로 보고 공소시효가 없다며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 이원화 : 아무튼 이 사건이 다른 실종 사건보다도 더 많이 알려졌던 이유, 혜희 양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정말 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야말로 인생을 다 바쳤다라는 표현을 해도 모자랄 정도인데요.

◆ 임흥준 : 아까 말씀드린 바대로 전국 곳곳을 누비며 혜희 양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고요. 전국에 안 가본 시설이 없으시다고 하십니다. 당연히 생업도 포기하시고 기초생활수급 지원금과 폐품 수거 비용으로 전단 및 현수막 비용을 마련하셨어요. 2011년에는 현수막을 걸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척추 수술도 받으셨다고 합니다.

◇ 이원화 : 최근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죠.

◆ 임흥준 : 네. 아버님께서 지난달 26일 급성 심근경색증 시술을 받고 퇴원한 뒤 트럭을 가지고 혜희 양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운명하셨다고 합니다.

◇ 이원화 : 실종 당시 혜희 양의 나이가 17살 미성년자였습니다. 앞서도 잠시 이야기 나왔지만 미성년자 아동 실종의 경우 골든타임이라고 할까요? 최대한 빨리 신고하고 찾는 것 이거 정말 중요하잖아요.

◆ 임흥준 :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실종 사건의 경우 대상이 아동이건 미성년자건 성인이건 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통 골든타임은 3시간으로 보는데요. 빠른 초동 조치로 3시간 내에 실종자가 발견되면 다행이지만 3시간이 넘어가면 실종자를 찾을 확률이 현격히 줄어든다고 보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 이원화 : 굉장히 짧네요.

◆ 임흥준 : 네. 특히 아동의 경우는 저는 지문 등록제와 코드 아담을 적극 활용하시길 추천드리는데요.

◇ 이원화 : 코드 아담이 뭐죠?

◆ 임흥준 : 코드 아담이라고 하면은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대규모 시설에서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경보가 발령되어 시설 출입구를 보안요원이 통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통제 직후에는 모든 직원과 시민이 함께 실종 아동을 찾아야 하고요. 1차 수색에서 미발견시 경찰도 투입됩니다. 경보는 실종 아동을 찾아야만 해제되고 흥미로운 점은 2019년 7월 기준 전국에서 총 1만 9천 회의 코드아담이 발동되었는데 실종 아동이 전원 발견됐다는 점입니다. 지문 등록제도도 좀 말씀드리자면, 청취자분들께서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셨으면 해서요.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 등은 보호자가 원하면 언제나 등록할 수 있고요. 지구대나 치안센터에 방문해서 등록하거나 안전드림 사이트 www.safe182.go.kr에서 스마트폰으로도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 이원화 : 좋은 정보 알려주셨네요. 사건 X파일 오늘은 1999년에 실종된 송혜희 양 실종 사건 살펴봤습니다. 혜희 양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전국에 건 현수막만 무려 1만 개고요. 돌린 전단지는 1천만 장에 달한다고 하죠. 죽기 전에 내 딸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 혹시 나이가 들어 얼굴을 못 알아볼까 겁이 난다던 아버님의 생전 말들이 오늘따라 더 마음속 깊이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정말 평생을 바쳐 딸을 찾아 헤맸던 송길용 씨의 과업은 이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겠죠.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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