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⑦ 재난 관리 능력 '제로'...용산구는 왜 무능했나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8명이 거리 위에서 사망하고, 334명이 부상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10대 생존자 1명도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약 1년 10개월이 흘렀다. 아직까지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파편적으로만 드러났다. 참사 직후 한 달여 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일부분만 다뤘다. 일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책임자들의 '개인적·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참사를 일으킨 여러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곧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된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각 기관의 관행과 책임, 구조적 한계, 시스템과 법령의 부재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 만에야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은 무엇일까. 뉴스타파와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 기록과 책임자들의 형사재판 기록, 별도 입수한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해 특조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을 추출했다. 그 과제들을 연재기사로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① 그날 경찰은 왜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나
② 대통령실 이전은 경찰 대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③ 대통령실 이전은 용산구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④ 경찰, 수뇌부 방침 때문에 '안전유지업무' 회피했나
⑤ 출동 안 하고 "출동했다" 보고... 112신고 기록은 왜 조작됐나
⑥ '교통 통제 실패' 그리고 놓쳐버린 골든타임
⑦ 재난 관리 능력 '제로'...용산구는 왜 무능했나
서울 용산구청은 '이태원 참사'의 주요 책임 기관이다. 참사 현장인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라 용산구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전반에 걸친 용산구청의 모습은 무능의 연속이었다. 인파와 관련한 사전 대책은 전무했고 참사 발생 전후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사고 지점이 관할 구역 안에 있었는데도 상급 기관인 서울시청과 행정안전부보다 참사 사실을 늦게 인지했다. 심지어 참사 당일 안전 관리는 뒷전에 두고 대통령실 민원 해결에 급급한 모습까지 보였다. (관련 기사 : 대통령실 이전은 용산구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현재 박희영 용산구청장, 유승재 전 부구청장, 문인환 전 안전건설교통국장, 최원준 전 안전재난과장 등 용산구청의 재난 관리 책임자 4명은 이태원 참사에 부실 대응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법적 책임과 별개로 용산구청이 왜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아무런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 참사 당일에는 왜 무능하게 대응했는지, 법령에 따른 의무는 왜 다하지 않았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용산구청을 반면교사로 삼아 또 다른 사회적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재난 관리의 일차적 책임, 용산구청에 있다
검경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2022년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용산구청은 인파 관리 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았다. 대신 소음 관리, 쓰레기 배출, 불법 노점·주차 단속, 시설물 점검 등의 사전 대책만 세웠다.
용산구청이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해야 했을 일들이 과연 이뿐이었을까. 우선 법 규정을 살펴보자.
재난안전법상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각종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 '재난관리 책임기관'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용산구의 우선적인 재난 관리 책임은 기초단체인 용산구청에 있다. 같은 법 제14조는 '업무의 행정 처리 결과가 2개 이상의 시군구에 미치는 광역적 사무를 제외하고, 모든 업무는 자치구에서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용산구 관계자도 재판 과정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검사 : (지방자치법 제14조를 제시하고) 결국 지방자치단체는 국가의 지침에 따른 안전관리만 하는 소극적 의무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역 특색에 맞는 위험 요소를 분석하고 예방, 대비, 대응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김 모 용산구청 주무관 : 예, 맞습니다.
- 2023. 8. 28.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증인신문
용산구 자치 법규인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이하 조례)에는 용산구의 기본적인 '재난 예방 조치' 의무가 명시돼 있다.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해당 조례는 지자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재난이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재난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재난 및 안전관리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구청장은 재난 예방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필요한 조치'란 인파 관리 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제3조(구의 책무) ① 용산구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재난 발생 시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재난 및 안전관리 시책을 마련하여야 하며, 재난 발생 후에는 구민생활의 안정과 재난 복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여야 한다.
제36조(재난예방조치) 구청장은 재난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재난이 발생할 위험이 높거나 재난예방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시설 및 지역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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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2019. 12. 27. 기준)
무질서 알면서… 용산구청의 오래된 핼러윈 축제 '책임 부정'
이처럼 재난안전법과 조례는 용산구청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구청 측은 '책임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용산구청 관계자들은 '인파 대책을 세울 의무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박 구청장은 참사 바로 다음 날 "핼러윈은 축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모였어도 '공식' 행사 혹은 축제가 아니기 때문에 구청은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난안전법과 용산구 조례 등 관련 법령 어디에도 주최자가 있는 공식 행사만 안전 관리 대상이라는 규정은 없다.
