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재난 참사 유가족을 '악성' 민원인 취급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2024. 9. 2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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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세월호·이태원·오송 지하차도·광주학동·아리셀 참사 피해자들, 지원 실태 증언

"관공서로부터 겪은 '2차 가해'는 참사 자체로도 상처가 깊은 유가족들의 상처를 더 덧나게 만들고 있다. 관공서에서는 (유가족들을) '악성' 민원인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대우하지 않는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장성수 씨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난참사 피해 지원 실태 증언 및 지원 체계 개선 토론회 :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합니다'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7월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의 궁평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침수 참사로 장모님을 잃은 장 씨는 참사 당일 현장에서부터 시작된 정부와 관공서의 무책임한 태도를 하나하나 짚었다. 그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관공서를 찾았는데 저희가 마주한 건 명확한 안내, 위로가 아닌 체계 없는 혼란 뿐이었다"며 "(가족의) 실종 신고를 하고자 파출소에 도착하니, 파출소에서는 112로 제가 직접 전화를 해서 신고를 해야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그는 참사 현장이나 병원에서 마주한 공무원들의 농담에 유가족들의 고통은 배가 됐다고 했다. 그는 "'기다리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라는) 무성의한 대답은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이었다"면서 "신속한 대응보다는 서류와 규정에 얽매여서 유가족들을 지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드는 게 지금 관공서들의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0년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인 데 대해 "유가족이 되고 보니 이제서야 이해된다"며 공감을 표했다.

장 씨는 "(관공서의) 2차 가해는 단순히 행정상의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라며 "유가족들도 피해자들이다. '범죄 피해자 보호법'이 있듯이 사회적 참사를 겪은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이 마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 2023년 7월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수습된 시신이 구급차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 당일 장례식장 찾은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장 씨 외에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광주학동 참사 유가족협의회 황옥철 씨,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박창선 씨,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강선이 씨, (사)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김순길 씨 등도 관공서의 2차 가해에 대해 증언했다.

광주광역시 학동 재개발 지역 빌딩 붕괴 사고 당시 처제를 잃은 황옥철 씨는 "사고 당일 밤이 다 돼서야 도착한 장례식장에는 경황없이 울부짖는 유족 외에 사회적 참사를 담당하는 이(공무원)는 아무도 없었다"며 "(참사) 다음 날인 6월 10일까지도 아무런 설명이나 조치가 없었다"고 했다.

황 씨는 "마땅히 참사의 상황을 파악하고 진두지휘할 담당자 및 시민 보호 체계가 전무해 유족인 제가 다른 유가족들을 모아 장례 절차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며 "그제야 지자체에서는 유가족당 공무원을 한 명씩 전담·배치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설명을 요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유족들에게 담당 공무원이 오히려 큰 소리를 내는 기이한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광주광역시에 트라우마 치료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지만 "광주시청은 관련 센터 상담사의 일회성 강의로 답했다"며 "불안하고 억울한 감정이 생길 때 나비 호흡법을 하라는,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고 꼬집었다.

지난 6월 경기도 화성시 리튬 전지 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아내를 잃은 박창선 씨는 23명의 사망자 중 18명(중국동포 17명, 라오스 1명)이 이주노동자라는 특성상 직계가족이 아닌 친인척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화성시는 직계가족만을 지원하는 형태로 차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유가족들이 시장실 앞에서 농성한 후에야 이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이어 "화성시는 모두누림센터 지하 2층으로 분향소를 옮기겠다고 한다. 분향소를 지하로 옮기는 것은 우리의 사건을 덮으려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참사 사고로 가족을 잃은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우리가 무슨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말하니 정말 화가 난다"면서 "지금까지 경기도, 노동부, 경찰은 유가족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들이 편한 방식으로만 이야기해 왔다"고 비판했다.

지난 2022년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로 딸을 잃은 강선이 씨는 가족의 생사 여부 확인부터 시신을 인도 받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나타난 정부의 무능을 지적했다. 그는 "참사 직후 가장 먼저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실종된 가족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정보를 취합하고 적절히 공유하는 역할"이라며, "유가족들은 가족의 소식을 듣기 위해 시신을 찾기 위해 병원과 경찰, 행정기관을 하염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가족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12시간 넘게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을 인도 받는 과정에서부터 유가족들은 권리를 보장 받지 못"했다면서 외부에서 벌어진 사망 사건이라 의사의 사망진단서가 없었고 사망진단서 없이는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인도해 갈 수 없었는데도 "유가족들을 지원한다고 배치되어 있었던 지자체 공무원도 모른다는 답변 뿐이었다"고 하소연했다.

강 씨는 이뿐 아니라 정부가 내국인과 외국인 유가족을 차별했다고도 말했다. 참사 당일 수습과정에서 작성된 '구급활동일지(구급일지)'를 정부가 참사 후 한 달이 훌쩍 뒤인 지난 2022년 12월 9일 유가족들이 원할 경우 열람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교포나 외국인에게는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 외에도 인권 침해 및 혐오 표현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여객선 참사로 딸을 잃은 김순길 씨는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재난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유가족들이 상실을 받아들이고 애도와 추모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이라며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 지원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재난참사 피해자들은 진실을 알 권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권리, △집단으로 행동할 권리,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 △정당한 배·보상을 요구할 권리, △기억하고 추모할 권리 등이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지원 소위 보고서에 담긴 피해 지원의 실태를 통해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관련 법 개정 등 개선 방안을 정부가 받아들이고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참위는 지난 2022년 9월 총 3년 6개월의 공식 활동을 마치면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54건을 권고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참사 피해자·피해 지역 지원 개선, △중대 재난 발생 시 독립된 전문 조사기구 설치 및 안전기본법 제정, △재난 피해자의 알권리 보장과 정보 제공·소통 방식 개선과 같은 피해 지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16연대는 그러나 지난 4월 사참위의 권고를 12개 분야로 요약해 점검한 결과, 제대로 이행된 분야는 한 개뿐이라고 밝혔다.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 제48조는 "권고를 받은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참위 권고를 이행해야 한다"며 "권고를 받은 기관은 이행 내역과 불이행 사유를 매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이행이 미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국가기관 등에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 '재난참사 피해 지원 실테 증언 및 지원 체계 개선 토론회: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합니다'가 9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사)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연대,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공동 주최했다. ⓒ4.16연대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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