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 ACSA, 왜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나?

권혁철 기자 2024. 9. 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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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 때 일본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인도적 지원, 재난구호활동, 해군간 수색·구조훈련 등의 분야에서 양국간 물자·식량·연료 등을 주고받는다고 한정지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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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일본 미야자키현 동부 휴가나다 해역에서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참여한 미-일 소해(기뢰제거) 특별훈련 장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소해 작전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일본 해상자위대 누리집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날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추진돼온 악사(ACSA)의 체결에 동의하느냐”고 묻자 김선호 차관은 “현재 한-미-일 군사협력과 유사시 대북억제력을 확고하게 하고, 우리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그런 게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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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일자 김 차관은 이날 오후 회의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정부 차원에서 동의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자신의 발언을 부인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유사시 탄약과 식량, 연료 등 군수물자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김 차관이 불과 3시간만에 말을 바꿨지만, 군 내부에선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이 필요하다’는 오전 발언이 김 차관의 솔직한 생각이란 평가가 많다. 공개석상에서 주장하기엔 시기상조라 말을 거뒀을뿐이란 것이다. 김 차관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군 고위 당국자 상당수가 사석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려면 반드시 이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유엔사령부 후방기지 7곳이 일본에 있으므로 한반도 유사시에 주일미군과 유엔사에 대한 원활한 후방 군수지원을 위해서는 일본 자위대의 협조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일 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간극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상호군수지원협정을 통해 메워나간다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보다 실효적으로 강화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협정 체결에 찬성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국방위에서 김선호 국방차관(가운데)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차관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찬성하는 속마음을 선뜻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는 이 협정이 한-일 관계의 `판도라의 상자’이기 때문이다. 이 협정의 최대 쟁점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통로가 될 우려다.

이 협정에 찬성하는 쪽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우려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린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후방지원과 군사협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불가피하다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읽힌다. 2015년 10월14일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부득이한 경우 우리 정부가 동의하면 일본 자위대가 입국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반대하는 쪽은 “20세기에 일제 강점의 아픔을 겪은 우리가 일본 자위대가 합법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열어주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돼 왔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상호군수지원협정 가운데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체결됐지만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이런 부정적 정서에 막혀 아직 공론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에 기대하는 군수지원은 단순한 물자 지원뿐만 아니라 바다의 기뢰제거 작전(소해작전), 대잠수함작전, 잠수함 구조 같은 군사작전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자위대가 한국 해역이나 공해에서 소해 작전을 할 경우 한국 해군이 일본 자위대 함정의 항구 입출항 지원, 통신지원, 식수, 식량, 연료, 수리정비 등의 군수지원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 내용 자체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체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지만,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내에서 필요한 항만, 공항 시설이나 군사기지 이용, 물품 또는 용역 지원을 요청할 수 있고, 한국이 이를 지원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이 협정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 함정이나 수송기가 한반도 파견이나 체류가 가능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의 통로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고중량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에 찬성하는 쪽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려면 반드시 이 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반도 유사시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의 요구로 자위대가 투입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전시 작전통제권이 한국에 없으므로 자위대의 한반도 투입을 제어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 때 일본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인도적 지원, 재난구호활동, 해군간 수색·구조훈련 등의 분야에서 양국간 물자·식량·연료 등을 주고받는다고 한정지은 바 있다. 평상시에만 대상이고 인도재난구호활동에 한정한 것으로 군사활동과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상호군수지원협정 개정 과정을 보면, 이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1996년 처음 맺은 양국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인도적 국제지원활동 같은 평시에만 적용됐다. 1999년 1차 개정 때 평시뿐만 아니라 한반도 유사시 같은 주변사태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었고, 2004년 개정 때는 애초 제공이 금지됐던 탄약이 제공 가능하게 됐다.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도 처음에는 유엔평화유지활동과 인도적 재난구조, 비살상 군수물자으로 시작하다, 개정 작업을 통해 한반도 유시시와 탄약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김선호 차관은 국회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급히 닫았지만,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우려가 쏟아진 다음이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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