또 박 구청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인파 관리는 구청이 아닌 경찰의 몫'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박 구청장의 변호인은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박 구청장은) 경찰이 인파를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신뢰했다", "(인파 통제) 권한이 없는 구청은 경찰의 역할 수행을 신뢰하면 족하다"고 밝혔다. 기초자치단체 책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셈이다.
핼러윈 축제에 대한 용산구청의 안이한 인식과 책임 부정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판단된다. 핼러윈 축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이태원 일대, 특히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참사 현장 바로 옆)는 핼러윈 축제 때 인파가 몰리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용산구청은 이미 오래전부터 핼러윈 인파 밀집에 따른 무질서와 혼란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래는 2019년 용산구의회 회의록이다.
설혜영 용산구의원 : 어떻게 보면 이태원 축제(지구촌 축제)보다도 더 많은 분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행사가 됐는데, 할로윈 축제를 확인해 보면 좋지 않은 뉴스들이 좀 있습니다. '이태원이 굉장히 무법지대다', '여러 가지로 혼잡하다'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용산구청 문화체육과장 : 알겠습니다. 그런데 핼러윈 축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축제입니다. 제가 알기로 몇 년 전부터 갑자기 이태원 쪽에서 '핼러윈 데이'라고 축제 형식으로 하다 보니까 상당히 무질서하고 혼란도 많고 그렇습니다. 저희도 그것에 대한 문제점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아니면 좀 더 나은 방향은 없는지 검토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2019. 2. 13. 용산구의회 복지도시위원회 회의록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용산구청 측은 구의원의 질의에 분명 '핼러윈 데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용산구청이 핼러윈 인파 문제를 '소관 사항'으로 봤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용산구청이 어떤 방안을 검토했는지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답변과 반대로, 용산구청은 핼러윈 축제의 인파 관리에서 확실히 '손을 떼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2019년 핼러윈 축제 직후 "폭발적 인파에도, 차량 진입 통제와 같은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핼러윈 맞은 이태원…축제 분위기 속 곳곳 혼란도' / 2019.11.1 MBN)에서 용산구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공식적 행사를 주관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시민들이 모이시는 형태잖아요. 마라톤 대회 같은 건 보통 통제하지 않습니까.
- 용산구청 교통행정과 관계자/ 2019.11.1 MBN 보도
이후 용산구청은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시행된 2020년과 2021년에만 '반짝' 핼러윈 축제에 관심을 가졌다. 용산경찰서와 용산소방서, 이태원역, 상인회 등과 민관합동회의를 열고 대책을 수립했다. 방역이 중심이었지만 안전사고 대비도 포함됐다.
2020년 용산구청이 낸 보도자료('핼러윈데이 감염병 확산·안전사고 막는다')를 보면, 용산구청은 '유관기관 협조 체계'를 구축했고, 협조 체계 아래서 "용산경찰서는 대규모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와 범죄 발생을 막는다"고 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경찰관 기동대 거점 배치' 등이다. 2021년에도 용산구청은 방역 및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유관 기관들과 사전에 회의를 열고 협조 체계를 구축했다.
2022년 중순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해제되자 용산구청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핼러윈 축제에 2020, 2021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했지만, 민관합동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았다.
다른 기관도 '핼러윈 무대책' 지적… "직무 태만이다"
핼러윈 축제에 대한 용산구청의 무대책은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다른 기관들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검찰이 지난해 7월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2022년 용산서의 핼러윈 치안 대책을 담당한 실무자인 정 모 당시 112상황실 운영지원팀장은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용산구청이 보인 태도가) 2021년과 너무 비교됐고, '지구촌 축제'와도 너무 비교돼서 의아했다"라고 진술했다.
참사 2주 전 용산구청 후원으로 열린 지구촌 축제는 경사진 골목이 많은 이태원 일대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점에서 핼러윈 축제와 예상되는 위험이 비슷했다. 용산구청의 '2022년 지구촌 축제 안전관리계획'에 따르면, 축제 기간 용산구청은 직원 150명을 투입했다. 이미 행사 대행사가 안전요원 92명을 배치한 상태였다. 구청 직원들은 축제 당일인 10월 15~16일 질서유지 요원 조끼를 입고 인파와 도로를 통제했다.
