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위해 일한 영원한 로비스트”…‘코리아게이트’ 박동선 빈소 가보니
“로비라는 잘못된 방식 취했지만
나라를 위한 애국자였다”
“아직 할 일 많이 남았는데 아쉬워”
20일 오후 조지타운대 한국총동문회 조기가 놓여져 있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2층. 1970년대 한미 정부 외교 마찰을 부른 ‘코리아게이트’ 주역 박동선(89)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과 화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 19일 순천향대병원에서 숨을 거둔 박씨는 1970년대 말 한미 관계를 요동치게 한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인물이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7세 때 미국 조지타운대로 유학을 간 그는 사업을 하며 쌓은 미 정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앞세워 한국 정부 측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미국 정치 인사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미 의회 증언대에 서기도 했다.
박씨의 빈소 안에는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가 보낸 조화가 놓여져 있었다. 고인은 생전 김장환 목사가 운영하는 수원중앙침례교회 예배를 다녔고, 김 목사의 누님 고(故) 김인숙 권사와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김인숙 권사는 한국에서 여성 최초 권사가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빈소 앞에는 ‘민간 외교관’ ‘한국의 제1호 로비스트’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그의 마지막답게 일본·케냐·이집트·아랍에미리트·튀르키예·우크라이나·레바논·요르단·오만 등 각 국가 대사관에서 보낸 화환과 주호영·윤호중·윤상현 의원, 박진 전 외교부장관, 정갑윤 전 국회부의장, 오명 전 체신부장관, 홍정욱 전 의원 등 정치계·사회 인사들의 화환이 놓여져 있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도 이날 오후 빈소를 들렸다. 김 전 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중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 경험이 많다보니 정치를 할 때 자문을 종종 구한 인연이 있다”며 “특히 국내에 외교 문제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도 마땅한 것이 없어 국가적인 외교 네트워크가 필요할 때마다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주셨다”고 했다.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이심(85) 전 대한노인회장은 고인을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했던 영원한 로비스트’라고 평했다. 고인과 30년 지기라는 이 회장은 “고인은 국가를 위해 공헌했고, 국내에서는 외국 대사들과 만나 한국의 외교 관계를 위해 힘썼다”고 했다. 이 회장은 “고인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세 달 전”이라며 “이때도 고인은 한미관계와 한-중동 관계, 야당의 계속되는 정치 공세 등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코리아게이트는 고인의 애국을 위한 결단이었으나, 미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만큼 생전 고인은 코리아게이트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며 “1970년대 한국은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애국을 위해서 로비라는 후진적인 방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고인의 측근 장봉우(74)씨는 “고인은 평소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힘써왔고, 실제로 2022년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과 함께 방일해 일본 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했다”며 “생전 고인은 중국 자본으로 잠식된 아프리카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했다. 장씨에 따르면 고인은 가나, 케냐, 콩고 정상들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고인의 측근들에 따르면 고인은 별세 전까지 멕시코 정부와 총 3조원 규모의 복합화력발전소(LNG) 건립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오는 10월 취임 예정인 멕시코의 새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파르도와 협력해 복합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2021년 포스코가 파나마에 복합화력발전소를 수주했는데, 멕시코 정부가 그것을 벤치마킹해 발전소를 지어달라는 의사를 표시해왔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조카 박준홍(77) 자유민주주의실천연합 총재는 “고인은 내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숙식을 제공해준 평생의 은인”이라며 “코리아게이트 당시 일부 언론에서 우리 정부가 고인에게 돈을 주고 로비를 시켰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고인은 로비 자금을 사비(私費)로 충당했다”고 했다. 이어 “별세 1~2주전까지도 전화로 사업 이야기를 할 정도로 로비스트 일에 매진하며 국가에 이바지했는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한 측근은 “고인은 영어, 일어, 불어, 스페인어에 능통했던 민간 분야의 외교관이었다”면서 “전남 순천이 제2의 고향이라며 그곳에서 열린 국제정원박람회에 외국 인사들을 데리고 왔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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