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분야를 지키는 '쟁이'들] ③대구 신발 수리 장인 윤석경 대표

김민규 2024. 9. 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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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만 봐도 그 사람의 살아온 길이 보여요"

대구 향촌동 구두골목에는 '윤 박사'가 운영하는 신발 수선소가 있다. 이곳은 44년 경력의 윤석경(66) 대표가 운영하는 신발 수선소로 저렴한 가격에 장인급 실력으로 수선한다고 알려져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 특정 분야의 경우 '더 이상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는 장인들을 통해서 힘겹게 기술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옛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구는 한 때 '섬유 도시'라고 불렸지만, 이면에는 '기술의 도시'라고도 불릴 만큼 다양한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한때 대구 지역에서 가죽수선부터 구두수선, 시계수리, 맞춤양복, 열쇠 등의 기술로 명성을 날렸던 숨은 고수들을 만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신발 주인의 몸 상태를 맞추는 걸 보고 신기하다는 말을 왕왕 듣습니다."

대구 중구 구두골목 끝에 가면 '라스트미'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A4 용지에 인쇄한 '수선'이라는 글자가 없었더라면 자칫 지나갈 수 있는 가게가 바로 윤석경(66) 장인이 운영하고 있는 신발 수선소다. 구두골목에서 '윤 박사'라고 불리는 윤 대표의 가게는 동종 업계에서 인정하는 신발 제작, 수선 전문업체다.

◇"사양길이라고요? 오히려 전문화가 돼가고 있답니다."

44년째 신발과 함께하고 있는 윤 대표는 구두수선이 '사양길'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최근 기성 신발을 보수하고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이들이 급증하는 데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신발을 수선하는 트렌드로 수선시장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의 신발이 나오면서 밑창을 보강하거나 보수를 하는 이들이 늘더라고요. 구두도 기성화를 사서 굽을 보강하거나 속 굽을 넣는 등 수선의 트렌드 역시 변하고 있습니다."

윤 대표의 낡은 매장 한편에는 택배 상자가 가득 쌓여있다. 발신지의 대부분은 대구가 아닌 타 지역이다. 원래 향촌동 구두골목에서 '나까마'(중간 수리업)를 하던 그의 매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윤 대표는 "최근 기성화를 구매 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개조를 하거나 보강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신발 자체보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수선을 요구하는 것은 개성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가 밑창과 속 굽을 보강한 신발을 보여주고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몇 해 전 다리가 불편한 한 어르신이 신발 수선점을 찾다가 우연히 윤 대표의 매장을 찾았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기성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안 윤 대표가 기존 신발을 수선, 맞춤처럼 제작해줬다. 수선을 한 후 걸을 때 불편한 점이 없어진 데다 수선비마저 저렴하다는 것을 안 어르신이 지인을 소개하는 등 입소문을 타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되기도 했다.

윤 대표의 매장에는 타 업체에서 수선 불가 판정을 받은 신발이 돌고 돌아온다. 수선 불가 판정을 받은 것들도 그가 손을 대면 새것처럼 바뀐다. 가죽이 찢어진 것은 새 가죽을 덧대고 굽 전체를 교환하기도 한다. 신발 해체 수준까지 가능한 솜씨 때문에 그의 매장에는 다양한 주문과 까다로운 수선 의뢰물이 항상 빼곡히 쌓여 였다.

◇"기성화에 밀린 맞춤구두, 뒤늦게 뛰어든 수선에서 빛을 보네요."

그는 원래 1980년대 향촌동 구두골목에서 알아주는 기술자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의 '기술을 배우자'는 말에 함께 뛰어는 것이 44년째 신발을 만지고 있다.

당시만 해도 수습이라는 명목으로 허드렛일하면서 구두 제작을 배우는 이들이 많았다. 수습 동기 중 눈썰미와 손놀림이 남다른 그는 가장 일찍 매장을 차렸다. 그가 만든 신발이 편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단골손님이 줄을 잇는 데다 유명 정치인들까지 그가 제작한 신발을 신고 다니곤 했다. 은행을 다니던 친구의 월급 두 배 이상도 벌어 어깨가 으쓱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대기업이 기성화 시장에 뛰어들면서 수제화업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산 저가 신발도 물밀듯 밀려왔다. 많은 구두 기술자가 전직을 할 때 그는 제일 먼저 구두 수선점을 차렸다.

윤 대표가 수선 중인 이탈리아 뱀 가죽 구두. 가죽 자체에 손상이 심해 유명 수입업체 매장과 타 업체에서 수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윤 박사는 가죽 자체를 벗겨 동일한 가죽으로 덧대는 작업을 하고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최근 고급 신발이 유명하면서 닳아진 밑창을 보강하거나 새 신발에다 보강을 하는 작업이 유행하고 있다. 닳은 신발을 감쪽같이 보강하는 것도 윤 박사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대구=김민규 기자

"기술자가 수선을 한다고 하니 배알도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죠. 기술자가 수선까지 하면 오히려 창과 방패 다 가진 거 아닐까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당시만 해도 구두 수선 분야는 굽이나 바꾸는 허드렛일을 하는 것으로 취급을 당했다. 그 외 수선은 거의 불가능할 때였다.

반면, 구두 제작 기술자였던 그에게는 수선은 말 그대로 눈 뜨고 식은 죽 먹기였다. 수선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자 수선 때문에 골치를 앓던 백화점이나 전문 매장에서 수선을 맡기기 시작했다. 특히 까다로운 A/S로 애를 먹던 브랜드 구두 매장에서는 윤 대표의 매장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업체보다 수선비가 절반인 것도 거기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한번은 100만 원이 넘는 소위 명품 구두가 옆구리가 터진 채로 윤 대표에게 왔다. 수선을 맡긴 30대 남성은 '결혼 때 받은 신발인데 강아지가 물어뜯었다'며 속상해했다. 남성은 다른 수선집에선 '절대 수선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구두를 분해한 후 동일한 가죽으로 교체하고 밑창 가죽과 굽까지 동일하게 제작해 수선을 마친 뒤 그의 손에 넘겨줬다.

구두만 신으면 뒤꿈치가 까여 애를 먹는다며 하이힐을 들고 온 중년의 여성도 있었다. 서비스업 직업 때문에 특정 구두를 신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윤 대표는 여성의 신발 엄지발가락 부분이 심하게 늘어진 것을 보고 무지외반증(발가락이 휘어 체중이 관절로 쏠려 휜 증상)이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뒤 굽을 낮추고 뒤꿈치 부분의 가죽 이음새 부분을 신발 안쪽으로 두텁게 만든 후 체중이 덜 쏠리게 만들었다. 수선한 신발을 신은 중년 여성은 "정말 맞춤같이 편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윤 대표는 마지막으로 바람을 말했다.

"구두에는 사람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 냄새가 좋아 40년 넘게 매진하고 있지만 이쪽 명맥이 끊기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일본처럼 기술자가 아닌 명인으로 불리는 사례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대구시가 구두 제작 및 수선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전수가 되도록 지원한다면 거기에 보탬이 되는 '쟁이'로 남고 싶습니다."

윤 대표가 자신의 매장 앞에 앉아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신발과 죽는 그날까지 함께 하고 싶다"며 "제자를 양성하고 전문학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대구=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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