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장기 전략 없이 전술적 승리만 노린다"-NYT

강영진 기자 2024. 9. 2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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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하마스 지도자 암살해 사우디와 수교 기회 날려
인질 몇 명 구한 작전 벌이면서 100명 구할 휴전 협상 거부
탁월한 공격 솜씨는 보이지만 전략 목표 구현과는 거리 멀어
[베이루트=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무선호출기 폭발로 숨진 4명의 시신이 든 관 중 하나를 옮기고 있다. 지난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호출기 수천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으며 18일에는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무전기가 레바논 곳곳에서 폭발해 최소 3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쳤다. 2024.09.20.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헤즈볼라를 노리고 감행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탁월한 솜씨를 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레바논에 대한 장기 전략이 없는 이스라엘 국가 운영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스라엘 지지자는 물론 적대자들에게도 이스라엘이 기술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전략적으로는 패배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첩보 능력과 군사력 과시는 잘하는지 몰라도 그런 능력을 장기적인 외교 및 지정학적 목표 구현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 능력과 정치 리더십의 파탄이 결합해 벌어진 일”이라며 “정치 지도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보다 광범위한 전략은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삐삐와 워키토키를 폭파한 것은 헤즈볼라를 장기적으로 억제할 방안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앞서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지도자를 이란에서 암살하면서 이란과 적대하는 중동국가들과의 전략적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다.

이스라엘은 특수작전을 통해 인질 몇 명을 구출했으나 100명 이상의 인질을 구할 수 있는 협상은 타결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하마스 군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를 폭격으로 살해하면서도 가전 전쟁 이후 가자 지구 운영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자 민간인 수만 명 살해로 국제 사회 지탄 초래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레바논에서도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이로 인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량 학살 혐의로 기소되는 등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마스는 물론 헤즈볼라를 제거하지도 못하면서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켜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중동 최강국으로서 이란 및 헤즈볼라에 맞서 이스라엘에 외교, 군사적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외교관계 수립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이스라엘이 전후 가자와 서안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거부하면서 사우디와의 수교 협상이 좌절돼 왔다.

하마스의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 공격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략적 혼란이 초래된 것이라는 분석이 일부에서 제기된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를 막지 못한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국가 전략을 희생해 가며 단기적 승리에 매몰됐다는 지적이다. 하마스 공격으로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상황을 악용해 지도자들이 무모하게 여러 개의 전쟁을 동시에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타마르 라비노비치 전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지도자들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으며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정치적 모험을 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안보를 최우선시하면서 외교적 타협에 앞서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완전히 힘을 잃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네타냐후 비판자들은 이스라엘 동맹국과 잠재적 동맹국들이 수용하는 외교적 비전이 없이는 진정한 안보를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일관된 국가 전략과 유리된 하마스, 헤즈볼라, 이란에 대한 공격이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기본적으로 취약한 연립정부를 지탱하기 위해 동맹국에 맞서는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본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와 레바논 분쟁을 끝내기 위한 타협에 강력히 반대하는 극우 정치인들에 의존해 연립정부를 유지해 왔다.

극우 정치인들은 하마스를 남겨둔 채 가자 전쟁을 끝낼 경우 연립정부에서 이탈할 것을 위협하고 하마스의 최대 팔레스타인 경쟁세력인 파타가 힘을 갖는 것도 반대한다.

이로 인해 가자 전쟁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을 공언해온 헤즈볼라와의 충돌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네타냐후 지지자들은 이번 레바논 공격과 레바논 접경지 군사력 강화가 헤즈볼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전략적 노림수라고 주장한다.

네타냐후 총리의 전 보좌관 나다브 슈트라우츨러는 “이들 전술적 조치들은 더 큰 계획의 일환”이라며 “헤즈볼라에 더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헤즈볼라 공격과 레바논 국경 군사력 증강이 군사적으로는 물론 외교적으로 최종 해결을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레바논을 침공할 생각도 없으면서 헤즈볼라와 타협하는데 필요한 가자 전쟁 휴전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비노비치 전 주미 대사는 “전쟁을 끝낼 생각이 있기는 한가?”라며 “근본적 사안들에 답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공개적 논의조차 시도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문제 진전 없인 어떤 전략도 불가능

올메르트 전 총리는 네타냐후 총리보다 이스라엘 자체가 전략이 부재하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 사회 전반과 지도층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라는 난제를 인정하지도 해결하려 시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수의 이스라엘 국민들이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수립에 반대한다. 하마스의 10월7일 공격과 같은 행동을 시도할 능력만 키워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중도 및 좌파 지도자들조차 대부분 이스라엘 국민을 대량 살상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신뢰를 잃은 파타 모두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올메르트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이외에 이스라엘이 국가 전략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주권 인정에 융통성을 보이지 않으면 가자 전후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서안 지구를 통치하는 파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하마스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를 허용하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쉬워지게 된다.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문제에서 일부라도 진전이 있어야 사우디와 수교가 가능해진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사우디와 수교해야 이스라엘의 위상이 높아지고 이란과 헤즈볼라 대리세력에 보다 강력히 대응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헤즈볼라와 이란이 한 순간에 친 이스라엘이 되지는 않을 것이나 균형은 깨트릴 수 있다. 그들의 위협에 대응하기가 쉬워지면 이스라엘 국민들의 삶이 개선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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