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잃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9. 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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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앤드루 릴런드 지음│송섬별 옮김│어크로스

20여 년간 차츰 시력 잃는 동안
장애의 중간자로서 정체성 고민
실명 회고록이자 문화적 탐구서

■ 나는 꿈을 코딩합니다

서인호 지음│문학동네

여덟살에 완전한 시각장애 판정
못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 집중
구글코리아 엔지니어로 맹활약

‘본다’는 건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인지하고, 읽고, 이해하고 있으며 사회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본다’는 것을 전제로 구성돼 있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의 저자인 앤드루 릴런드 또한 시각이 갖는 사회적·철학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눈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눈이 멀어가는 중이다.” 책의 첫 문장은 저자의 현재 상태다.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유전성 질병으로 인해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그는 어느새 “눈멂”의 상태에 가까워졌다.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본다’는 행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점차적으로 감각이 사라져 간 만큼 그에게는 실명을 갑작스러운 상실이 아닌 새로운 감각과 인식을 통해 세상을 탐험하는 여정으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책은 이 과정을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회고록이자, 실명에 대한 문화적 탐구서다.

릴런드에게 실명이라는 상태는 단순한 신체적 결함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시각은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감각이지만, 시력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감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를테면 읽기가 그렇다. 맹인이 독립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부터다. 1784년 파리에 세계 최초의 맹학교를 만든 발랑탱 아우이는 자신의 조교가 글자들을 촉각으로 상당히 잘 식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돋을새김 글자’로 된 읽기 체계를 연구하고 설계했다. 여기서 발전된 형태인 점자가 개발됐고 1930년대에 이르러 오디오북이, 현대에 스크린 리더가 등장하면서 시각장애인에게 읽기는 시각이 아닌 촉각과 청각 등의 감각으로 하는 행위로 정착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그 중간자의 위치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저자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필연적이다. 법적으로 시각장애인이라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그는 완전히 시각이 차단된 삶을 상상하지 못했고 시각장애가 있지만 ‘백인’이자 ‘남성’인 자신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고민은 소수자 인권에 대한 역사적인 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시각장애인이면서 흑인인 운동가 애닐 루이스는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하느라 흑인들이 겪는 차별을 외면했다고 고백하면서 개인이 갖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인한 ‘교차성’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끌었다. 그리고 릴런드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른 어떤 인문학서보다 와 닿게 이 ‘교차성’을 설명한다.

개인의 경험이 전하는 힘은 강하다. 이 때문에 릴런드보다 어린 나이인 여덟 살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 자신의 삶을 구축해온 ‘나는 꿈을 코딩합니다’의 저자인 서인호 씨의 이야기가 갖는 유효함이 있다. 전맹 시각장애인 개발자인 서 씨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점자책으로 공부를 하고 컴퓨터 사용법을 익혀 전국 시각장애인 워드경진대회에서 입상하곤 구글코리아에 입사해 현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맹학교는 그에게 점자뿐 아니라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교육기관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할 수 없는 것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낯섦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부끄러운 일도 무서워할 일도 아니다. 릴런드는 자신이 보행을 위해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불과 3년 전 주립시각장애인위원회를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됐다. 인생 대부분을 시각장애를 가지고 살았던 저자에게도 모르는 영역은 존재한다.

우리의 감각은 이렇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감각이 없이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살아가며 잃기도 한다. 또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들어가며 하나둘씩 감각과 멀어지게 된다. 그중에서도 시력은 노화와 함께 가장 보편적으로 감퇴하는 감각 중 하나다. 2023년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26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에 달한다. 우리 모두와 맞닿아 있는 5%의 이야기는 많을수록 좋다. 각 432쪽·216쪽, 2만2000원·1만6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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