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추억의 맛’…국물 자작한 감칠맛 폭탄 조치원 ‘그대랑닭갈비’

최예린 기자 2024. 9. 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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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세종 조치원 그대랑닭갈비
손님상에 올라 철판에 졸여지는 중인 ‘그대랑닭갈비’. 최예린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터줏대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 가서, 뭘 먹어야 합니까?”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닭갈비가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특별하겠어?’

전 언론사 선배이자 현 세종시청 언론협력팀장에게 “어서 세종의 맛집을 내놓으시오” 닦달한 끝에 찾은 맛집인데도, 반신반의하며 향한 조치원이었다. 이번엔 꼭 세종, 거기서도 ‘조치원’에 있는 식당을 소개하겠다며 ‘미지의 맛집’ 문을 덜컥 열고 말았다. ‘정 맛없으면 ‘칼국수’로 틀어야지’ 생각하며 닭갈비 한점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은 순간이었다.

“대박. 뭐야 이거?”

머리 아닌 내장에서 감탄이 툭 튀어나왔다. ‘이토록 혀를 때리는 감칠맛이라니….’ 사십 평생 먹어온 다른 닭갈비와는 분명 다른 맛이었다. 누가 사람 꼬시는 데 “저스트 원 텐 미닛(그저 10분)”이 필요하다 했던가. 10초면 충분했다. 이 닭갈비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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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치원우체국 뒤편 왕성길 옆 골목에 있는 ‘그대랑닭갈비’(조치원3길 28, 교리 23-24)는 올해 34년 된 식당이다. 왕성길은 1970~80년대 조치원에서 시장 다음으로 가장 상권이 발달한 곳이었는데, 조치원역에서 가깝고 ‘왕성극장’이란 영화관이 있어 늘 사람으로 붐볐다. 이경희(61)씨는 28살이던 1991년 왕성길 작은 식당에 테이블 5개만 놓고 닭갈비집을 개업했다. 초기부터 제법 장사가 되다가 근처에 대기업 공장이 들어서며 손님이 확 늘었다. 개업 3년 만인 1994년 이씨는 대출을 받아 옆 골목(지금 자리)으로 가게를 확장 이전했다. 회전율을 높여 ‘박리다매’ 하기 위한 나름의 승부수였다. 이씨는 몇년 뒤 아이엠에프(IMF) 탓에 싸게 나온 가게 건물을 아예 사버렸다. 6∼7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대랑닭갈비’를 운영하는 이경희(61)씨가 주방에서 닭갈비를 조리하고 있다. 손님상에 내기 전 돼지사골육수를 넣어 닭갈비를 모두 익혀 나가는 것이 이 집 만의 비법이다. 최예린 기자

그대랑닭갈비는 소스가 ‘짜글이’처럼 자작한 것이 특징이다. 닭을 매운양념에 무쳐 야채와 함께 철판에서 볶아먹는 ‘춘천식 닭갈비’와 양념한 닭에 국물을 넉넉하게 부어 졸이면서 먹는 ‘태백식 닭갈비’ 어디쯤의 방식이다. 춘천식보단 촉촉하고, 태백식보단 자작한 것이 그대랑식의 닭갈비. 그대랑닭갈비만의 차이점을 묻자 이씨가 환한 얼굴로 말했다.

“돼지 뼈를 넣어 푹 곤 육수를 물로 희석해 닭갈비에 넣어요. 춘천식 닭갈비는 손님상에서 조리하지만, 저희는 주방에서 육수를 넣어 끓인 뒤 손님상에서 더 졸여 먹는 방식이에요. 양배추는 오래 익힐수록 맛이 나오는데, 손님이 음식을 쳐다보며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개업 때부터 이런 조리법을 유지하고 있죠.”

이씨는 닭갈비 조리법을 연구하면서 소사골·채소 육수 등도 넣어봤지만, 돼지사골육수가 “딱 알맞았다”고 했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맛의 균형’을 위한 육수의 농도도 수많은 시도 끝에 찾아냈다. 그렇게 완성한 그대랑만의 ‘닭갈비 레시피’는 34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져 오고 있다. 기본 닭갈비에 삼겹살주물럭, 낙지, 곱창 등을 섞을 수도 있는데 “닭갈비와는 삼겹살·낙지가 조화롭고, 곱창엔 낙지가 어울린다. 곱창에도 닭갈비와 같은 양념·육수를 쓴다”고 이씨가 꼼꼼하게 설명했다.

