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구 10명 중 1명은 청년…"삭막한 도시 삶보다 나아"
귀농인 가운데 청년층 비중 11% 집계
각박한 도시 대신 농촌 사업 관심 증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서울에서 살더라도 남는 게 없다고 느껴졌어요."
최근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의 농사일을 물려받을 준비를 하는 유모(25·남)씨는 19일 뉴시스에 이렇게 토로했다. 전북 고창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삭막한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이른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의 한 중소 IT기업에서 근무하는 그는 월급으로는 한 달 생활이 빠듯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월세와 공과금으로 70여 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면서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결혼을 하나, 집을 살 수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이번 추석 연휴 고향에 내려가 농업으로 멜론 사업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굳히게 됐다. 유씨는 "아버지가 고창 땅에서 30년을 일궈오신 것이 있으니 무(無)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기에 중소기업을 다니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선택"이라고 했다.
전체 귀농인 중 귀농·귀촌 바람은 최근 주춤하는 추세지만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인 가운데 30대 이하 청년층이 10.8%를 차지했다. 2022년 9.4%에서 1.4%p(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청년들이 귀농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로는 각박한 도시 생활과 농촌 신사업에 대한 관심 증가 등이 꼽힌다. 유씨는 "서울은 사람도 많고 출퇴근마다 1시간씩 '지옥철'을 타고 다니면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금방금방 지친다"고 토로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의 집값과 물가가 턱없이 비싼 탓에 삶의 여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서 "도시에서는 일종의 '짜인'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에 비해 농촌에서는 계절 단위로 자신의 경제활동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 "직업에 대한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 일이 곧 소득과 연결됐던 산업화 시대의 부모와 달리 나름대로의 자기 삶을 즐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라며 "자신의 삶을 더 값지게 만들어가는 반길만한 트렌드"라고 분석했다.
전통적 형태의 농업 뿐 아니라 지역특산주 신사업 등 다양한 형태로 청년층의 귀농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의 내는 성과가 상당하다는 평도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전통적인 농업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농업이 고부가가치를 내고 있다"면서 "땀 흘리지 않아도 되는, 부가가치가 높은 농업들에 대한 기회요인을 찾아 (농업의 영역에) 들어가는 청년들이 상당히 많다"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원래 우리나라는 주류를 온라인으로 유통할 수 없게 돼있는데 '지역특산주'를 생산할 경우 면세·감세 혜택이 있고, 온라인 유통도 자유롭다"면서 "그런 사업을 하려고 귀농하는 분들의 사례를 종종 봐왔고 이들이 화력을 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몸으로 하는 노동보단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 농부들이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팜을 통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점도 청년들의 의지를 북돋우고 있다.
처음 유씨의 아버지는 고된 농사일의 경험과 토박이 농부 지인들의 조언을 들어 반대했지만, 유씨는 무인기(드론) 조종 자격증을 취득해 방제작업 등을 하는 조건으로 부모님의 지지를 얻어냈다.
넓은 논밭을 손수 돌아다니며 일구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 대신 드론을 활용해 많은 작물을 비교적 용이하게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이 유씨와 부모님 모두가 귀농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귀농·귀촌으로 유입되는 청년을 바라보는 지자체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년 유입이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지자체들은 청년 후계농 영농 정착 지원사업 등을 통해 선발 시 3년 간 월 최대 100여만원의 영농정착 지원금과 교육 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후계농과 귀농인들이 정책자금을 연 1% 저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대출금리의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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