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이론이 만능 아냐… ‘철학’ 없는 경제학은 가라![북리뷰]

서종민 기자 2024. 9. 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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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제학의 중심에 있었던 철학적 영역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소비·빈곤·복지 등에 관한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는, 25년간의 학회 기고문을 2022년 말의 관점에서 다시 편집해 이 책을 냈다.

저자는 철학자이기도 했던 애덤 스미스 등 경제학자를 언급하고, '돈'만 따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연구했던 경제학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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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앵거스 디턴 지음│안현실·정성철 옮김│한국경제신문

“한때 경제학의 중심에 있었던 철학적 영역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소비·빈곤·복지 등에 관한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는, 25년간의 학회 기고문을 2022년 말의 관점에서 다시 편집해 이 책을 냈다. 그는 지금 경제학계에는 ‘철학’이 절실하다고 단언한다.

철학이 있는 경제학은 어떤 걸까. 저자는 2017년 세상을 떠난 영국 경제학자 토니 앳킨스의 주장을 예로 든다. 앳킨스는 인공지능(AI) 탑재 스마트폰·자율주행 자동차 등 혁신 제품의 생산을 허가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먼저 검토해보자고 주장했다. “기계를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작동을 잠시 중단하자는 것.”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양극화는 기술 발전을 무분별하게 따라갔던 결과가 아닌지 돌아보자는 측면도 있다. 철학자·사회학자 혹은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학자의 입에서 나온 주장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철학자이기도 했던 애덤 스미스 등 경제학자를 언급하고, ‘돈’만 따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를 연구했던 경제학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데이터 기반 실증 연구의 대가다. 그는 숫자와 이론에 함몰된 경제학자는 ‘만화 같은 이야기’를 꾸며낸다고 경고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케이시 멀리건이 그 예다. 멀리건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외출 봉쇄 등 조치를 ‘알코올로 인한 사망자 수’에 연결했다. 술 마시는 ‘가격’은 집에서 더 저렴하기 때문에 알코올 소비량이 늘어날 것이고 그로 인한 사망자 수 증가를 봉쇄 조치의 폐해로 규정한 것. 그러나 팬데믹 당시 음주량은 크게 늘지 않았고, 이 조치가 해제된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어떤 ‘가격’이든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론화의 문제다.

영국의 앳킨스와 미국의 멀리건 등은 흥미로운 사례로만 그치지 않는다.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한 저자는 서른여덟 살이던 1983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직장을 옮겼다. 양국 경제학계를 다 들여다본 것이다. 그는 “왜 미국에는 앳킨스 혹은 그와 비슷한 경제학자가 없는지 궁금하다”고 썼다. 경제학계에서는 급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앳킨스의 주장이 나오기에 앞서, 그 연구가 가능했던 학문 토양이 있었다. 저자는 숫자를 벗어난 경제학 연구가 미국에서도 가능하기를 바란다. 앳킨스처럼 연구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미국의 불평등이 이 정도 속도로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노학자의 진솔한 소회다.

저자는 ‘자본을 위한 로비스트’라는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는 경제학자에 대한 시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정파적 이익만 좇는 경제학자들이 많다고 자인한다. ‘매춘부’라는 표현까지 쓰며 소속 집단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가 그럼에도 이 책을 쓴 데는 그들과 달리 정의감을 갖고 ‘좋은 경제학’을 고민한 학자들을 소개하는 목적도 있다. 앳킨스뿐 아니라 최저임금 논쟁을 촉발했던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 등이 있다. 또 고관절 수술을 계기로 자신이 직접 겪은 미국 건강보험과 의료 체계의 문제를 짚고, 이것이 경제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풀어내 읽는 재미를 더했다. 336쪽, 2만3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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