반면 핼러윈 축제 때는 주차·소음 단속 외 거리 질서 유지를 위해 용산구청이 파견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구청에 상주한 직원도 8명(당직실 5명, 소음 단속 3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용산구청은 관계 기관에 협조도 구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용산구청 측은 수사 과정에서 '참사 전 용산서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따로 경찰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참사 이틀 전 용산서는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에 총력'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정 모 용산서 112상황실 운영지원팀장은 "2021년에는 1~2주 전부터 (용산구청이 경찰에) 협조 요청을 했다. 보도자료를 보고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말은 직무 태만"이라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다른 경찰도 용산구청을 지적했다. 핼러윈 축제 나흘 전인 2022년 10월 26일 열린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찰, 이태원역장, 용산구청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하지만 구청이 언급한 대책은 '쓰레기 배출 자제' 뿐이었다. 경찰 작성 자료에 따르면, 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 관계자가 용산구청에 아래와 같이 요구했다.
질서유지 등에 대해서 심도 있게 논의 중인데 (용산구청 측은) 단지 쓰레기 수거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인다, 지휘 체계로 보고하여 대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
- '22년도 용산경찰서 이태원 핼러윈 대비 관계기관 간담회 주요 내용' 문건
이 외에 송 모 당시 이태원역장은 2022년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역 외부 환기구에 대한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구청 측에 요구했으나, 지구촌 축제와 달리 '구청 측 협조가 없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송 역장은 참사 나흘 전,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주최 간담회에 참석한 관계자 중 한 명이다. 외부 환기구 안전 조치를 요구하려고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소득 없이 돌아왔고 전화로도 여러 차례 용산구청에 안전 대책을 요구했지만 담당이 아니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증언했다.
재판장 : (간담회에서) 경찰은 마약 단속 이야기, 구청은 쓰레기 배출 이야기만 한 게 맞나요?
송 모 전 이태원역장 : 구청은 '쓰레기 어떻게 치울까' 이런 이야기만 했습니다. (중략) 핼러윈 때 구청에 여러 번 '주관해야 되는 거 아니냐' 전화했는데, 이건 개인들이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핼러윈은 개인이. 문화체육과에도 전화했고, 안전재난과에도 전화했는데 다들 담당이 아니라고만 했습니다.
- 2024. 3. 18. 이임재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재판 증인신문
'유명무실' 용산구 안전관리위원회
용산구청의 핼러윈 무대책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기구는 없었을까. 용산구는 지역 내 위험 요소를 사전 점검하는 협력 기구인 '용산구 안전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재난안전법과 용산구 조례에 따르면, 안전관리위원회는 용산구청장이 위원장을 맡고, 용산구의 재난 관리 업무 담당자, 용산경찰서장, 용산소방서장, 재난관리에 학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 등 30명 안팎의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용산구의 안전관리 정책과 계획뿐만 아니라, 재난이나 각종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이를 수습하기 위한 관계기관의 협력 사항을 심의한다. 필요한 경우 재난 관련 조사와 연구를 의뢰할 수도 있고 전문가 협조를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정 증언 등을 종합하면 용산구 안전관리위원회는 형식적인 기구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안전관리위원회는 2022년 2월 용산구의 연간 안전관리계획에 대한 심의만 한 차례 진행했다. 그마저도 실제 회의는 열리지도 않았고 외부 위원들은 용산구의 보고 내용에 대한 심의 및 의결을 서면으로 대신했다. 지금까지 핼러윈 축제처럼 다중 인파가 몰리는 특정 행사에 대한 회의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변호인 : 핼러윈 데이처럼 구체적인 날을 특정해서 그에 대한 안전 계획이나 대책에 대해 심의하기 위해 안전관리위원회를 개최한 적은 없지요?
김 모 용산구청 안전재난과 주무관 : 네, 한 번도 없습니다.
- 2023. 8. 28.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증인신문
조례에 따르면, 안전관리위원회 회의 소집 권한은 구청장에게 있다. 안건 대상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구청장이 안건을 검토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즉, 핼러윈 축제의 안전 관리 문제도 구청장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위원회 심의를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법정에서 안전관리위원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본인이 위원장일 때는 '그런(사고 발생 우려가 있는 사안) 안건이 올라오지 않아 심의하지 않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검사: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기본적인 정책 수립 이외에도 사고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안전관리위원회가) 관계기관 간 협력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할 수 있는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박희영 용산구청장 : 그런 안건이 올라오면 심의하지만, 제가 할 때(위원장일 때) 그런 안건은 없었습니다.
