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트럼프 암살` 시도 벌써 두번째… 美 뒤흔드는 정치폭력

박영서 2024. 9. 20.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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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반자동 소총의 표적이 됐다. 다행히 경호원의 선제 대응으로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내 정치적 양극화 및 폭력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미 대선이 막을 내려도 되레 심화될 조짐이다. '정치적 폭력'의 급류에 빠져 허우적대는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이다.

◇죽이려고 12시간 기다렸다

사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지인들과 함께 골프를 치던 중 발생했다.

미국 언론이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1시31분 비밀경호국(SS) 요원이 골프장 가장자리를 걷다가 나무가 늘어선 울타리 사이로 비죽 나온 총신을 발견하고는 즉시 그 방향을 향해 사격했다. 그때 트럼프 전 대통령은 5번과 6번 홀 사이에 있었다. 용의자와 트럼프 전 대통령 간 직선 거리는 대략 300여m에 불과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6번 홀로 이동했다면 둘 사이는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SS 요원의 총격을 받자 용의자는 닛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달아났고, 오후 2시14분께 고속도로에서 체포됐다. 용의자는 하와이 출신의 58세 백인 남성 라이언 웨슬리 라우스였다. 닛산 SUV는 도난 신고가 된 2012년형 포드 트럭의 번호판을 부착하고 있었다.

라우스가 있던 장소에서는 디지털카메라, 2개의 가방, 조준경을 장착하고 장전된 SKS 계열 소총, 음식을 담은 검은 플라스틱 봉지가 발견됐다. 그는 당초 AK-47 계열의 소총으로 무장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기소장에는 SKS 계열 반자동 소총으로 적시됐다.

SS 요원의 적극적인 선제 대응이 없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이었다.

수사 당국이 라우스의 휴대전화 기록을 조회한 결과 그는 사건 현장 인근에 15일 오전 1시59분부터 오후 1시31분까지 거의 12시간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12시간 동안 매복했던 것이다. 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죽일 것이라는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수사 당국은 라우스의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그는 체포 이후 사실상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온라인에 그가 올린 게시물을 보면 정치적 견해의 변화와 좌절감이 담겨 있다. 그는 트럼프에 실망한 우크라 지원론자로 알려져 있다.

◇모든 게 바이든·해리스 언사 때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두 번째 암살 시도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자신의 대선 경쟁자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책임을 거론했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하루 후인 지난 16일 폭스뉴스 디지털과의 인터뷰에서 "그(암살 시도범)는 바이든과 해리스의 레토릭(트럼프에 대한 표현)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의 레토릭이 내가 총에 맞도록 만들고 있다"며 "나는 이 나라를 구할 사람이고, 그들(바이든과 해리스)은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바이든과 해리스 때문에 자신이 암살 표적이 됐다는 주장이다.

두 달 전 첫 번째 암살 미수 사건이 터졌을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라를 통합하자"고 대승적으로 외쳤다. 바이든 대통령 등 정적들의 책임을 직접 추궁하는 것을 비교적 자제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번 두 번째 암살 시도를 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반자동 AR-15 소총에서 발사된 총탄이 오른쪽 귀를 스쳤던 첫 번째 암살 미수 사건 당시만 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과 지지율 격차를 벌리고 있었다. 반면 현재는 바이든 대통령을 대체한 해리스 부통령에 뒤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선 '갈라치기'가 더욱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이런 상황 변화가 대응 방식을 변화시켰다는 관측이다. 자신에 대한 거듭된 암살 시도가 정적들의 정치 공세 때문이라는 주장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면서, 민주당 공세의 예봉을 무디게 만들려는 것이 트럼프의 속내라는 것이다.

일부 공화당 인사들도 "그들은 트럼프를 계속 죽이려 할 것"이라며 정치 공세에 나서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후보가 된 이후 정치 후원금 격차가 꽤 벌어졌는데 이번 암살 시도를 계기로 모금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분열은 더 커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총격 사건 이후 두 달 만에 또다시 표적이 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단기간에 두 번이나 암살당할뻔 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은 분명히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엎는 중대 사안인 것이다. 그만큼 미국의 정치 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CNN은 "거듭되는 암살 미수 사건은 미국 정치에 드리운 폭력의 그림자를 말해준다"면서 "이는 손쉬운 총기 접근으로 인해 더욱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이제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할 지도 모르게 됐다.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은 증오 정치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아래서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불리던 미국에서 정치 폭력이 '뉴노멀'로 굳어지는 모양새는 이 나라의 위태로운 미래를 부각시킨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만약 분열과 증오의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결국 이번 대선의 패배자는 미국 그 자신일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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