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는 요노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찰스 디킨스(1812. 2~1870. 6)는 영국인 작가이자 사회 비평가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가다. 디킨스는 중학 과정의 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15세때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을 했으며 다음해 1828년 법원의 속기사를 거쳐서 신문사 속기 기자가 됐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된다. 디킨스는 특히 가난한 사람에 대한 깊은 동정을 보이고, 사회의 악습에 반격을 가했다. 후기 소설에는 초기의 넘치는 풍자는 약해졌으나, 구성의 치밀함과 사회 비평의 심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품으로 자전적 요소가 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을 비롯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의 이야기’ 등이 있다.
에비니저 스크루지(Ebenezer Scrooge)는 엄청난 자린고비다.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수전노다. 그는 ‘스크루지와 말리 상회’라는 회계 사무실의 사장이다. 말리는 스크루지처럼 돈만 밝히다 불행히도 7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죽었다. 독신으로 사는 그에게 혈육으로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세상을 떴다. 남은 조카에게도 무덤덤한 이가 스크루지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삼촌과 식사를 한번 하려 해도 스크루지는 돈 없는 여자와 결혼한 조카가 미울 따름이다. 스크루지는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메리 크리스마스”로 인사하는 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말로 크리스마스를 비하한다.
“크리스마스는 주머니가 비어도 돈 쓸 일은 많은 시기, 나이는 한 살을 더 먹는데 돈은 한 시간도 못 버는 시기, 회계장부를 결산하면서 일 년 열두 달 적자난 항목만 잔뜩 확인하는 시기인데, 도대체 뭐가 좋단 말이냐?”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일하는 서기, 행복을 빌어주러 찾아온 조카, 기부를 권하던 두 신사, 사무실의 열쇠 구멍 사이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던 어린아이에게 고함을 치며 저주를 퍼붓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전날 밤 죽었던 말리 유령이 나타난다. 스크루지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에 혼자 죽은 시신을 보고 슬퍼하는 그의 모습은 그를 오싹하게 만든다. 세상을 살며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사슬에 묶인 동업자였던 말리 유령은 자기처럼 ‘돈 사슬’에 묶여 정신없이 사는 스크루지에게 경고한다. 인생은 짧아도 이웃을 도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말이다.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선행을 다 하면서 살라 외친다. 그러면 스크루지의 운명을 바꿀 기회와 희망이 있다고 한다. 스크루지는 이후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유령 말리의 외침은 새겨 볼 만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영적으로 넓고 깊게 교류해야 하네. 살아 생전에 못 그런 영혼은 죽은 다음에 이런 벌을 받아. 아, 비통하고도 비통하구나! 살아생전이라면 서로 많은 걸 나누면서 행복을 누릴 터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나눌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보면서 세상을 이리저리 떠 돌아야 하는구나!”
소설 줄거리를 생각하며 유행했던 욜로와 요노 트렌드에 대해 생각해 본다.
베이비 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게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상은 삶의 태도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욜로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에 ‘욜로’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한번 뿐인 인생, 미래나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 나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젊은 층의 경우 어차피 비싼 집은 살 수 없으니 명품 소비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욜로는 세계적인 장기불황 속 기존 세대의 성공 방식이나 자기 발전 가능성에 의문을 품은 밀레니얼 세대가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지금 발 디디고 있는 현재 순간에 중요한 가치를 두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른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저축한 돈으로 세계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러한 경험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올리자 부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상당했다.