- 2024. 6. 10.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피고인신문
당직실의 '예고된 무능'... "재난안전상황실인 줄도 몰랐다"
용산구청의 문제는 참사 전 대비 단계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참사 당일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용산구청에는 재난 조짐을 예측해야 했던 조직이 있었다. 재난안전상황실이다. 재난안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은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운영해야 한다. 재난안전상황실은 재난 정보를 수집·전파하고, 재난·안전사고 발생 시 초기 대처를 맡는다.
하지만 참사 당시 용산구청 재난안전상황실은 상시 조직이 아니었다. 법에는 상시로 상황실을 운영하라고 돼 있지만 자치 법규인 용산구 조례에는 해당 내용이 빠졌다. 2015년 조례를 개정하면서 상시 기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구체적인 운영 규정을 넣지 않은 것이다.
김경대 용산구의원 : 재난안전법에 재난안전상황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각 시군구에도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운영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조례에는 빠졌다고.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 (전략) 상황실을 조직으로 구성을 해야 되고, 상시 인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직 개편도 필요하고요. 실제로 (재난안전상황실 운영한다고) 명시해놓은 2개 구청도 확인해보니까 우리처럼 주간에는 종합상황실, 야간에는 당직실을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김경대 용산구의원 : '굳이 상시기구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얘기예요?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 : 네.
- 2015. 6. 5. 용산구의회 복지건설위원회 회의록
이로 인해 용산구청에는 24시간 가동되는 재난안전상황실과 전담 인력이 없었다. 평일 주간에는 재난안전 전담 부서인 안전재난과를, 야간이나 휴일에는 당직실을 재난안전상황실로 운영했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핼러윈 축제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참사 당일 당직실에는 재난 및 안전 관리에 전문성이 있는 공무원이 1명도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근무자 5명 중 1명이 재난관리 담당으로 지정됐지만, 환경 부서인 자원순환과 소속이었다. 다른 당직 근무자들을 봐도 세무1과, 건축과, 행정지원과, 복지정책과였다. 용산구청의 미흡한 대처는 이미 예고된 것과 다름없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들 재판 과정에서 나온 법정 증언 등에 따르면, 참사 당일 당직 근무자들은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로 운영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검사 : 야간과 휴일에는 당직실을 재난안전상황실로 운영한다는 사실을 몰랐나요?
조 모 용산구청 주무관(참사 당일 당직사령) : 네.
- 2023. 5. 15.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증인신문
다른 당직 근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7월 7일 검찰이 법원에 낸 의견서 내용과 법정 증언 등을 종합하면,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실에서 숙직했던 5명 중 조 주무관을 포함 최소 4명은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사건 발생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숙직 근무자들은 공통적으로 용산구청 내 재난안전관리상황실 운영 사실, 운영 주체, 업무 범위, 야간 및 휴일에 발생한 재난의 경우 당직실에서 재난안전관리상황실의 업무를 해야 한다는 점을 전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용산구청 김 모 주무관, 진 모 주무관, 이 모 주무관 진술조서 참조)
특히 당직사령 조 모 주무관은 오랜 기간 숙직 근무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재난안전상황실 근무를 해본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조 모 주무관 진술조서 참조)
- 2023. 7. 7. 검찰 의견서 /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중 제출
재난안전상황실에 대해 무지했던 건 참사 당일 당직 근무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무부서 책임자들도 재난안전상황실에 대해 잘 몰랐다.
검찰 의견서에 따르면, 문인환 당시 용산구청 안전건설교통국장과 최원준 당시 안전재난과장은 2022년 8월 발령부터 참사 당일까지 재난안전실무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안전재난과 직원 중 재난 및 안전관리에 전문성이 있는 방재직 직원은 1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재난안전상황실을 운영하는 주무부서(안전재난과)의 주무팀장(안전기획팀장) 마 모 씨는 '재난 유형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할 담당 부서가 다르다. 각 재난의 담당부서가 컨트럴타워'라고 진술하는데, 이를 통해 용산구청 직원들은 재난상황실이 상시 운영돼야 한다는 사실은 물론, 이와 같은 조직이 구성돼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판단됩니다. 심지어 재난관리의 주무부서인 안전재난과의 직원들도 관련 내용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 2023. 7. 7. 검찰 의견서 / 박희영 등 용산구청 관계자 재판 중 제출
이어 검찰은 같은 의견서에서 "소관 국장인 문인환 당시 국장도 '상황실(당직실)은 행정지원국 소관이라 잘 모른다'는 식으로 진술했다"며 평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담당하는 안전재난과의 소관 국장조차도 무지했다고 지적했다.
