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산전수전(山戰水戰)

2024. 9.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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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장군은 애초부터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륜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으로 촉발된 의료계 파행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추석 기간에는 '중추가절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인사 대신에 아프지 말라는 인사가 유행하였다. 지금 겪고 있는 의료계 파행이 해결된다고 해도 그 시간 동안 고통받는 사람은 국민이다. 애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능숙하고 유능한 장군이 나서서 이 문제를 지휘했어야 했다.

'산전(山戰)에서는 내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기동하여 상대를 압도해야 한다. 수전(水戰)에서는 상대가 물을 건널 때 기습하여 승기를 잡아야 한다. 택전(澤戰)에서는 내가 가진 무기와 군장을 포기하더라도 늪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육전(陸戰)에서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후퇴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손자병법> <행군(行軍)> 편에 나오는 '산전수전택전육전(山戰水戰澤戰陸戰)'을 모두 겪은 장군의 군대 운영에 관한 내용이다.

산전(山戰)의 핵심은 나의 의도와 생각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이다. 높은 산악지역을 이동할 때는 적에게 노출되기가 쉽다. 나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서 능선을 피하고 계곡(谷)으로 이동로를 선택해야 한다. 의사 정원을 늘려 국민 의료 복지 수준을 높인다는 목표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정부의 의도를 모두 드러내고 노출한 데 있다. 상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나의 명분만 강조한 것은 결코 현명한 정책이 아니다. 2천 명이란 선언적 숫자까지 정해 놓고 전투에 임한 관계기관은 산전을 겪어보지 못한 리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수전(水戰)의 핵심은 상대의 빈틈을 찾아 공격하라는 것이다. 상대가 강물을 건너는 데 집중하고 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기습하여 승기를 잡아야 한다. 강물을 반쯤 건넜을 때 기습하면(半濟而擊之, 반제이격지) 쉽게 이길 수 있다. 상대가 전열을 정비하여 정식으로 싸우기 전에 이미 싸움은 끝났어야 한다. 전쟁은 싸워서 이기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확인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수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대와 정면 승부에 집착한다.

택전(澤戰)의 핵심은 전투에서 곤경에 빠졌을 때 명분을 버리고 빨리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늪에 빠지는데도 불구하고 명분 찾고 자존심을 찾는다면 생존은 점점 더 멀어진다. 줄 것은 주고 버릴 것은 버려야 늪에서 나올 수 있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이지 자존심이 아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응급실 기능이 마비되고 의료가 파행되었다면 늪에 빠진 것이다. 늪에 빠진 상황에서 내가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의료 개혁 정책에 대해 의사들에게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자존심과 명분만 세우다가 결국 환자들의 고통은 배가되고 의료체계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육전(陸戰)의 핵심은 출구전략이다. 평지에서 싸울 때는 불리할 때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탈출 경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들어가는 일보다 빠지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주식과 부동산을 투자할 때 과감하게 손절하고 빠지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에서 승패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일도 전략이다, 훗날을 도모하는 권토중래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외골수나 한 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다. 산전수전택전육전 모두 겪어보고, 공중전까지 겪어본 사람이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 명분, 자존심, 뚝심, 고집이란 덫에서 벗어나야 국민이 행복하다. 진격과 후퇴의 결정은 오로지 국민의 안정(保民, 보민)과 국가의 안위(保國, 보국)가 우선이다. 그래야 국민이 믿고 지지할 것이다.

박재희 인문학공부마을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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