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서 ‘펑’… ‘삐삐 폭탄’에 커지는 일상 속 테러 공포

레바논에서 발생한 무선호출기, 무전기 등 무선기기의 연쇄폭발이 전 세계인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무선기기 등 일상적 물건이 누군가의 조작에 의해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폭발공격 배후로 지목된 이스라엘이 호출기 공급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기기에 폭발물을 심은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공급망을 이용한 공격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동부 발벡의 한 주택에서 폭발한 무전기 잔해가 소파에 놓여 있다. AP뉴시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일상적인 기기가 엄청난 규모의 수류탄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파괴공작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했다. 이번 사건은 17∼18일 이틀간 레바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지급된 호출기와 무전기가 폭발하며 발생했다. 레바논에서만 40명 가까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다쳤는데 무선기기를 소지한 대원 인근에 있는 민간인이 다수 피해를 입었다. 

NYT는 휴대전화에 폭발물을 심는 등 통신기기를 이용한 파괴공작 자체는 새롭지않지만 이번 공격은 한꺼번에 많은 기기를 조작해 터뜨렸다는 점에서 “전자 파괴공작의 어두운 기술을 새롭고 무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면서 “역사적으로 이런 파괴공작은 한번 문턱을 넘으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일상적 도구의 무기화’가 이번 사건을 통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인만큼 우려는 더욱 커진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는 물론 냉장고,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제어하는 ‘사물 인터넷’을 이용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자기기를 폭발물로 만들 수 있는 탓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법무 자문위원을 지낸 글렌 거스텔은 이번 사건으로 “휴대전화부터 온도조절기까지 그 어떤 전자기기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이 도래했다”고 NYT에 밝혔다.  

이번 폭발 공격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침공을 염두에 두고 레바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심리전에 차원에서 감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신들이 레바논 전역을 언제든 공포로 몰라넣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현대인들이 전자기기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내는 상황 속 공포는 레바논을 넘어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하는 중이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무선호출기 폭발로 숨진 4명의 시신이 든 관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AP뉴시스

정보통신 환경의 발달로 게릴라전 등이 더 쉬워지며 전쟁의 양상이 변화해온 가운데 ‘일상적 도구의 무기화’가 전쟁을 또 다시 강대국에 유리하도록 바꿀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규모 전자 파괴공작을 실행하려면 글로벌 공급망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쇄폭발을 통해 헤즈볼라를 비롯한 친이란 ‘저항의 축’ 세력과 이스라엘 간의 역량 차이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사이버보안 전문가 하디 엘 코우리는 알자지라 방송에 “공급망을 조작하고 해킹하는 기술과 역량이 뛰어난 누군가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불균형이 발생한다. 자체 공급망이 없다면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기기는 해킹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엘 코우리는 이란이나 ‘저항의 축’ 세력들이 “지멘스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등 서방의 기술을 이용한다는 것은 공급망 어딘가에 취약 요소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