이는 전통적인 경제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일반적으로 경기 불황이 닥치면 소비자들은 실용성에 초점을 둔 의사결정을 한다. 당신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 보라.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합리적인 가계는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 그런데 시대를 불문하고 이런 생각이 지속될까. 꼭 그렇지 만은 않아 보인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주요한 신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한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 각자는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처지를 현실과 비교해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능력은 바뀌지 않기에 향후 변화가 어렵다고 믿는 사람들의 부류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이 개선되리라고 보는 시각을 가진 이도 물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열등한 경제적 지위에서 발생한 욜로는 그들의 경제 상황이나 불안과 맞물린 결과다. 이전 세대보다 미래에 대하여 더 큰 불확실성을 느끼는 밀레니얼 세대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지각은 자신의 능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담겨 있기에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다른 세대와 비교했을 때 미래의 계획된 삶보다는 즉각적인 현실의 가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이를 현재 편향 소비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입안자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단기적인 지원금 제공보다는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안정된 일자리 마련과 연금체계의 개편이 중요하다는 걸 암시한다.
욜로 열풍은 2011년 캐나다 래퍼 드레이크(Drake)의 노래 ‘모토(The Motto)’가 화제가 되면서 시작했다. 캐나다 출신 가수 드레이크의 2011년 곡 ‘The Motto’는 볼보의 광고와 유사하게 노래 한 소절을 담는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이게 인생의 진리지 욜로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YOLO)’라는 가사로 재탄생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건강보험 개혁안에도 이를 활용한다. 그가 이룬 업적으로 자랑한 의료보험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서 오바마는 ‘yolo, man’을 외친다. 마침내 2016년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된다. 구두쇠 스크루지가 미치고 환장할 인간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트렌드는 급격히 변화가 된다고 했던가. ‘욜로’가 저물고 급부상하고 있는 소비 트렌드는 이전과는 정 반대편에 서 있다. 그 주인공은 ‘요노(YONO·You Only Need One)다. 필요한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아주 현실적인 말이 탄생했으니 어리둥절하다. 어느 세대건 튀는 모습이 트렌드로 잡아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어렵게 사는 젊은이들은 스크루지 영감 같은 자린고비는 욜로에 비해 정신 차린 인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요노족들은 반드시 필요한 소비는 하되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최소한의 소비로 최대의 효용을 추구하고자 한다. 욜로 트렌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1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해 왔다. 이제 임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금리는 돈 없는 자들의 목을 죄고 있다. 고금리에 따른 부채 상환 부담은 청년들의 경제적 소비 여력을 줄어들게 했다. 그렇다고 요노가 스크루지 영감 같은 구두쇠를 말할까. 아니다. 요노는 구두쇠처럼 현재의 모든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반드시 필요한 소비만을 심사숙고해서 실천한다. 허영이나 사치보다는 실용을 추구한다. 가성비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가실비(가격 대비 실사용 비율)‘도 고려한다. 가실비는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해서 효용 가치를 일상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지출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런 젊은 세대의 소비 트렌드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했다. 미국의 CNN은 지난 6월, 욜로 경제가 ’요노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욜로족은 즉각적인 만족과 의미 있는 경험에 큰 가치를 부여했지만 계획적인 소비와는 동떨어져 있다. 장기적인 재정 관리가 어렵다는 피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는 특히 고물가 현상의 장기화에 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2022년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이다. 지출을 줄이고 아끼는 가치관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좋은 호응을 얻으며 확산했다. 무지출 챌린지, 짠테크 등이 인기를 모았고 서로를 응원하며 공유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발전했다. 이들 젊은 층은 문화, 여가와 관련된 비용 지출을 줄이는 대신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 소비를 줄였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지난 1931년에 출간한 에세이 ‘우리 손자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을 들춰 본다. 케인즈는 손자 손녀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중차대한 전쟁이 없을 것으로 예견했다. 2030년이 되면 노동생산성은 4배, 생활수준은 8배 향상된다고 예측했다. 미래 세대는 저축이나 재산축적에서 벗어나 여가와 예술 활동을 즐기며 멋진 삶을 살아 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우리 젊은 세대는 악독한 스크루지가 아니라 부모세대가 만든 높은 집값, 엄청나게 풀어 놓은 화폐,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모보다 못사는 산업혁명 이후의 첫세대를 부모세대의 배금주의가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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