참사 당일 당직실이 재난안전상황실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용산구청 당직실 직원들은 사고 조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민원 대응 등 일반적인 당직 업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당직사령이었던 조 모 주무관은 일반적인 당직 업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주차 위반 관련 전화가 오면 단속반 연결해 주고, 고양이나 새가 있다고 신고하면 데리고 와서 보고, 화재 신고는 나중에 소방에 결과를 확인하는 등 주간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가 접수된다"고 지난해 5월 법정에서 설명했다.
결국 당직실은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오랫동안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유관기관들의 상황 통제 요청 전파를 2차례나 받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첫 번째 전파는 참사 발생(10월 29일 밤 10시 15분) 5분 후인 밤 10시 20분 서울시에서 발송된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는 소방 출동 시 자동 발송되도록 설계돼 있다.
이태원 와이키키 앞 무질서하게 있어 상황 관리 요청, 부상자도 있다, 상황 통제 요함.
- -2022. 10. 29. 밤 10시 20분 서울시청이 용산구청 당직실에 보낸 메시지
10시 29분에는 '압사'를 언급한 서울종합방재센터 상황실의 전화도 받았지만 이때도 조치는 없었다. 조 모 주무관은 "당시 전화가 왔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고,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고 2022년 12월 국회 국정조사에서 말했다.
참사 현장에서 불과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용산구청 당직실은 참사 발생 약 40분 후인 10시 53분, 행정안전부의 연락을 받고서야 사태를 인지했다.
재난 발생 뒤 재난안전상황실의 주 업무 중 하나는 구청장 등 지휘부에 신속히 상황을 전파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박희영 구청장은 이미 10시 51분 이태원상인회 연락을 받고 당직실보다 2분 먼저 참사 사실을 인지했지만, 당직실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 당연히 당직실은 원래 규정대로 10시 53분 사고 인지 직후 박 구청장에게 보고했어야 한다. 그러나 보고는 없었다.(당직사령이었던 조 주무관은 참사 현장에서 박 구청장을 만나 따로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유승재 당시 부구청장은 11시 12분 서울시를 통해, 최원준 당시 안전재난과장은 11시 25분경 다른 용산구청 직원을 통해 참사 사실을 알았다. 지휘 계통에 따른 보고 체계는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당직실은 재난문자도 '늑장 발송'했다. 행안부의 '지방자치단체 긴급재난문자 운영 지침'에 따르면 용산구 관내 재난과 관련해서는 용산구청에 재난문자 발송 의무가 있다. 평소에는 구청 안전재난과의 업무지만, 휴일·야간에는 역시 당직실이 발송 담당이다.
참사 발생 약 40분 뒤인 10월 29일 밤 10시 53분, 행안부가 서울시청과 용산구청에 최초로 재난문자 송출을 요청했다. 용산구청은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 의아했던 서울시청이 직접 구청 당직실에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고, 11시 27분에서야 구청 재난문자 담당자와 통화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문자 발송은 없었다. 결국 서울시청이 11시 56분 최초로 '차량 우회, 이태원 지역 접근자제 요청'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용산구청은 30일 새벽 0시 11분 처음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재난안전상황실의 존재도 역할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용산구청은 참사 이후인 지난해 5월, 조례를 개정했다. '재난안전상황실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규정을 아래와 같이 명시하고, 구청에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했다.
제29조(재난안전상황실) 구청장은 법 제18조에 따라 재난정보의 수집·전파, 상황관리, 재난발생시 초동조치 및 지휘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 용산구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운영하여야 한다.
제30조(재난안전상황실의 기능) 재난안전상황실은 다음 각 호의 기능을 수행한다.1. 재난 및 안전사고 상황접수 및 분석보고, 전파2. 위기요인·재난징후 포착 및 초동상황보고 전파 (후략)
- 이태원 참사 이후 개정된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 (2023. 5. 12. 기준)
'재난안전대책본부장' 구청장의 진두 지휘는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용산구청은 참사 전 대비도, 참사 당일 대처도 못 했다. 그럼 이미 재난이 발생한 후엔 어땠을까.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밤 10시 51분경 참사 사실을 알았고, 59분경 현장에 도착해 사고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용산구에 재난이 발생하면 구청에서는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돼 수습 활동을 지휘해야 한다. 재난안전법과 조례에 따르면,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용산구청장이다.
