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코리아게이트’ 박동선씨 별세

2024. 9. 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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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사건의 핵심 인물 박동선(사진) 씨가 19일 오후 별세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반(反)박정희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박 씨를 로비스트로 내세워 대규모 회유·매수 공작을 벌인다"고 바라보면서 이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박 씨는 1978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미 의원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한국 정부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부인했다.

결국 박 씨는 이 사건으로 기소는 됐지만 처벌은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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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사건의 핵심 인물 박동선(사진) 씨가 19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 박 씨는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미국산 쌀을 한국으로 수입하는 재미 한국인 사업가로 활동했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70년대 중반 32명의 미국 전·현직 의원에게 85만달러를 제공한 ‘박동선 스캔들’ 또는 ‘코리아 게이트’로 유명해졌다.

미국 정부는 “미국 내 반(反)박정희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박 씨를 로비스트로 내세워 대규모 회유·매수 공작을 벌인다”고 바라보면서 이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했다. 박 씨는 1978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미 의원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한국 정부와의 연관성에 대해선 부인했다. 결국 박 씨는 이 사건으로 기소는 됐지만 처벌은 받지 않았다.

빈소는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1일 14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유족으로는 조카 박명제 씨, 박양제 씨가 있다.

정경수 기자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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