이경희 사장이 남은 닭갈비에 밥을 볶는 모습을 세종시 언론협력팀의 김대영 팀장과 지미영 주무관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예린 기자

이곳을 소개한 건 세종시청의 조치원 출신 공무원 여럿이다. “꼭 조치원 맛집으로 소개하라”는 요청을 가장한 반협박에 김대영 세종시 언론협력팀장이 물어물어 찾아낸 곳이 그대랑닭갈비다. 사실 지난 13일 늦은 점심에 기자와 닭갈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김 팀장과 지미영 주무관도 이 집은 처음이었다. 첫입을 먹는 순간 이들의 눈도 커졌다. 곧바로 혀를 때리는 ‘진득한 맛’에 “닭갈비가 이렇다고?”라며 김 팀장이 계속 중얼거렸다.

“어? 깻잎이 없는데?”

한참 정신 없이 먹던 중 김 팀장이 말했다. 닭갈비엔 으레 들어간다고 여긴 깻잎이 철판 안에도 밖에도 없었다. 사장님 이씨는 “닭을 신선한 걸 쓰면 향채가 필요 없다”며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닭요리는 특별한 거 없어요. 신선한 닭이 첫 번째, 양념은 두 번째죠. 인접한 청주 도계장에서 매일 신선한 닭을 가져와 쓰는 것도 그렇지 않으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양념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었다. 설탕을 쓰긴 쓰지만, 양파를 듬뿍 갈아 넣어 최대한 고급스러운 단맛을 내려한다고 한다. 양팟값이 한 망에 3만원 가까운 시대가 됐는데도 양념 비율을 그대로 유지한단다.

‘그대랑닭갈비’의 물막국수. 깊지만 슴슴한 육수의 물막국수로 감칠맛 강한 닭갈비와 환상 궁합이다. 최예린 기자

닭갈비 짝꿍인 ‘막국수’ 역시 예상을 빗나갔다. 빨간 양념이 듬뿍 묻은 비빔 막국수일 거라 생각했는데, 살얼음 육수를 가득 부은 물막국수가 나왔다. 간이 너무 세지 않은 막국수는 감칠맛 강한 닭갈비와 무척 잘 어울렸다. “배부른데 막국수는 안 시켜도 되지 않냐”던 김 팀장도 막국수에 닭갈비 한점을 얹어 먹더니 “막국수 시키길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에 생돈가스가 있는 것을 보고 “매운 거 못 먹는 7살 아이랑 같이 와야겠다”고 하니 이씨는 “돼지고기를 직접 망치로 펴 직접 튀긴다”며 자랑했다.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씨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함부로 만들어선 안 된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곱씹으며 산다고 했다. 지난 7월엔 손맛과 됨됨이를 물려주신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양식요리사로 대학 구내식당에서 일하던 그가 ‘닭갈비’를 팔기로 한 것도 “누구나 사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을 팔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 덕에 아이엠에프(IMF) 때도 손님이 크게 줄지 않았다며 이씨는 씩 웃었다.

조치원읍 ‘그대랑닭갈비’의 이경희 사장이 가게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되레 이씨는 “힘든 건 지금”이라고 했다. 2012년 연기군이 세종시로 편입까지 된 뒤로 왕성길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세종의 구도심이 된 조치원의 쇠락은 ‘그대랑닭갈비’에도 큰 타격이 됐다. 상권 자체가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에 독자들에게 소개할 맛집으로 굳이 ‘조치원의 식당’을 고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번엔 ‘소문나면 곤란한’이 아닌 ‘소문 좀 내고 싶은’ 지역의 맛집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옛날엔 여고생들이 참 많이 왔어요. 그 친구들이 시집가서 애들을 데리고 와 ‘엄마 추억의 맛’이라고 하더라고요. 34년 동안 닭갈비 장사 한 길만 걸었는데,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와 그대랑닭갈비를 계속 손님에게 맛있게 내놓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에요.”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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