제14조(재난안전대책본부의 설치) 구청장은 법 제16조에 따라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 용산구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둔다.
제15조(대책본부의 기능) 대책본부의 기능은 다음 각 호와 같다.1. 관할지역 재난의 수습 등에 관한 사항 총괄·조정2. 재난의 상황관리 및 동원명령·대피명령·통행제한 등의 응급조치 (후략)
-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 (2019. 12. 27. 기준)
참사 다음 날인 2022년 10월 30일 용산구청이 낸 '용산구 이태원사고 수습 총력 지원' 보도자료에는 박 구청장의 지시로 30일 0시 20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설치됐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실제로 참사 대응을 지휘했는지 입증할 증거는 없는 상태다.
오히려 지난해 1월 신 모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은 용산구의회에서 '용산구청이 제출한 타임라인이 다 다르다'는 구의원의 지적을 받고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지면 모든 게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통제하고 이루어져야 되는데, 사실은 이번 참사 때는 그게 작동이 안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만약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실제로 설치돼 조치한 사항이 있다면, 이는 참사 직후 적절히 대응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 박희영 구청장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자료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법정에 제출된 적은 없다.
용산구청 보도자료에는 29일 밤 11시 박 구청장이 '이태원 사고 대책 긴급 상황 회의실'을 설치했다고도 나온다. 검찰은 이 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실제 상황실 설치 시간은 30일 새벽 0시 40분이었다. 검찰은 박 구청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도 기소한 상태다.
현재 박 구청장 측은 '직접 구조활동을 했다'며 참사 당일 본인의 노력이 충분했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지난 5월 재판에서는 참사 당일 밤 11시 15분경부터 사고 골목 인근에서 촬영된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박 구청장은 경광봉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박 구청장 변호인은 "당시 현장에서 경광봉을 들고 현장에 들어오려는 일반인들을 통제했다. 부상자들이 나갈 수 있게 길을 여는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 구청장은 지난 2022년 11월 국회에 출석해 "(참사 당일) 현장에 도착해 긴급 구조활동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은 "구청장이 무슨 구조대원이냐", "지역 내 대피 명령, 출입 제한, 차량 통제 요청 등 구청장 역할을 다했느냐"고 질책했다.
용산구청 책임 규명과 기초지자체 '재난 역량' 개선 방안 필요
용산구청은 참사 전에는 핼러윈 축제에 대한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고, 참사 직후에는 가장 빨리 구조활동 지원에 나서야 했다. 현재 용산구청이 이러한 활동을 한 증거는 거의 없다. 특히 참사 후 용산구청이 어떻게 행정력을 동원해 구급차 이동에 도움을 줬는지, 구조에 방해가 되는 인근 업소들의 음악 소리 등은 어떻게 통제했는지 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참사 전반에 걸친 '무능'과 '역량 부족'만 계속 드러났다.
용산구청의 무능이 단순히 구청장을 비롯한 일부 관리자급 공무원들의 무책임 혹은 과실 때문인지, 아니면 용산구청의 재난 대응 시스템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왜 용산구청이 오랫동안 핼러윈 축제를 방치해왔는지, 참사 이후 정확히 어떤 일을 했던 것인지도 앞으로 밝혀야 할 대목이다.
다른 지자체에도 용산구청과 비슷한 문제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참사 직후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재난안전상황실을 상시 운영하는 기초자치단체는 전국 226곳 중 49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77곳은 용산구청처럼 당직실 등이 재난·안전 업무를 분담했다.
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 자치구 25곳 중 용산구 포함 15곳은 방재안전직 직원이 1명 밖에 없었다. 업무 과중과 사고 책임 부담 등으로 퇴직 인원도 많았다. 2022년 방재안전직으로 채용된 인원은 103명이었으나 절반에 가까운 43명이 조직을 떠났다. 2021년은 105명 채용, 퇴직 인원 51명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법과 지자체 조례가 정비됐지만, 이를 이행하는 인력과, 행정기관의 역량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태원 참사가 그랬다. 제2의 참사를 막으려면, 각 지자체가 실제 재난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전반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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